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두나 Jun 11. 2020

육아휴직 중 자기개발이란

출산 후 자기개발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원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가 자는 시간 동안 영어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하나 취득하고, 대학원도 다니고... 회사를 안 다니니까 시간이 엄청 많겠구나. 뭐부터 하지?'


왜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를 낳으면 잠을 거의 못 잘 것이라는 말을 아무도 해 주지 않았을까? 신생아는 하루를 대부분 잠으로 보낸다는 막연한 이야기만 믿고 하루에 12시간은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이 깨진 시기는 산후조리원을 나오고 난 그 날부터였다.


밤에 처음 아기와 같은 방에서 자게 된 그 날, 나의 하루 총 수면시간은 대략 60분이었다. 

혹시나 아이의 숨이 멈출까 봐 아이 얼굴 옆에 귀를 바짝 대고 고른 숨이 쉬어지는 것을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그렇게 새벽을 보냈다. 그 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한 남편은 나에게 이런 카톡을 보냈다.


"우리 아기 너무 순한 것 같아. 어떻게 밤새 한 번도 안 깨고 잘 수가 있어? 사람들에게 엄청 순하다고 자랑했어."


아이를 안고 밤새 멍하니 앉아있던 나에게 남편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카톡을 보냈고 나는 그 뒤로 3년 넘게 남편에게 그때의 카톡을 이야기하며 그와 나의 수면의 질의 차이점을 설명하곤 한다.


육아휴직과 대학원


어쨌든 그렇게 출산 이후 육아를 하면서 공부를 하겠다는 나의 희망은 인어공주가 왕자를 끝내 죽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허망하고 슬프게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 인어공주의 결말처럼 슬프지 않았던 것은 친정엄마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는 언니들이 고운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바치고 얻은 단검을 활용하지 못했지만, 나는 친정엄마의 남은 인생을 갈아 넣어서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인간다운 삶과 대학원이라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자신의 군대 이야기를 수십 년을 우려먹듯이, 여자들도 자신의 출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제왕절개를 해서인지 출산과 관련된 경험담을 이야기는 잘하지 않지만, 이직을 위한 이력서를 작성할 때 '출산 후 3주 만에 대학원을 출석'했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적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생활에서 출산과 육아는 나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숨 나오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그렇게 나는 대학원을 휴학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 국내 모 대학의 MBA인 그 과정은 은 같은 해 입학한 동기들과의 진한 네트워킹이 학업을 지속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서 중간에 휴학을 할 경우 다시 복학해서 졸업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서 휴학을 결정했다면 다시 복직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육아휴직 동안 공식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자기개발은 세상의 소금과도 같은 친정엄마로 인하여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육아휴직과 독서


하지만 나에게 육아휴직 중 가장 뿌듯했던 자기개발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학원을 다닌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휴직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간은 아이가 밤에 잠이 들면 침대 한쪽 구석으로 가서 몰래 핸드폰 플래시 조명을 켜고 쪼그려 앉아 독서를 하는 순간이었다. 언제 아이가 깨서 울지 모르는 스릴감을 안고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읽는 그 순간만은 아이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학, 비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그렇게 잠을 줄여가며 읽은 책들은 나에게 휴직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육아서적을 읽으면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에세이를 읽으면서는 작가의 생각에 함께 공감해가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사회학이나 트렌드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사회 현상의 이면에 있는 부분들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단, 업무와 연관된 책은 당연히 하나도 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자의 반 타의 반 직무 관련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는데 휴직을 하는 동안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있으니 정말로 내가 관심을 갖고 읽고 싶었던 책들만 읽을 수 있어서 자기주도형(?)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육아휴직과 사색


생각을 했다는 것이 자기개발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휴직 기간 동안 나의 사회생활 태도를 가장 많이 바꾼 것은 바로 사색의 시간이었다. 사색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좀 더 단순히 말하자면 지난 사회생활 중에 있었던 사건들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현명한 태도가 되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것, 나와 사이가 좋거나 좋지 않았던 동료들과의 관계, 어떤 일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고 어떤 업무가 가장 의미 없이 느껴졌는지... 이런 부분들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복직 이후의 삶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그 덕분일까. 나는 복직 이후 두 번의 이직을 하면서 이직한 회사에서 하나같이 팀장의 방향성을 잘 따르고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조율을 잘하며 모든 사람들과 적절하게 잘 어울린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복직 이후 두 번째 이직에서는 나름 철저한 레퍼런스 체크를 당했는데, 이직 이후 팀장이 이야기해 준 나를 선발한 이유 중 하나는 레퍼런스 체크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의견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함께 일을 해 보니 전 직장의 동료들이 왜 이렇게 좋은 평을 해 주었는지 알 것 같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까칠하고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말이나 행동을 하는 그야말로 사회성 별로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1년 정도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면서 더 이상 이런 태도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당연히 나의 소중한 아이 덕분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세상에 나온 딸이 날이 갈수록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려면 우선은 나부터 활기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일로 인해서 스트레스받거나 예민해하지 않고 의연하게 조직생활을 하는 워킹맘의 모습을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나갔다.


그 덕분인지 복직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나의 사회생활을 여전히 활기차다. 회사를 즐겁게 다니고, 직장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원하는 회사로 이직하여 커리어도 순조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얻게 되었고 독서 스터디 등을 통해서 출산 전보다 더 깊이 있게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즐긴다.


엄마의 자기개발


출산 이후 1년 이상 자리를 비우게 되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출산 이후에도 휴직 중에 자기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예비맘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굉장히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 자기개발이 꼭 구체적인 어학점수, 자격증 등의 결과물로 나와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대학원, 독서, 사색이라는 세 가지 자기개발의 기회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학원이 스펙도 올리고 가장 효과적인 자기개발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태도를 가장 많이 바꿔 준 것은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실 아이를 낳고 나면 이전에 하던 방식대로 인강을 듣거나 책을 암기해가면서 하는 공부가 어려워진다. 휴직을 하고 나서 이런 현실에 부딪혀 공부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욱더 사회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혹시나 이런 이유로 좌절감이 드는 경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금 필요한 자기개발은 자격증이나 어학공부보다는 아이가 생기면서 달라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이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삶에 쓰러지지 않고 의연하게 버티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이미 아무나 할 수 없는 엄청난 자기개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