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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Mar 11. 2020

재택근무 종료와 가족돌봄휴가

서운한 사람은 나뿐인가?

직원 여러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권고드린 재택근무는 금일 종료되고, 월요일(3월 9일)부터 정상 출근하게 됩니다. 단, 임산부의 경우 지속 재택근무 권고드리며 만 8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임직원의 경우 재택근무 연장(3월 말까지) 혹은 가족돌봄휴가 제도 활용이 가능하신 점 참고 바랍니다.


3월 6일 금요일 오후, 코로나로 인해 2주 동안 진행됐던 전사 재택근무가 공식적으로 종료된다는 안내 메일을 확인했다. 만 8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나는 재택근무 연장 신청이 가능했지만 그동안의 업무 효율성, 팀원이 전원 출근(내가 소속된 팀의 구성원 중 아이가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하는 상황, 본부 내에 재택근무 연장을 실제적으로 신청한 사람이 전혀 없는 분위기를 고려할 때 더 이상의 재택근무 연장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팀장이 ‘필요하면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재택근무는 곤란하다는 표현을 은근히 돌려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는 배려해서 한 말을 내가 너무 왜곡하여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돌봄휴가>
2020년 1월 1일부터 근로자는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 또는 자녀의 양육을 사유로 연간 최대 10일의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무급으로 1일 단위로 신청할 수 있고 가족돌봄휴직의 90일 한도에 포함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비상상황 종료 시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상황을 사유로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한 근로자에게는 1인당 최대 5일, 1일 5만원의 금액이 지원된다.


재택근무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육아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긴 출퇴근 시간 절약으로 인한 체력 보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증가 등을 고려했을 때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았기에 재택근무 종료 공지 메일을 받으니 괜히 아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다시 이전처럼 엄마가 출근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었다.


출근 전 날 저녁에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 엄마가 내일부터는 회사 가는 날이야
- 회사 안 가고 나랑 계속 놀면 안 돼?
- 엄마도 그러고 싶은데 회사에서 내일부터 나와야 된데. 내일부터는 할머니랑 둘이서 놀 수 있지?

아이는 엄마가 다시 회사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내심 별로였는지 마무리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아이를 안아주었다.

-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회사에 가고 없을 거야. 회사에 가서도 우리 딸이 무척 많이 보고 싶을 거야.
- 괜찮아. 저녁에 와서 다시 만나면 되잖아.


놀랍게도 딸은 나보다 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회사 가는 것이 내심 귀찮기도 하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매일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 이제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딸은 오히려 더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내일 엄마 회사 가니까 오늘은 꼭 안고 자자.

다섯 살 딸은 엄마를 꼭 안아주면서 엄마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딸이 이렇게 엄마의 출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엄마가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엄마랑 같이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가끔 휴가를 내 어린이집 등하원을 해 주면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그렇게 자랑하고 기쁨을 표현하던 아이인데... 어쩌면 아이에게 엄마가 회사에 다니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나도 모르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의 출근길은 아직 재택근무나 휴가 중인 직장인들이 많은지 교통상황이 원활했다. 평소보다 30분은 더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하나둘씩 출근하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전보다 좀 더 경직된 듯 보였다.


간단히 업무상황을 공유하는 팀 미팅을 마친 후 딸이 잘 일어났는지 아이를 봐주고 계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딸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를 찾지도 않고 태연하게 있다고 했다.




사무실에 다시 출근 한 첫날, 오전에는 업무가 다소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오후부터는 재택근무로 그동안 미뤘던 대면보고와 미팅들이 이어지고 4월로 전부 연기했던 집합교육과정의 일정이 확정되면서 갑자기 바빠졌다. 업무 흐름이 다시 정상궤도로 진입한 것이다.


굵직한 업무들이 4월로 연기돼서 한동안은 한가하게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한꺼번에 진행해야하는 업무 일정을 조율하고 대안들을 협의하느라 회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재택근무가 마무리되면서 느껴졌던 약간 무거운 감정을  이상 가지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핸드폰으로 "웅~"하는 소리와 함께 코로나 확진 발생 관련 경보 문자가 들어온다. 경기도의 집에 있을 때는 자주 울리지 않았는데 서울 강남권의 회사에 있으니 인근의 여러 구 확진자 정보가 경보 문자를 통해서 전해진다. 점심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면 주변 약국에는 5부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 손에 신분증을 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에는 집에만 있는게 답답한지 마스크를 쓰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간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카톡으로 온다.


예전과 달라진 주변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이미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 듯한 사무실의 모습과 업무 일정을 보면서 어린이집 휴원 기간 동안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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