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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Jan 30. 2021

어른이 된다는 것

그 멀고도 험한 여정



 며칠 전 14년 지기 친구가 결혼식을 올렸다. 생각해보니 내 나이 스물다섯, 슬슬 경조사를 챙길 나이가 되었더라. 초등학교 때 같이 뛰어놀던 친구는 어느새 동반자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분명히 너무나도 어엿한 어른이 된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에 꼬마 시절의 친구가 겹쳐 보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흔한 예식장 인테리어와 들뜬 분위기,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결혼식장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어색한 마음이 컸다. 중학교도 다른 곳으로 가고, 고등학교 때 이사 오면서 자주 만나지도 못했던 친구인데 새삼스레 왜 눈물이 나려고 하던지. 내 가까운 지인의 첫 결혼이라 그런가, 그 기묘한 감정은 아직도 내 곁을 맴돈다.








 결혼식을 보며 ‘나도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진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예전에는 당연히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요즘은 경제적인 독립만 가능하다면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평생 연애나 동거만 하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해 거쳐야 할 여러 절차를 떠올리면 귀찮은 마음도 앞선다. 그런데 막상 아름다운 신부와 결혼식 특유의 그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눈앞에 직면하니 나도 한 번쯤은 결혼식을 올려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른다. 하긴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 아직 졸업도 못 했는데.








 어렸을 적, 정확하게는 미성년자였을 때 나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온갖 제약을 벗어난 자유와 젊음, 열정으로 가득 찬(줄 알았던) 청춘의 삶을 꿈꿨다. 점심시간이면 사원증을 목에 메고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든 회사원들을, 왠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나는 구두를 신은 어른들을, 순대국밥에 미지근한 소주 한 잔을 말아먹는 어른들을 동경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우러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여유로움과 전문성을 느꼈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 저 여유로움은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에서 비롯되었으며 전문성은 업무로 누적된 피로감이 가득한 눈빛에서 생성된 나의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참으로 간사하게도 어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생일 때가 좋았지’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더라. 꼰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 시절이 좋았지’가 내 입에서 나오다니, 꽤 충격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인생은 꼰대의 연속이었다. 초등학생도 미취학 아동에게 ‘학교 안 다닐 때가 좋았어’라는 말을 종종 하지 않는가. 그것과 다를 바 없지 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과 책임만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 같은 어른은 참 멋져 보였는데. 역시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막상 어른이 되니 울타리 속의 한 마리 양 같던 학생 시절이 얼마나 그립던지. 작은 실수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올 때가 많아지고,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여러 문제 –가령 돈이나 시간이나 여유 같은 것들- 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늘 내 곁에 있으리라 믿었던 순수함이나 설렘, 희망, 기대 따위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걸 보면 참담할 때가 많다.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들이 늘어난 만큼 빈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는 늘 아쉬움이 차지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어려지고 싶다. 예전에는 눈길도 안 줬던 ‘안티에이징’ 따위의 문구가 붙은 상품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고, 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어린 상대를 마주하면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이, 아니 내가 이렇게나 간사한 존재다. 








 철이 좀 늦게 드는 편인지 (아니면 평생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면 왠지 더 하기 싫어지고,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에만 관심이 간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 스펙 쌓고, 커리어 쌓고, 뭔가를 하려고 하던데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안 생긴다. 하는 일들에 연관성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니 개연성이 존재할 리가 없지. 그나마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원하는 곳에서 맘껏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뿐이다. 이제는 깡소주를 즐기지 못하는 나약한 몸이 되었지만, 일과를 마친 후 맥주 한 캔이 선사하는 안락한 알싸함은 여전히 사랑한다. 목으로 넘기는 순간 느껴지는 청량감과 식도와 위장을 타고 퍼지는 시원함, 어느새 발끝까지 스멀스멀 밀려오는 알딸딸한 취기까지. 힘들고 고된 순간을 잊기에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어른이 되어 힘든 순간이 더 늘어난 것은, 알콜이라는 해독제가 허용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어른의 삶에는 ‘보이지 않는 정해진 규칙’이 존재한다. 적어도 대졸 타이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취직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그런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 말이다. 이 쓸모없는 규칙은 적정 나이대별도 함께 규정하고 있어서, ‘꽤 빨리/늦게 졸업, 취직, 결혼, 출산한 편이네’라는 말까지 듣게 만든다. 내가 지금 20대라 이런 말을 듣지 3~40대가 되면 아이와 배우자에 대한 참견을, 5~60대가 되면 며느리나 사위 따위에 대한 참견도 듣게 되겠지. 지들이 뭔데 시발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아본다. 이미 말한 거 아니냐고? 이건 글로 적은 거니까 말한 건 아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규칙들은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왔고 결국 ‘나는 언제 저 규칙에 따르게 될까’하는 불안함 섞인 의구심을 선사했다. 뭘 줄 거면 이런 거 말고 로또 번호나 줄 것이지.








 이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죄를 짓게 된다. 오늘 점심에만 하더라도 모친으로부터 어디 나가서 ‘둘째 딸은 뭐해’라는 질문을 들으면 ‘아직 학교 다녀’라고 대충 답하는데, 그 나이에 왜 아직도 학교에 있냐며 몇 학년이냐고 물어오면 뭐라 답을 못하겠다는 한탄을 들었다. 초과학기자라고 하거나 나 혼자 이상한 사업 하고 있다고 답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가 눈빛으로 두들겨 맞았다. 아직도 시큰거리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었고,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죄인이 되었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로 남기 위해 주어진 어른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되면 내가 추구하는 삶은 어디로 사라지게 될까. 이런 게 어른의 삶이라면 동경은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테다. 평생 아이로 남고 싶다. 타인의 삶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로.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했던 6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다른 원고나 서평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붓한 공간 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이미지는 직접 구매하여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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