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대학 졸업 후 편입준비도 하고 일본 어학연수도 가고 했지만 항상 결말이 약했다. 편입은 실패했고 일본 생활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J는 어린이 미술학원에서 1년 일했는데 아이들은 너무 예뻤지만 학부모 대응이 어려웠다. 결국 학원을 그만둔 J가 선택한 곳은 카페 등 요식업계였다. 손재주가 좋고 책임감이 강한 J는 어디를 가나 사장님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하지만 J가 항상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인간관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손님들을 대함에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했다. 결국 J는 이 가게 저 가게 전전하며 생활을 했다.
30이 넘도록 마땅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가족들은 돈을 모아 J에게 카페를 창업해 줬다. 손재주가 좋은 J라면 무리 없이 카페를 잘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와, 이제 30대가 된 J에게 번듯한 직업을 해 주고 싶은 소망에서였다.
20평 정도 되는 크기의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 카페를 계약한 후 가족들은 카페가 잘 돼 돈방석에 앉을 꿈에 부풀었다. 처음에는 나름 장사가 잘 됐다. 인수 시기가 여름이기도 하고 기존에 오던 손님들도 있었다. J는 아르바이트생도 뽑으며 카페를 운영했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매일 청소를 하며 깨끗함을 유지했다.
카페 운영이 몇 달 지날 때 즈음 J와 이야기도 나눌 겸 카페를 방문했다. J는 카페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단체 손님 여러 명이 와서 아메리카노 2잔 시켜놓고 자기네들 싸 온 음식 먹으면서 몇 시간씩 있어."
"어린애들 데리고 와서 애가 막 소리 지르고 뛰는데 가만있어."
"음료 여러 개 시켰다고 서비스 달라고 막 졸라."
카페를 운영해 본 적 없는 나는 이런 말에 적잖이 놀랐다. 카페 사장이면 우아하게 앉아서 손님 오면 음료만 내주면 되는 직업인 줄 알았다. 편하게 돈 버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나는 역시 세상에는 쉬운 직업이 없음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J는 지쳐갔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자 손님들은 점점 줄어갔다. 굳은 표정의 주인을 보러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월세도 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 종일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J는 결국 카페를 부동산에 내놨다.
J를 보는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갔다. 가족들은 J의 완고한 성격을 이유로 들었다.
"카페 운영하면 서비스도 주고 그래야지. 사람이 융통성이 없어."
"기분 나쁘다고 얼굴에 다 드러내면 손님이 오겠어? 나 같아도 안 간다."
"어느 정도 타협할 건 해야지. 성격이 너무 완고해."
그렇게 가족들은 J의 실패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비난했다.
그러던 중 J가 40대가 된 어느 무렵 우연히 공예 학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다. 손재주가 워낙 좋은 J는 입학시기를 기다렸다가 공예학교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미술대를 나온 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 듯하다. J는 공예 학교에 입학하면서 활기를 띄었다.
과거에 일 할 때는 어딜 가나 불만이 많은 J였다.
"그 사람 진짜 이상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등
그랬던 J가 공예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을 칭찬했다.
"교수님 성격이 너무 좋아. 여긴 이상한 사람이 없어" 등
요식업계에서 일 해 항상 설거지에 청소를 했던 J는 팔다리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공예 학교를 다니면서 아픈 곳이 많이 사라졌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서 그런가? J는 작품을 만드는데 집중하면서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J는 다녔던 과에서 수석 졸업을 했다.
J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J는 어쩌면 장인이 되려고 태어난 사람인지 몰라. 지금까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게 아닐까?'
J의 완고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은 카페 운영에는 안 맞았지만 장인이 되기에 적합한 성격이었다.
어쩌면 J는 이제야 자기의 길을 찾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