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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Jan 22. 2024

Someday is Today

상상농담 38. 긍재 김득신 <출문간월도>

  “삶은 당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비로소 시작된다.” – 작가, 닐 도날드 월쉬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 어딘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머뭇합니다. 아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다 '어딘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이곳'이 아닌 '언젠가'. '어딘가'를 꿈꾸는 것이 우리의 삶이었던가요? 전 "Someday is Today"를 꿈꿉니다. 바라던 그 어느 날이 곧 오늘이기를...


  하지만 '지금', '이곳'만이 전부라면 그 또한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착하지 않을 뿐이지 항상 앞서 달리고 있는 삶의 척후병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등불과 같아서 조금 멀리 있어야 확연히 보입니다. 거리를 두었을 때 사고가 넓어지고 삶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지요. 닐 도날드 윌쉬의 말대로 지금, 이곳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어딘가로의 여행은, 그래서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문헌에만 있던 글귀를 실감한 여행 후기를 이 그림과 함께 합니다.


긍재 이득신 <출문간월도, 18세기>


  우리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조선 여인네 후덕한 얼굴같이 넓고 동그란 오동잎이 달빛에 흠뻑 젖었습니다. 먹의 농담은 오동잎의 얼굴을 밝게도 수줍게도 합니다. 먹에 붓을 덤벙 담갔다 망설임 없이 찍은 능숙한 솜씨입니다. 오동잎 차양을 두른 순한 초가(草家) 아래, 사립문 밖으로 아이가 나와 있네요. 아이는 두리번거립니다. 잠자다 깬 얼굴입니다.  


  달의 은가루가 마당에 쏟아진 탓일까요? 오동나무 둥치 옆에는 달을 보며 개 한 마리 짖고 있습니다. 개가 바라보고 짖는 것이 달인 지, 밤인지, 적막한 가을인지 궁금합니다. 왼쪽 위 제발(題跋)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卦梧桐第一枝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만 마리 개가 이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는구나. 동자에게 문 밖에 나가 보라 이르니, 달님이 오동나무 가장 높은 가지에 걸려 있어요)


  동자의 볼 멘 소리에 사립문 안 선비는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봉황이 앉는다는 상서로운 오동나무 아래에 가을을 지키는 개가 달을 물고 있으니까요. 이런 고즈넉한 그림 <출문간월도>를 그린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년(영조 30년) ~ 1822년(순조 22년))의 단정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는 도화서 화원이었던 복헌 김응환의 아들이었습니다. 3대에 걸친 화원 집안으로 궁중의 기록화, 장식화, 정조의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습니다. 김홍도 화풍에 영향을 받았고 다소 익살스럽고 구순한 풍속화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선비의 삶에서 경계하고자 하는 뜻을 익살스러움에 숨겨 놓았을까요? 달을 보고 짖는 개는 얼핏 '촉견폐일(蜀犬吠日)- 촉나라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라는 고사성어를 떠 올리게 하고, 그의 제발은 한나라 왕부(王符, 85~162)의 <잠부론 潛夫論>에 근거해 있습니다. 




  제가 여행한 귀주성 흥의 시는 옛 촉(蜀) 나라 땅입니다. 맑았던 날씨가 흥의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운무가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 폭의 수묵화가 펼쳐졌습니다. 중국 창세신화에 하루에 장(丈)씩 자라 하늘과 땅을 나누었다는 반고가 흘린 검은 땀방울 같았습니다. 원추형으로 솟은 봉우리들과 체로 거른 가늘게 내리는 비, 바람이 몰고 가는 구름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예술이었습니다. 기록은 거짓이 없어 촉은 역시나 우중(雨中)이었네요. 문헌으로만 알던 눈으로 보니 시대의 언어들이 가지런히 펼쳐졌습니다.


  비가 이어지는 어느 날, 해가 찬란히 빛납니다. 일상적인 것에 익숙했던 개는 그 빛남이 두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겠지요. 해가 나자 개가 짖습니다. '촉견폐일'입니다. 이제 한 마리의 개가 짖자 영문 모르는 개들도 따라 짖습니다.  


  一犬吠形, 百犬吠聲

 (한 마리 개가 어떤 모양(形)에 짖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에 짖는다)


  왕부가 쓴 <잠부론 潛夫論>의 구절입니다. '잠부(潛夫)'는 잠적한 사람입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시기가 알맞지 않을 때 삼가고 몸가짐을 바로 잡으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해가 찬연한 하늘이 정상인데 낯설어 짖는 개처럼, 또 누군가 짖는다고 따라 짖는 개처럼 부화뇌동하고 있지 않았나 그림 속 선비에게 묻습니다. 선비는 대답이 없고 동자만이 눈 비빕니다. 


  '언젠가', '어딘가'로의 여행이 끝났으니 '지금', '여기'에서 고요한 달을 보라고. 



PS : 영화 <첨밀밀> OST <월량대표아적심>, 오랜만에 이 노래 들을까요.




#촉견폐일

#귀주성흥의

#왕부잠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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