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에서의 결핍을 사프로 채우려 한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는 대부분 결핍에서 시작된다. 나의 경우 대학생때는 협업 경험과 포트폴리오를 위해서였고, 그 말인 즉슨 부족한 경험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충족하기 위함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더 이상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필요한가 생각을 했다. 결국 사프는 현업을 잘하기 위해서 아닌가? 현업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한지 어언 1년이 지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업에 또다시 결핍을 느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 사이드 프로젝트는 팀원들간의 분위기, 서비스 런칭의 의지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대학생때야 의지과다니까 사프를 생업처럼 했지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인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의지를 갖고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 뜻처럼 진행되지 않는 현업에 약간의 진절머리를 느꼈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사이드프로젝트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판단했다.
마침 관심있던 공모전에 참여하고 싶었고, 인프런에서 부랴부랴 디자이너 모집글에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팀이 빠르게 구성되었고 대부분 직장인, 그리고 취업준비생으로 구성되었다.
시간도 6개월 정도로 넉넉했다. 빡세지 않아서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첫 회의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삐걱거림을 느꼈다. 현업 경험이 많은 팀원들은 이미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했고, 의견 하나하나를 수용하기까지의 설득 과정이 정말 소모적이라고 느껴졌다. 대학생 때와는 정말 달랐다. 아이디어를 통일하기까지도 어언 3주는 걸렸다. 6개월 중에 3주, 적당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3주동안 의견통일을 해야된다는것은 나에게 너무 피로도가 심했다. 괴로운 현업에서 벗어나 즐겁고 빠르게 진행하는 사프만의 경험을 느끼고 싶었고, 나의 이력에서 유의미한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이렇게 현업과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고?
팀원 모두 '현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프하는 시간을 통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의 경우도 6개월 안에 퇴사, 이직, 이사 등 빅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일정하게 사프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디자인이 늦어져서 개발자들이 기다리는 상황도 빈번했고, 미안함에 불구하고 내 현실이 너무 바빴기에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졌다. (이 글을 보는 저같은 팀원 때문에 열불나는 사프를 진행중인 사람들...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사프 치고 너무 길긴 했다만, 생각보다 직장인이 일정 시간을 사프에 쏟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힘든 점에 대해 구구절절 쓰고 싶지는 않다. 각자 느끼는 점이 너무 다르고,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를 비관론적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도 사프를 통해 얻었던 좋은 지인들과 경험들이 있기에. 그러나 언제나 사프는 옳다! 라고 생각했던 나의 관점을 바꿔준 계기가 되었기에 짧게 글을 남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공모전은 장려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상금도 많지 않지만 받게 되었고 어쨌든 마무리를 했다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그러나 열심히 했냐에 대한 질문엔 절대 아니라는 부끄러운 대답을 하게 된다. 돌이켜봤을 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업에서의 결핍은 충족되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각자의 경험으로 쌓아진 현업자들과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쩌면 또다른 현업을 하는 느낌을 안겨줄 수 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또 하게 된다면 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먼저 정하고, 정말 빠르게 끝낼 수 있는 토이프로젝트 수준으로 진행할 것 같다. 끝으로 나와 함께해준 이번 사프 팀원들께 죄송하고 고마웠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어쩌면 성숙하지 못한 태도일 수 있는데, 끝까지 큰 문제 없이 마무리해줬기에 고마움을 느낀다.
끝으로 내가 지금 현업에 결핍을 느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까 고민중인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세상엔 뭐 하나 쉬운게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