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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여야 사는 여자 Apr 20. 2020

움직여야 사는 여자, 어디서부터 수축되었나?

수축된 내 몸과 마음




"김주원 씨죠? 여기 ○○대학병원입니다. 종합검진 결과가 나왔는데요, 병원으로 내원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가 편하신가요?”

청천벽력 같은 전화 한 통.

2016년 5월. 푸름이 극치에 다다를 즈음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하다 ‘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실감하게 된 날이었다.

83년생인 나는 40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 건강위험 진단을 받게 되었다. 36살의 건강한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 무너지면서 그 누구보다, 나의 아들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무엇도 아닌 죽음이 온다는 그 두려움 앞에서는 남겨두고 가야 할 나의 아들이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다.

“왜 하필 나? 왜 나야? 왜 저에요?”
앞으로 살날이 ‘몇 달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지만, 치료를 시작해서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죽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의 몸의 무기력함은 시작되었다.


나는 발레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KBS 어린이 합창단 안무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다. 나의 진로는 그냥 정해졌고, 보통의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연습했던 기억밖에 없다. 발레 하고 공부하고 발레하고 공부하고를 반복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와서도 늘 개인 레슨을 받으며 살과의 전쟁을 치렀어야 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까지도 나는 쁠리에를 하고 점프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매일같이 몸을 움직였다. 그런 내가, 나의 몸이 위축되기 시작하며 움직임에 등한시하기 시작한 것은 나의 병 때문이었다. 며칠, 몇 달간 나는 아무 의욕이 없어 집에 있는 시간엔 거의 누워있었다.



일과 살림 그리고 아이 교육이 항상 공존하는 주부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는 날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처럼 그냥 의욕 없이 누워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신에 대한 원망, 신경질, 게으름, 짜증으로 무장되어 나를 놓아 버렸다.

그 후 치료를 하면서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무작정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우리 동네 높지 않은 작은 산을 거의 매일 1시간 반씩 그냥 걸었다. 걷다가 조금 힘들면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걷고 집에서는 스트레칭과 명상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2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준 변화는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우선, 움직임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내 몸을 움직인다. 내 신체에 집중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움직임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하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전공이 무용인 사람들과 몸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신체를 모른다.

사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다 어디가 아파오거나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면 그제야 몸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한다. 우리의 몸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움직임 즉 무브먼트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멈추어 있던 자세나 자리가 바뀜 또는 자세나 자리를 바꾸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활동, 그리고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뀐다, 이다.
우리는 엄마의 몸속에 있을 때부터 몸을 움직인다. 태동이라는 신비한 움직임은 아마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생명의 신비, 움직임의 신기함을…….

아이를 예로 들어보자. 2개월 된 아기는 기기 앉기 걷기 손가락을 펴기 양육자를 따라 고개를 움직인다. 이 간단하다면 간단한 움직임을 보고 아이의 뇌 발달을 짐작하고 월령수를 따져가며 발육상태를 점검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부터는 움직임이 둔화되기 시작한다. 그 말보다 움직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저자는 교육현장에서 유아동기 청소년기 성인 실버세대에서 단계별로 움직임이 언제 감소하는지 왜 움직이지 않는지 살펴보고 연구했다. 결론은 움직임이 줄어드는 것은 움직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
스마트폰은 일평생 함께하는 기계이다. 아이들이 스마트 폰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움직임이 줄어든다는 말과 일치한다. 아이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청소년 성인 실버세대까지 전 연령의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스마트 폰의 특성은 우리의 몸을 더욱더 움직이지 않게 한다.

신체언어는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활동을 이야기한다. 내가 쓰는 신체언어는 곧 나의 언어이다. 우리는 다양한 언어로 소통을 한다. 몸짓, 눈짓, 말 그런데 거기서 의사전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몸짓이다.  
이러한 신체 언어는 상징을 통해 상호작용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인드(Hinde, 1972)와 마이어스(Myers, 1988)는 몸짓과 같은 언어가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 상대방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신체 언어는 음성, 문자 언어와 같이 사회문화적으로 정형화된 틀이 있다. 동시에 신체 언어는 음성, 문자 언어와 비교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곡 없이 나타나거나 통제가 힘든 경우가 있다는 특징도 있다. 이와 같이 신체 언어는 음성, 문자 언어를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다른 언어보다 표현에 있어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신체 언어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몸짓, 자세, 표정, 시선, 접촉 등은 음성이나 문자 언어와 구별되는 신체 언어들이다. 인간의 몸은 개체의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 사회·역사·공동체적 상황을 포함한다. 몸에서 나오는 몸짓은 이러한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독일의 히틀러는 특유의 몸짓과 제스처로 독일을 카리스마 있게 지배했다.

이와 같이 신체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 수단이다. 타인은 내가 보내는 신체 언어 표현을 보고 나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한편 신체 언어는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의 생각, 감정, 인체 생리가 신체의 움직임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권력을 가졌거나, 사람들 앞에 당당할 경우 가슴을 쭉 편 자세를 취한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모두 통용되는 신체 언어로 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쓰인다. 몸을 쭉 늘여 공간을 차지하고, 자신을 크게 보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힘을 가졌다고 느꼈을 때 몸을 쭉 펴는 자세를 취하지만, 이 자세를 취함으로써 힘을 가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즉, 우리의 몸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신체언어는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 신체언어는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도 스스로의 내면을 결정짓는다. 무궁무진한 기능을 가진 신체언어를 분석해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나의 외면과 내면을 결정짓는 열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대학생들과 만나는 오리엔테이션 자리, 아이들은 멀뚱멀뚱 매트에 앉아 웅크리고 있다. 신체훈련이라는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 내 얼굴을 마주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몸을 웅크리고 수축되고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있다.
신체를 쓰고 무대에 서는 이런 전공생 학생들도 몸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되듯 그 하루하루를 움직임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신체언어를 제대로 알고 움직임을 한다면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달라지는 나의 몸과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속에서 또는 나에게 주는 감사한 시간에 힐링 발레 스트레칭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나를 위한 나를 알 수 있는 힐링 발레 스트레칭을 나의 글을 통해 접한다면 나의 신체언어가 하는 메시지를 알고 움직인다면 달라지는 하루하루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거의 완치되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준 것은 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내 신체언어를 듣고 내 몸과 마음을 변화시켰다. 이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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