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의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해 했던 때가 있다.
어릴 때 "작자미상 구전동요, 구전동화" 이런 말을 들으면, 문자가 없던 시절 (혹은 문자가 있던 시절이더라도), 다음 세대에 입에서 입으로 노래나 스토리를 전달하려는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것에 대한 강력한 경험을 한 건, 바로 출산 직후였다.
초등학교 이후, 들어도 불러도 본 적 없던 오래된 동요들.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미국으로 건너와 접할 기회가 단한번도 없었던 동요들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다급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아는 동요들을 싸그리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요즘 동요들도 많겠지만, 내가 내 아이에게 불러주던 노래들은, 내가 아주 어렸을적 들었던 오래된 바로 그 노래들이었다.
과수원길
꽃밭에서
고향의 봄
고향땅
클레멘타인
오빠생각
반달
섬집아기 (지금 들어보면 매우 슬픔)
초록바다
아빠와 크레파스
아기염소
노을
등등….
그나마 아기염소와 노을은 내가 어릴적 창작동요제에서 발표된
꽤나 신상 동요였었는데, 워낙에 히트를 했던 지라, 기억에 남아있었다.
암튼 아이가 쉽게 잠에 빠져들지 않아, 더듬더듬 새 노래를 떠올리며 부르다가
<고향의 봄>, <고향땅> 이나 <오빠 생각>까지 부르기 시작했을 땐
정말 스스로도 미쳤다~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랬다.
분명 이 노래는 나보다 훨씬 윗세대 부터 불려오던 노래였을 테니깐.
나는 실향민으로서 고향을 그리워 하며 구슬프게 노래하던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어렸을 적 그런 동요를 듣고 자랐고,
이제는 내 아이에게 불러주고 있었다.
국제결혼 (요즘은 이런 말 조차도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라 느끼지만) 한 커플을 봐도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도, 갓난아이에게는 한국말로,
꼭 그 시절 그 어머님들 말투로 아이에게 말하는 걸 보게 된다.
마치 50년대 어머님들 말투라고나 할까.
그러한 말투는 자신이 자라면서 분명 한번도 써본적이 없는 말투일 텐데,
아이를 낳자마자, 내가 아이일 때 듣고 자라며 받았던
그 말투 그대로 아이에게 구전이 된다.
이제 더이상 갓난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는 라이프 스테이지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유튜브를 보고 있던 딸의 컨텐츠를 우연히 듣다가 빵 터져서였다.
항상 어린이 인플루언서 컨텐츠를 보는지, 만화 컨텐츠를 보는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도 내 귀에 특별히 들어오는 구절은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아이가 보는 프로에서 귀에 익은 구성진 가락이 흘러나왔다.
“손대면 토~옥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으~대애애애ㅐ~~~~”
그 시절 그 가수 현철 특유의 쪼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누군가.
나 조차도 지난 30여년간 단한번도 떠올려본적 없던 그 노래인데
듣자마자 그 시절로 기억 자동소환. 반사적으로 새어나오는 웃음.
깔깔대며 무슨 프로냐고 물었더니,
우리 딸은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엄마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아냐고 한다.
자신이 보는 트렌디한 신상 어린이 만화프로에서 나오는 노래를 엄마가 어찌 아나 싶나보다.
아마도 지금 한창 컨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는 세대는 내 나이 쯤 되었겠지?
그 사람이 제작하는 유튜브 만화 컨텐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지금의 아버지가 아닌, 그 시절 아버지가 2023년 연말에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또 이 노래는 여러 세대를 거쳐 우리 딸이 아는 노래가 되어버린다.
그냥 연말에 잡생각이 들며, 잡글 투척.
오래동안 고민해왔던 구전의 신비함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어봤다.
아니다, 이건 구전이 아니라 유튜브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