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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Nov 21. 2023

무엇이 창작이고 무엇이 예술인가?

상상농담 33. 윌리엄 히스 로빈슨 <요란한 침대>

  유럽 중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는 나름 절친이기도, 앙숙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유독 이 세 나라의 국민성을 비교하는 유머가 심심찮게 점심 후식이 되기도 하니까요. 아시아라면 일본, 중국, 한국 뭐 이런 거겠지요?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프랑스 : 그냥 떨어진다.

  영국 : 여러 가지 충분히 고민 후 정리하고 떨어진다.

  독일 : 여러 가지 충분히 고민 후 정리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한밤중 운전하다 빨간 신호등이 켜진 건널목 앞에 섰습니다.

  프랑스 : 규정은 인간을 위해 있고 현재 건널목엔 사람이 없으므로 그냥 간다.

  영국 : 규정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경찰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고 없으면 간다.

  독일 : 규정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경찰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고 멈춘다.


  생각하기 나름일 테지요.ㅎㅎ  영국은 아직 왕의 권위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귀족의 사회적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누구보다 노동권이 발달된 나라입니다. 양극의 대립을 절묘하게 조절하지요. 철학도 대륙의 합리론과는 결이 다른 영국의 경험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문화엔 우리로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유머코드가 있는 듯합니다.  오늘은 영국에서는 인기 있는 화가였으나 우리에겐 생소한 윌리엄 히스 로빈스(william Heath Rovinson, 1872~1944)의 <요란한 침대>를 소개하겠습니다. 


  

윌리엄 히스 로빈슨 <요란한 침대>



  설명 없이도 누구나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규정을 지키되 감미료처럼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영국인답게 히스 로빈슨은 20세기 초의 공동육아 모습을 재치 있게 묘사했습니다. 아빠가 너무 강하게 당겼을까요. 화들짝 놀란 엄마의 표정이 황당 시트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아이는 시소침대의 적당한 흔들거림에 행복한 꿈을 꾸겠지만 엄마와 아빠는 단잠에 들 수 있을는지...  


  187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히스 로빈슨은 왕립 아카데미(Royal Academy)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풍경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의 그림은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산업혁명을 시작했고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영국인답게 얼토당토않은 기계장치를 삽화로 그려 넣었습니다. 터무니없는 그의 기계는 '히스-로빈슨 장치'라는 명칭으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지요. 그는 그 실용성 전무(全無)인 기계로 짜고쓰고맵고신 인간사에 달콤상큼발랄한 결말을 유도했습니다. 다수의 기계가 출몰하지만 과학적이지 않고 문학적인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의 일상에 웃음 동심원을 퍼뜨렸습니다. 정통회화에서 주지 못했던 효용이었지요. 


  미술사에서 디자인이나 삽화(illustration)는 정통 회화보다 낮게 취급되었습니다. 예술성을 논하기엔 너무나 저급하다고 생각했지요. 디자인은 창작이라고도 보지 않았습니다. 클래식보다 대중가요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관념은 현대에 들어 거센 도전에 직면합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힘이 세진 탓이었지요. 익명의 대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주도했고 소비는 곧 힘을 의미했습니다. 그동안 특정한 지위나 권력을 가진 자가 누리는 영역이었던 '예술 Art'은 대중의 생활 속으로 빠르게 침투했습니다. 산업디자인, 책의 삽화나 설명서의 도해까지도 몸값을 불렸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가 주최한 미술대회 1등 수상작 / M. 앨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구글이 정보를 민주화했듯, 유튜브가 지식을 민주화했듯, 시대는 예술을 민주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23년인 지금, AI 조차 예술 영역에 출사표를 던졌고 대진표를 받았습니다. 2015년 2월, 네이처지에는 조롱의 뉘앙스가 담긴 기사가 실렸습니다. 초등 수준의 비디오 게임을 하는 AI였습니다. 하지만 겨우 11개월 뒤인 2016년 1월,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알파고'의 기사가 실립니다. 예측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과 발전을 거듭했지요. 현재는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이미지를 삽입하면 자동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미드저니(Midjourney)가 손에 미술대회에서 우승한 트로피를 들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창작이고 무엇이 예술인가요?"


  누구도 생산할 수 있고,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누구도 소비할 수 있는 예술의 민주화가 진정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당대에 히스 로빈슨의 삽화가 정통회화를 향해 던졌던 장갑(Gauntlet)은 무시에 가깝게 외면당했습니다. 나중 후대의 주변인들이 그의 장갑에 묻은 흙을 털고 난 뒤 양손에 끼고는 '모더니즘'이라는 기차의 핸들을 잡았습니다. 그 기찻길의 어디메쯤 윌레스와 그로밋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지도... 



PS : 윌레스와 그로밋을 아시지요? 아침식사 장면이 꼭 히스 로빈슨의 그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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