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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Mar 15. 2023

일상과 글쓰기_양


아침 여덟 시입니다. 남편이 타 지역으로 교육받으러 가면서 첫째 아이의 등교를 시키게 되었어요. 왕복 육 차선 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큰길까지 가기 위해서 골목길도 네다섯 번 지나야 하죠. 초등학교 2학년, 일곱 살인인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섭니다. 네거리에 서서 초록불의 신호를 기다릴 때였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대구 살 때, 이 층에 살았는데요 소파에 앉아 구름과 비행기 지나가는 걸 잠깐이라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이십 층에 살고 있어요. 아파트 대신 산이 보이고요. 워낙 층수가 높으니 굳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땅에 서 있으니 다시 하늘을 보게 되네요. 양떼구름이었어요.

양떼목장이 생각나네요. 첫째 임신했을 때, 여름휴가를 원주로 갔어요. 잠만 숙소에서 잤을 뿐 홍천, 춘천, 평창, 동해 쪽으로 다녔습니다. 강릉으로 넘어갈 때 평창에 들러 양떼목장을 갔었네요. 지금 아니면 대구에서 언제 여기까지 와 보겠느냐며 갔지요. 땡볕에, 임신 사오 개월쯤이었는데 그렇게 무리하지는 않았어요.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신랑을 보는 게 더 힘들었네요. 다시는 여름에 안 온다며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바퀴 돌고 내려와서 양몰이를 봤어요.

양을 보고, 먹이를 주는 일보다 양몰이를 보여주고 싶어서 원주에 이사 오고 나서는 언젠가 아이들과 가봐야지 했습니다. 어떤 날은 추워서, 날이 안 추우니 더위를 타는 남편과 같이 가야 해서, 일정이 없어 가야겠다고 생각한 날은 미세먼지가 안 좋아서 이런저런 핑계로 못 가봤습니다. 다음 달에 남편이 주말에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던데요 날씨도 시원할 때라 아이들과 다녀와야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양띠인 아들이 떠오릅니다. 구름을 보고 있는 제 옆에 아이가 있었죠. 양띠라서 그런지 순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딸 셋을 키우는 언니가 저희 아들을 지켜보다가 "얘 같은 애 열 명 있어도 키우겠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엄마 말을 잘 듣고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부모,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엄마 말 중 틀린 말이 있으니 네가 생각해 보고 아니다 싶을 때, 네 생각과 다를 경우에는 의견을 말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순한 편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순종적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네요.

양떼 목장과 양띠인 아들을 떠올리고 나니 하나를 더 채우고 싶었습니다. 양(羊) 말고 양(量)이 생각납니다. 작년 4월 말부터는 책 출간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초고를 써야 하는데 분량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초고라서 막 써도 상관없지요. 글을 쓰다가 '이게 주제와 무슨 관련이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대한 사례가 맞나?'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면 지웠어요. 과거의, 길면 팔 년 전의 일을 떠올려야 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막 적어 나가고 있는 이 글을 지울 때 머뭇거리기도 했어요. 주제와 관련이 없어서 결국 지우긴 했지만 A4용지의 한 장 반을 채운다고 여섯 시간 동안 글을 쓰고, 과거를 떠올리고, 혼잣말하고, 종이에 적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운 내용 대신 다른 사례가 생각났어요. 머릿속에 계속 글쓰기, 그때의 내 생황에 대해 떠올리다 보니 굳이 꺼내어 보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도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초고에 담기도 했고요, 아니면 또 혼잣말을 하다가 다른 경험이 떠오르면 적어 내려갔어요.

저의 경험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한 이유 세 가지, 나만의 기준 세 가지 이런 식으로 근거나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담으려고 했어요. 나만의 기준을 적을 때는 그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양 채우기가 좀 더 쉬웠습니다.

명언, 속담, 명대사를 활용하라는 말도 들었었는데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문구를 찾는 게 시간이 더 걸려서 글 본문에서 활용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초고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글을 썼는데 요즘은 어떨까요? 최근의 일을 적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케치 20분, 글쓰기 넉넉하게 1시간 30분, 퇴고(한두 번 정도 읽기) 20분 하면 끝이 납니다. 가까운 시점의 일이라서 기억이 더 잘 나는 건 있어요. 그렇다고 단순히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글 쓰는 시간이 짧아졌다고 말하기에는 좀 부족합니다.

'이걸 글로 어떻게 표현할까?' '이 경험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표현은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떠오르는 게 있으면 메모해 놓습니다.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종이의 절반은 시간을 기록하고 나머지 반은 메모하게 비워 두었어요. 수시로 글감과 관련된 내용을 적어요. 그 내용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남기고 있어요. 촉을 세우고 다니니 글감이 보이고, 상황을 눈에 담고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보여주는 글쓰기가 가능하니까요. 주제와 맞는 내용을 한 단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독자가 느끼게끔 쓰면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요. 이 부분은 독자가 나와 같이 있는 것처럼 느끼기 위해 지금도 관찰하고, 기억하려 하고, 기록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초고를 쓰고 난 후에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 이은대 작가님의 <<글쓰기 템플릿 21>> 전자책이 출간되며 분량 채우기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큰 틀이 주어지니 저의 경험이 그 틀과 맞아떨어진다 싶으면 스케치를 해갑니다. 하나의 템플릿만 사용하라는 법도 없어요. 쓰다가 양이 적다 싶을 때는 나열식, 즉 첫째 둘째 셋째를 적어갑니다. 그러면 또 생각해 내게 되고 양을 채워나가게 되죠.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 다시 하늘을 보게 됩니다. 이번 4월에는 아이들과 양떼목장도 가야겠고요, 자기 생각이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겨울눈이 보이네요. 어떻게 꽃이 피는지 보기 위해 당분간은 둘째 아이 하원 전후로 들려 살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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