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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Dec 18. 2023

꾸준히 꿈꾸는 겨울 아침

상상농담 34. 디에고 벨라스케스 <달걀 부치는 노파>

  아침을 열지 못합니다. 날이 몹시 춥군요. 창문을 꼭꼭 닫고 두꺼운 커튼을 쳤습니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올까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나약해진 현대인에게 차가운 겨울의 아침은 환대받지 못합니다. 따스함 없는 백열등의 좀스런 빛으로 집 안을 정돈합니다. 청소기의 소음과 그릇의 달그락 소리는 적막한 공간에 퍼지는 경쾌한 음악입니다. 대충 집 안을 정돈한 뒤,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달걀이 있습니다. 간단히 아침으로 커피와 수란은 잘 어울리지요. 흠... 문득 이 그림이 떠오릅니다. 지구의 가장 위대한 필사자가 되기보다 일하는 평범한 화가가 되고 싶다던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의 <달걀 부치는 노파, 1618>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달걀 부치는 노파, 1618>



  벨라스케스가 캔버스 안에 특별한 뜻과 상징을 두었는지는 물을 수 없지만 그가 스무 살도 되기 전, 그렸다는 이 그림엔 평범하지 않은 주제와 기법이 있습니다.  


  원근을 나타낼 만큼 거리가 있지 않은데도 뒤 배경은 멀고 깊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꾸리는 노파의 두건과 서늘한 소년의 목 깃과 흰 달걀, 그림자를 떨구는 질그릇에도 소금을 뿌리듯 빛이 뿌려져 있습니다. 캔버스 어디에도 광원이 없는데 사물들은 질감이 생생하고 입체감으로 도드라집니다. 당대 카라바조가 시작한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활용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는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가(大家)'가 될 순 없었겠지요. 


  17세기의 화가들은 사물을 사진처럼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눈이 보는 그대로, 아니 눈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옮겨오려고 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소설이 허구를 통해 진실을 담아내듯 재현을 도구로 본질을 그리려 했습니다. 정체성이란 그에게 유의미한 세상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둠은 더 어둡고 빛은 더 환해야 했습니다. 그는 캔버스에 풀로 초벌을 한 뒤 아마인유를 섞은 혼합물을 여러 번 덧발라 광택을 냈습니다. 완성된 그림이 벗겨지거나 갈라지지 않게 하는 예방이기도 했지만 납이 함유된 흰색 염료가 더 광채를 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파가 두르고 있는 두건의 색과 천의 투명함, 자연스러운 주름은 마치 방금 내 손으로 노파의 머리에 씌워준 듯 생생합니다. 금속 그릇의 차갑고 냉랭함, 반질거리는 붉은 양파, 심벌즈를 오므린 듯 챙그랑 소리가 들리는 냄비, 흰 접시 위에 떨어지는 칼의 그늘, 촘촘한 망태기의 한 올 한 올은 색의 제왕이라는 티치아노를 저만치 밀어냅니다. 도자기, 구리, 황동, 리넨, 멜론, 달걀, 유리 등의 재료만으로 대가(大家)는 보는 이의 미적 안목을 시험합니다.   




  놀라운 건 기법만이 아닙니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배경 속, 노파와 소년이 있습니다. 17세기는 주로 세력 있는 귀족의 초상화나 고대 영웅들의 모습을 그리는 바로크 시기였습니다. 화가들의 화가인 벨라스케스는 기존의 상식을 밀어내고 화면 중앙에 노파와 소년을 앉혔습니다. 명암과 색을 극대화한 목적이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효과에 있었다면, 노파와 소년 사이에는 아마도 화가가 의도한 회화적 상징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소년이 들고 있는 멜론은 십자가 형태의 끈으로 묶여 있습니다. 왕권을 상징하는 보주(寶珠)를 연상시킵니다. 오른손엔 와인병을 들고 있습니다. 또 당시 달걀은 일반 서민이 먹는 평범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부친 달걀과 멜론과 와인 등 귀한 음식을 먹을 당사자는 아마도 왕족이나 귀족이었을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묘가 안치된 세비야는 17세기, 부유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세계를 오가는 진귀한 물건들과 재화가 넘쳐났지만 대부분은 귀족과 왕실의 차지였지요. 은성(殷盛)한 도시의 변두리에는 풍요한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하려는 삯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루살이 삶을 상대로 한 선술집과 음식점이 늘어났고 밤마다 취객의 고함과 주먹다짐도 늘었지요. 이런 시대 상황은 스페인만의 보데곤(bodegón)이라는 그림 장르를 탄생하게 합니다. bodegón이라는 단어는 선술집 또는 식료품 저장실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bodeg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신분 낮은 사람들의 괴팍하고 초라한 일상이 주제였지요. '보데곤'은 신의 우렁찬 목소리를 전하는 성당의 종소리와 우울한 삶의 고통을 토해내는 취객의 주정 사이에, 예술이 만든 '짜부라든 인간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어둠에 잠겨있는 주방, 그 낡고 허름한 공간에 야윈 노파와 무뚝뚝한 소년을 마주 앉혔습니다. 유사 이래로 생명을 이어주는 가장 근원적인 장소에서 늙은 노파의 얼굴엔 비루함이 보이지 않고 어린 소년의 얼굴엔 체념이 없습니다. 둘은 마주 보지 않고 각기 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혹 불세출의 화가였던 벨라스케스가 보데곤이라는 장르를 빌어 스페인의 내일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린 온갖 풍상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내일은 넘치는 풍요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일하는 화가로서 그림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그를 만난 아침, 멈추지 않는 시간 위에 멈추지 않고 꿈꾸는 일이 있는지 묻는 겨울입니다. 창문을 열고 늦은 아침을 다시 맞습니다. 


PS : 이 그림처럼 갑자기 떠오른 영상이 있네요. 애니메이션 영화 중 제가 젤 싫어하는 <라푼젤>의 노래 '꿈이 있어' 입니다. 라푼젤은 머리카락이 넘~ 아주~ 정말~ 진심 아름답거든요. 제게는 없는 머리카랄이. (질투는 나의 힘. ㅎㅎ)  한번 들어보세요. 기분 전환이 되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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