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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샘 Jul 21. 2020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물 아홉. 마흔. 연령 파괴 커플 '구혼일기' (1)

인도 노스센티널섬 원주민들은 문명과 단절된 채 지금도 신석기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그들이 외부와 차단된 이유는 오는 사람을 모두 활로 쏘아 죽이기 때문이란다.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등장한 이 기이한 섬에 내가 빠져든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질문에 그 시절 남편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 이유는 어쩌면 한창 이 신기한 섬에 몰입한 나를 깨운 그의 핀잔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또 저기(노스센티널 섬) 가본다 할까 걱정이다.”라는 그의 말에 왠지 버럭하는 마음이 올라온 나머지 나는 즉각 응징에 들어간 것이다. “왜 조용히 TV 보는 사람 건드리냐고!” 약 10분 후, 유튜브에서 ‘노스센티널섬’을 검색하는 나를 포착한 그의 재공격. “봐봐. 자기가 또 호기심 가질 줄 알았다고!”


남편 말이 맞다. 나는 미스테리한 이야기에 자꾸만 흥미를 느낀다. 예를 들면 미국 교내 총기 사건이나, 늑대 소년 소녀의 삶 같은 것 말이다(남편은 생뚱맞다며 피곤해한다). 이러한 호기심의 일환으로 나의 탐구심은 남편을 향한다. 잦은 걱정과 잔소리의 뿌리도 궁금하지만 실은 그의 특정 시기가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이야기를 곧잘 하는 나와 달리 그는 꼭꼭 숨긴다. 접근하려 하면 화살을 날리는 마치 노스센티널섬 사람들처럼, 과거를 묻는 이에게 “얘기 그만.” 하며 질문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아이 때 항상 모자를 썼다 했는데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고 여러 번 수술하는 바람에 머리에 흉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의 낡은 사진 앨범에서조차 대부분 흔히 볼 수 있는 어릴 적 사진이 없다는 것도 이와 관련 있을 듯하나 어쨌든 추측일 뿐이다.


지금부터는 좀 불가사의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 때면 그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다. (남편과 나는 대략 띠동갑쯤 되는, 합법적이지만 보편적이진 않은 나이 차의, 연상연하 커플이다). 고등학생인 내가 그 시절, 어린 그를 찾아간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이 시간 여행으로 현재가 통째로 바뀌는 일을 당한 것 같은 그러한 큰 영향(?)은 안 줄 범위어야 할텐데.(혹시 그의 이상형이나 이성관에 무의식적으로 - 예를 들면 저런 이상한 사람하고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 그런 선입견을 심어 줄 수도 있으니까)


1994년도쯤의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집 주변, 그러니까 부산 당리동 낙동 초교 근처 오락실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취권’이라는 무술 게임을 주로 했다는 것, 가끔 돈이 떨어지면 게임 잘 못 하는 형, 누나를 물색해 옆에 붙어 훈수를 두며 한두 판씩 얻어 했다는 것 정도다. 이 정보를 기반으로 나는 그 동네 오락실로 그를 찾아 나설 것이다. (점점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중…)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싶은데 모르는 고딩 누나가 오늘 처음 만난 애한테 친한 척 하고 사진도 찍으려 하면 좀 그렇겠지? 유괴범으로 의심당하지 않으려면 유의해야 한다. 왠지 동글동글하고 까만 눈을 한 야무진 얼굴의 아이일 것 같다. 게임하는 옆에서 사투리로 “이래 해요. 저래 해요.” 하며 훈수 두는 모습이 떠올라 귀엽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생일날 생일 선물을 보내 줄 수 있을 만큼 조금은 더 친해지고 싶다.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어릴 적에 생일을 잘 챙겨 받지 못했었다는 얘길 들었었고 그때 마음이 아팠으니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빠진 도중, 정신을 차려보니 PC 앞에 앉아 게임에 열중한 이제 어른이 된 그가 보인다. 남편이라는 노스센티널섬은 영원히 문명 따윈 침투받기 싫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내 시크한 표정으로 “뭘 봐?” 하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데... 답례로 쌍 하트를 보낸다. (에잇, 모르겠다. 돌아오는 생일이나 잘 챙겨줘야지.)     


내 나이 마흔, 남편 나이 스물 아홉 일 때 처음 만난 우리. 매일 싸우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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