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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Mar 14. 2023

글쓰기는 약이다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아했던 영어나 수학 시간에는 귀 쫑긋, 눈은 반짝반짝했지요. 국어나 과학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주로 다른 생각 많이 했고 아니면 잤습니다. 고1 겨울 방학 때, 과를 선택하며 한참 고민했지요. 수학은 좋아하는데 과학은 싫어하고, 영어는 재미있는데 국어는 하기가 싫었어요. 국어보다는 과학 공부가 더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회계를 전공했어요. 다시 좋아하는 숫자를 만나니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열정도 다르더군요. 일할 때도 좋아하니 신이 났고, 다른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일은 먼저 나서서 했습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연초가 되면 야근도,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일 년 일했지만 꽤 많은 내용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산할 때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또 먼저 맡아 처리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청할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역할, 쓸모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나'로 살고 싶었습니다. 전화하지 않으면, 집에 어른이 없으면 말 열 마디 할까요? 옹알이할 때는 같이 옹알이 정도만 하고, 과자 대신 까까로 밥 대신 빠빠라고 말했어요. 강아지와 고양이는 멍멍이와 야옹이로 부릅니다. 아이를 보고 집안일하는 내 모습은 소위 잘 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할수록 가슴속에 답답함이 쌓여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일 년도 안 되어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나를 찾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내 시간을 갖고, 나의 쓸모가 있는 곳에서 그 역할을 하는 거요. 


남편이 있지만 주말부부처럼 지냅니다. 3박 4일 타지로 출장을 2주 가고요, 집에서 출퇴근하는 출장도 3박 4일 됩니다. 한 달 중 3주를 출장으로 보내고 남은 한 주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이때 그동안 못 가진 모임을 하죠. 주말에는 다양한 행사가 있고요. 외향적인 남편이라 집에 들어오라 하면 귀가하고 나서부터가 문제입니다. 싸울 일이 없는데 본인 스스로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쌓였던 거죠. 외향적인 남편을 받아들이고 나니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내 시간은 더더욱 챙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집순이입니다. 나가는 일 자체를 귀찮아해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나를 위한 외출보다 아이의 잠, 숙면이 더 중요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같은 지역에 사시지만 한 분은 아이를 자주 보는 일을 힘들어하셨고, 한 분은 한 번 맡기면 그다음을 기다리십니다. 안 가면 서운해하시니 저 필요할 때만 맡기는 일도 아니다 싶더라고요. 이런 저의 성향도 내 시간을 못 가진 이유에 있었다는 점, 저도 인정합니다. 


하루 30분만도 괜찮았습니다. 집안일과 육아하지 않고 책 읽으며, 멍 때리며 내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아이의 낮잠 시간에는 저도 옆에 같이 누워 자기도 했어요. 그래야만 아이는 더 잘 수 있었거든요. 아이들이 크면서 저도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가더라고요. 일종의 루틴이 생겼습니다. 둘째가 네 살쯤 되니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다섯 살일 때는 더 편했고요. 


2020년 2월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되었습니다. 2, 3월 그때 저는 대구에 살았지요. 문을 열고 나가기가 겁이 났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서서히 외출을 하기는 했지만 식당과 카페는 절대 가지 않았어요. 친구를 만나도, 부모님께서 오시거나 찾아뵈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루 24시간 늘 같이 있었어요. 집안일과 육아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들끼리 놀고 있을 때, 코로나 이전에는 쉬기도 했지만 팬더믹 기간에는 밀린 집안일을 했어요. 그때는 단 십 분도 내기가 힘들었을까요.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고 여덟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 상담이나 정신 상담을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산부인과를 선택합니다. 호르몬을 조절하는 피임약이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될 거라 했어요. 저와는 맞지 않아서 처방받은 약까지만 먹었습니다.


상담하기 위해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 시간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같이 있어서 못하니 둘 다 없는 시간, 자고 있는 시간을 이용하면 될 거 같더라고요.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글쓰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려고 하니 나의 과거를 떠올려봐야 했어요. 살아온 이십 대의 나는 열심히 살았고, 치열하게 보냈고, 욕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괜찮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때의 저처럼만 보내도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다시는 들지 않더라고요. 


계속 글을 씁니다. 방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자이언트 북 컨설팅에서 글쓰기 수업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쓸까? 어제 나의 경험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마다 볼 때마다 경험할 때마다 글쓰기와 연관 지어 생각합니다. 지나가는 아이의 표정도, 식당에 가서도 인테리어나 직원들을 살펴봅니다. 날씨가 추울 때, 바람이 불 때, 햇빛이 내리쬘 때 하는 행동이 어떤지 메모하고 기억하려고 해요. 


'글 쓰는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네요. 글쓰기는 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와준, 제 마음을 치료해 준 약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글쓰기를 멈출 이유가 없습니다. 제 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글을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아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은 사람,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꾸준함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요. 그들이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동안 글을 쓰며 배웠던 내용들을 공유해 드리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저만의 팁을 나눠드릴 예정이니 그날, 만나길 바라봅니다. 

글쓰기, 책 쓰기 코치 이혜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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