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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여야 사는 여자 Oct 18. 2024

술술 풀리는 집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마법 같은 일

우리 집에는 ‘브리’라는 아이가 있다.


“브리야, 깨끗이 부탁해!”


브리는 우리 집 로봇 물걸레 청소기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브리가 청소를 마치면 나는 물걸레 하나를 들고 대기했다가 곧바로 엎드려서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닦기 시작한다. 로봇이 주는 편안함과 그 시간에 다른 것에 열중할 수 있는 여유도 좋지만 나는 항상 다시 닦기를 반복한다. 청소란 그런 것 같다. 문명의 이기로 오늘날 사람 대신 해줄 수 있는 기계들이 넘쳐나지만 내가 직접 내 몸을 써서 더 깨끗하게 부지런을 떠는, 이 고된 청소가 좋다.


아침에 하는 청소도 물론 좋지만 나는 저녁 청소가 더 좋다. 하루의 마감을 청소로 끝내는 상쾌함, 그리고 그 다음날 주방에 들어섰을 때의 그 깨끗함, 절로 지어지는 미소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청소는 미소가 아닐까?


“혜리야, 내가 언제부터 일이 잘 풀렸을까?”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했다.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방문하시면 으레 엄마에게 잔소리부터 하셨다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주방 하수구는 매일 청소해라, 왜 이렇게 집에 먼지가 많으냐, 베갯잇은 3일에 한 번은 갈아줘라, 신발장 청소는 하는 거냐 등등, 외할머니가 잔소리하실 때마다 엄마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은 외할머니가 하신 그 잔소리를 내게 하고 계신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시는 엄마는 청소를 잘하고 나서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까지 인생 전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다.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엄마의 상황과 엄마의 일들을 잘 아는 나였기에 그 말에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청소하라는 엄마의 말이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고, 어쩌다 집으로 오시기로 한 전화라도 받을라치면 사흘 전부터 나는 우리 집 대청소를 하느라 바쁠 수바께 없었다. 마치 압수수색이나 점호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럴 때면 편은 왜 청소를 매일 안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며 내게 타박을 하곤 했다.


엄마의 게으름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비결인 엄마의 청소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엄마는 그날 설거지를 절대로 미루지 않았다. 항상 주방의 싱크대 안쪽 하수구 구멍까지 빡빡 청소를 하셨고 늘 물기 하나 없이 만드셨다.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샤워하고 나오시면서 욕조의 물기는 물론 머리카락 정리, 욕실 바닥까지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를 한 다음에야 나오셨다. 또 현관은 늘 아침저녁으로 물티슈로 닦으셨고, 커튼은 3개월에 한 번씩 꼭 세탁을 하셨으며, 안방의 베갯잇은 길게는 사흘, 짧게는 이틀에 한 번씩은 바꾸셨다.


일을 하시면서 어떻게 저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는지 내겐 신기했지만, 아랑곳없이 늘 엄마는 그 깨끗함을 유지하셨다.


그럼 나도 엄마처럼 청소만 잘하면 다 잘 풀리는 걸까? 내 입가에도 편안한 미소가 지어질까?


당신이 깨끗하게 치우고 나서부터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엄마의 말을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릇의 온기가 다 가시기 전에 설거지를 말끔히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과연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녹슬진 않았다.


두 달에 한 번 제사를 모셔야 하는 장손 며느리인 내가 굳이 식기세척기를 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상 그릇을 쌓아두지를 못하는 편이다. 내 눈에서 바로바로 깨끗하게 씻고 닦아서 제자리로 들여놔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쩌면 나 또한 몸속 어디엔가 깨끗함을 추구하는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깨끗한 그릇들이 물기 없이 잘 닦여서 제자리를 찾아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엔 싱크대 하수구를 깨끗하게 비우고, 또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물때까지 모두 없애는 의식을 치른다.


이럴 땐 내 맘속 때까지 모두 다 한꺼번에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쓱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오늘은 깨끗한 주방을 뒤로하고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 들어가면 분명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에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릿속까지 샤랄라 맑아지는 느낌을 기대하며 말이다.


이런 거였을까,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건?


깨끗해지는 내 머릿속과 맑은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에 온전히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것에 오롯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가 있다는 것! 게다가 그 깨끗함의 미소가 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데려다 놓을 것 같은 마법 양탄자처럼 인식된다는 것! 청소는 이렇게 내게 주문 같은 의식이며 통과의례였던 거다.


누구나 게을러지고 싶고 늘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언젠가는 해야 한다. 더군다나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지 않는 나 같은 경우 결국 청소의 주체자인 내 몫이다.


바로 내가 해야 깨끗해진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을 보거나 이불커버를 바꾼 바로 뒤의 침대 상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여행 첫날 첫 숙소에 들어갔을 때의, 그 박하향이 금세 풍길 것 같은 느낌이 이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행복감을 주는 대부분의 상태는 정돈되고 정리되고 깨끗한 상태이다. 그리고 정리가 되고 나면 또다시 정리가 하고 싶어 진다. 마루에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면 로봇청소기가 하는 물걸레질보다 훨씬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왠지 내 몸을 써서 하는 그 행위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도 덤으로 생긴다.


남편은 청소하면 장모님이 떠오른다고 한다. 사실 청소를 한다는 자체가 워킹맘에게는 무지 힘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일주일 내내 일을 하시면서도, 심지어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KTX로 서울에 오셨다가 당일에 내려가실 정도로 부지런까지 하시다.


그러니 이쯤 되면 일을 하느라 청소를 못한다는 말은 핑계다. 나보다도 연세도 한참 많으신데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가신 후 매일 8시가 되면 가게까지 문을 여시는 엄마다. 힘들다는 건 정말 나에게는 핑계일 뿐이다.


삶의 어떤 영역에서 정리를 해 본 사람은 그 필요성에 대해서 절대적 공감을 할 것이다. 자신의 생활공간이나 정신적인 영역에서 정리하고 비우는 것은 곧 어떤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덜 중요한 것은 비워내고 그 자리에 중요한 것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쓰다 미쓰히로는 <청소력>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에게 나는 돈 이상의 것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돈 대신에 걸레를 빌려줬다. 장소를 설정하고 범위를 작게 하여 오염을 제거하게 되면, 현재 잘 진행되지 않는 원인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로 인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해진다.


직접 내 손으로 정리하고 청소하는 행동, 그 행동력이 주는 선물은 생각보다 크다. 항간엔 글과 말을 자신의 얼굴이라고 한다. 비유를 바꾸어 나는 집도 자신의 얼굴이라고 하고 싶다. 정리되어 있는 나의 집과 나의 얼굴, 나의 상태가 모두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마법 같은 일들을 꿈꾼다면, 결단하여 비우고 중요한 것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혹시 모르지 않은가?


뽀득뽀득 맑은 청소자리를 타고 꽃가마 탄 복들이 넝쿨 째 굴러들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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