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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14. 2021

고양이 손님 3

나와 함께 지냈던 고양이는 여러 마리가 있다. 모두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이다. 

길에서 만나 잠시 보호를 하다가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기도 했으며 오랜 시간 함께 지낸 고양이도 있다. 

그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나의 첫 고양이 가족이었던, 지금의 감귤이와 같은 털 빛깔을 가진 

'야옹이'가 있다.(야옹이라는 이름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야옹이는 내가 20살이 되기 며칠 전의 겨울, 옥수동과 금호동을 잇는 어느 골목에서 만났다. 

추운 겨울 골목길 한편에서 떨고 있던 그 작은 야옹이를 입고 있던 양털 청자켓의 품에 감싸 안은 채로 

금호동의 높은 언덕 집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야옹이는 감귤이의 새끼들과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했다. 그렇게 가족의 일원으로 15년을 함께 지내다 곤히 잠들었다. 야옹이는 암컷이었고, 힘이 아주 강하기로 타고났으며 싸움꾼이었다. 

어느 날에는 빨래를 걷으려고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를 틈타 훌쩍 집을 나가더니 그 후로는 지속적으로 외출을 일삼았고 외출이 없는 야옹이의 일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금호동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외출을 했다 하면 집 주변에 있는 길고양이들과 영역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부리나케 쫓아나가 싸움을 떼어놓느냐 맨발로 야옹이를 들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느 날은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서 놀라운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보통 벌레나 새 또는 쥐를 잡아오는 일이 많다고 들었지만 야옹이는 달랐다.

 

그가 들고 온 선물은 바로 '쥐의 주둥이'였다. 세상에 쥐를 잡다 못해 주둥이를 잡아 뜯어오다니.  

이를 본 가족 일동 놀라 넘어졌다. 그 일화를 들은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야옹이를 칭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야옹이의 일상에서 일생일대 큰 싸움이 있었다. 

우당탕탕 소리가 싸움의 격렬함과 그 심각성을 알려주었다. 보통이면 만난 그 자리에서 상대 고양이를 줄행랑치게 만들었을 텐데 그날은 격렬한 싸움에 엉기고 설켜 베란다까지 굴러들어 오게 되었다. 

털을 바짝 세운 야옹이와 마주 선 상대 고양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덩치가 커다란 검은 고양이, 나는 이제 와서 그 고양이를 그림자라고 부르고 있다. 깜짝 놀란 나는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그림자를 향해 던져야만 했다. 

그것이 겨우 녹색 플라스틱 소쿠리였지만 야옹이는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돌아왔고 그림자도 잽싸게 도망갔다.


이제는 감귤이네 가족의 밥그릇을 탐하다가 감귤이와 한바탕 싸우고 있는 녀석이 그때의 그림자라니. 

오랜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참 오래도 사는군' 하고 감탄했다. 

그 후로도 감귤이네와 그림자가 만나 사료그릇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생기곤 했지만, 

시간이 겹치지 않아 조용히 자기 몫을 챙기고 떠나는 날이 더욱 많았다.

감귤이의 삼 형제도 어느덧 제법 성묘에 가까운 체형을 갖추기 시작했고 나의 손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먼저 떠나보낸 고양이들이 생각나 멍하니 마당에 앉아있기도 했다.

감귤이네 삼 형제가 성장해감에 따라 어미를 동반한 온 가족이 밥을 먹으러 오는 날도 있고 형제 중 두 마리 

또는 어미를 제외한 삼 형제만 오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건강한 모습으로 녀석들이 모두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안심했다.

 하지만 "이런 평온함만 있으면 재미없지!" 하고 누군가 말하듯 삼 형제가 밥을 먹으러 온 그때, 

그림자가 나타나 삼 형제의 혼을 쏙 빼놓고 말았다. 

삼 형제는 앞뒤 볼 것 없이 꼬리에 불을 붙이고 각자의 숨겨진 길로 몸을 감추었다. 


그림자는 큰 체격에 걸맞게 적을 향해 내지르는 울음소리가 아주 크다. 

볼륨을 높이고 록음악을 듣다가도 그림자 녀석이 내지르는 울음소리에 덩치 큰 스피커의 기를 죽이고 만다. 

삼 형제를 쫓아낸 그림자는 맨발로 마당에 선 나와 마주했다. 

내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사료를 독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맨발로 언제까지고 마당에 서있을 수는 없으니 현관으로 발길을 돌리니 그림자 녀석도

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림자 녀석의 몸에 이상한 점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몸뚱이, 엉덩이 부위에 꽤 넓은 면적에 있어야 할 검은 털이 빠져 오골계 마냥 검은 피부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림자 녀석 또한 나름의 사정이 있던 모양이다. 

삼 형제를 줄행랑치게 만든 것은 속상하지만 털이 숭덩빠진 민둥산의 엉덩이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나는 사료 그릇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와 그릇 가득 사료를 퍼담았다.

그림. 홍슬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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