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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존과학자 C Nov 05. 2023

보존과학자

내 이마엔 자그마한 흉터가 있다. 아주 성급하고 제멋대로 꼬맨 흉터라 그 흔적이 곱지 못하다. 이미 커버린 나는 이제 그 흔적을 따라가볼 만큼 가는 손가락을 지니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거울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촉만은 한치도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나는 내 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것과 평생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니기도 한 그것과 평생을.

사실 보존과학자는 내가 아니라 너였다. 다만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어쩌면 한없이 늦어버린 어느 순간에 그 사실을 알아챘을 뿐이다. 나는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의 경로를 탐색하기라도 하듯 아주 느릿하게, 공을 들여 네가 이어붙인 내 파편들의 흔적을 따라간다. 온기와 냉기가 교차하는 그 흔적을 따라. 그렇다. 그건 록타이트의 흔적이다. 끈적하도록 달라붙는 접착제가 아닌 록타이트. 묽지만 강하게. 파편의 틈새를 따라 흐르다가, 한순간 맹렬히 열을 발산하며 자신의 존재를 불태워 그 틈을 메운 뒤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록타이트.

보존과학자가 완성한 작품은 너무나 정교해서 알아채기 쉽지 않았으나, 결코 나를 완전히 속이지는 못했다. 록타이트의 속성이 그러하듯, 그것은 모든 유연함을 잃어버렸다. 깨지지 않고서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부서지진 않겠지만, 그러기 위해 그 모든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래, 그것을 먼 발치에 놓아만 둘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눈으로만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평생을 가까이 갈 순 없는 채, 관람하듯 볼 수만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있길 염원하듯 1년을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멀리 떠난 사람처럼 지냈던 것이었으나 그날 전화기 너머의 네 목소리는 내가 세운 규칙과 기준을 모조리 무너뜨렸다. 나는 관람자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것과 가까이 닿아버렸다. 그래서 손으로 만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품에 안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섬세한 감각이 살아있는 두 볼로 그것의 온기와 감촉을 느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때 내가 모든 것을 지불하고서라도 지키고자했던 무엇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보존과학자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말라붙은 록타이트에 섞여 들어간 눈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보존과학자는 너였다. 너는 나를 이어붙였고, 그래서 나는 내가 보존과학자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그것이 착각임은 나를 이어붙인 보존과학자를 다시금 만났을 때에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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