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혁 delivan Mar 22. 2020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살면서 한 번도 심리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건 주로 우울증이나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주변과 나 자신에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자아의 성장은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콧 펙은 이렇게 말했다. '심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비본능적인 행위는 없고 그래서 이보다 더 인간적인 행동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비본능적인 것이 제2의 본능이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비본능적인 것을 가르친다. 즉 본능을 초월하여 우리 자신의 본능을 개선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나는 그 본능을 따라 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나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첫 도전이었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심리 상담 센터를 방문했다. 고민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온 거라 상담사님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단순히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는 사소한? 고민으로 말문을 열었다. 상담사님은 아주 능숙히 대화를 리드하시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셨다. 덕분에 1시간 내내 내 얘기만 했다. 살면서 온전히 내 얘기만 1시간 동안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주신 후, 바로 조언을 해주시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들은 후에 조심스럽게 자신이 느낀 것을 얘기해주셨다. 그중 하나는 내가 너무 급해 보인다는 것이다.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은 모임에 나가는 등의 자기 계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매우 좋고 중요하나, 그것이 자신에게 체화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좋은 음식이라고 들은 것들을 천천히 씹어 소화시키는 것이 아닌, 꿀꺽 삼켜버리는 느낌이라고 비유를 해주셨다.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했던 말과 상담사님이 해주신 말을 곱씹어봤다. 확실히 나는 책에서 본 것들,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을 마치 내 것인 것 마냥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지를 깊게, 제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침대에 누운 후였다. 못한 생각들을 하느라 잠이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이유는 내 스스로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이 이유는 내가 심리 상담을 받지 않았으면 찾지 못했을, 혹은 찾는데 엄청 오래 걸렸을 것이다. 왜냐면 요즘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 약간 자랑스럽기도 하고, 이게 옳은 방향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사님은 조심스럽게 내 상태에 걱정을 표했다. 되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한 듯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심리 상담을 통해 내가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걸 다시금 재고하게 됐다. 이것이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상담을 받기 전보다 좀 더 유연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서도 예전의 나처럼 자신에게 딱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꼭 한 번 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OOOO가 좋아하는 걸 먹어야 건강하게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