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결혼을 하고 낯선 시댁 식구들을 만났다. 3남매의 막내인 남편은 누나가 2명 있다. 시아버지는 결혼하기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시어머니, 형님네, 우리 가족까지 해서 14명이다. 화목한 편인 시댁은 새 식구인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음식은 주로 시어머니와 형님들이 하셨고, 설거지는 주로 둘째 형님이 했다. 결혼을 일찍 한 형님들은 며느리의 마음을 잘 알아 내 편의를 많이 봐줬다. 그래서 시댁 가는 게 그렇게 싫거나 부담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시댁은 시댁인지 가는 게 막 즐겁진 않았다.
여기에 더해 남편은 엄마가 불쌍하다며 때만 되면 시댁에 갔다. 다행히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휴가철 여행을 가게 되면 어머니와 함께 가길 바랐다.
"불쌍한 우리 엄마, 아빠 병간호 하시느라 여행도 다녀 보시지 못했어."라는 말과 함께.
내가 생각해도 70이 다 되도록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보시고 평생 고생하신 걸 생각하면 남편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번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혼 후 2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를 하며 관계가 틀어진 남편과 나는 교회 부부학교 수업을 듣게 됐다. 거기서는 원가족을 강조했다. 원가족은 나, 남편, 자녀다. 부모나 그 외 사람이 관계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다. 남편은 거기서 생각이 조금은 바뀐 듯했다. 전보다는 '우리 엄마' 하는 게 줄었다. 하지만 여행 갈 때 어머니 모시고 가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원가족 여행을 따로 가면서 1년에 한두 번 정도 어머니를 모시고 가니 나도 나쁘지는 않았다. 모든 여행에 어머니를 동행하면 불만이 생겼겠지만.
어머니가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보신 것을 생각해서 칠순을 기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이 여행으로 여러 가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랬던 남편이 몇 달 전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폭싹 속았수다> 보니깐 내가 너한테 많이 잘못한 거 같아. 뭐 할 때마다 엄마, 엄마 했었는데 이제 안 그러려고"
'잉? 이게 무슨 소리지?'
난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를 못 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남편이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서 나쁠 건 없다. 넷플릭스 가입을 안 해서 아마도 남편도 제대로 본건 아니고 유튜브 간편 드라마로 봤을 테지만.
그 후로 남편의 '어머니댁 가자'는 말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아이가 5살이 되면서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에서 피아노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가게 됐다.
참 사람 마음이 재미있다. 남편이 그렇게 나오니 오히려 내가 시댁에 가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우리 어머니랑 여자 조카들(시누이 딸들인데 중학생이다.) 데리고 워터파크 가자."
오히려 남편은 내 제안에 대답이 없다. 짠돌이인 남편은 그렇게 했을 경우 입장료, 식비 등 비용을 생각하는 듯하다.
"애들 이제 다 커서 우리랑 같이 안 놀 거야. 이제 중고등학생인데 오겠어? 그냥 어머니랑만 가자."라고 말하는 남편.
시댁 근처 워터파크에서 입장료 할인 어플을 찾아내 가격을 보여주니 그나마 수긍한다.
"그래. 뭐 이 정도면."
시댁 근처니 숙박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도 2만 원대 이다. 단 종일권과 오후권이 있는데 남편은 오후권을 주장했다.
"오전, 오후권 3천 원 차이야."라고 말하니
"3천 원도 6장이면 18,000원이야"라고 하는 남편.
그렇게 어머니, 나, 남편, 아이, 중학생 조카 2명이서 워터파크에 갔다.
수영복이 없는 어머니에게는 미리 쿠팡으로 래시가드를 보내 드렸다.
어머니도 그렇고 조카들도 너무 좋아했다.
"저 8년 만에 워터파크 처음 가요"라며 한 조카가 신나서 말했다.
여자 조카 두 명은 나이대도 비슷해서인지 워터파크 입장 후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5살 아이가 걱정돼 아이를 따라다녔다.
70이 넘은 어머니는 주로 온탕에 들어가 계셨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어머니와 조카들을 시댁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값, 입장료 등 많이 들긴 했지만 다들 즐거워하니 참 기분이 좋다.
남편이 그런다.
"큰 누나가 10만 원 보내줬었어. 밥 사 먹으라고"
어쩐지. 둘째 누나 딸이 엄마가 카드 주고 밥 사 먹으라고 했다면서 계산하려고 하는 걸 극구 말리고 전부 계산하는 남편을 보고
"뭐야. 주식 잭팟 터졌어?"라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누나들의 찬조금이었나 보다.
남편은 내가 돈 많이 썼다며 10만 원을 입금해 줬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나 친정 조카들과는 워터파크 갈 생각도 안 하는데 시댁 식구들과 놀러 갈 생각부터 하고 계획을 짜는 나를 보니, 이렇게 시댁 식구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