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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May 12. 2024

추억


여든을 넘겼지만 소화력만큼은 남다르신 어머니는

리가 좋지 않아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일 말고는 지금까지 별 무리 없는 생활을 해 오셨다.


지난가을에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금방 쾌차를 하였는데 기저질환인 고혈압을 앓는 데다 음식물이 위 대신 기도로 넘어가며 올봄에 다시 코로나에 걸리면서 폐렴까지 겹쳐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다.


아직 몇 년은 더 거뜬히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슬픔을 느낄 새도 애도를 할 사이도 없이 남동생에게서는 하루에 두세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슨 몇 년 전에 마을로 이사를 온 사람이 같은 동향의 친구가 사는 집 옆으로 이사를  오고 싶어 한다고 어머니가 떠난 것을 아는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연락이었다.


먼저 이사를 온 그분이 대동한 친구와 그리고 이장님이 집을 보고 갔다.


작년에 새로 얹은 지붕이며 새것으로 교체하여 아직 광택이 나는 싱크대와 화장실 그리고 벽지와 바닥 거기에 창문까지 새로 하여 집은 새집이나 다름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러 채의 빈집 중 그분은 우리 집이 제일 맘에 든다며 얼른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말할 기력도 없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며 동생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고만 하였다.


내가 태어난 집은 오랜 여름 장마로 무너지고 두 번의 이사 끝에 우리는 지금 있는 터전으로  도망치듯이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올 당시에 집은 좁은 데다 흙으로 지어진 집은 무너질 듯 말 듯하였는데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밥을 지으면 연기가 구들 틈새로 들어와 매캐하고 자욱한 연기로 우리는 눈을 비비며 자주 컥컥거렸다.


방은 두 개지만 비좁은 방에 점점 키가 자라는 우리는 두 다리를 뻗지 못하여 잠을 잘 때면 굼벵이처럼 오므리고 자야 했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한여름에 벌어진 지붕 틈사이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대야나 양동이를 방바닥에 받쳐 두어야만 하였다.


한여름에는 비가 새고 굴뚝 대신 방으로 흘러 들어오는 연기를 보며 내 마음속엔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살려면 네모 반듯한 집이 꼭 필요하겠구나는 생각으로  나는 일찍 집을 떠났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는  나는 마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오하라가 타라의 황폐한 농장과 불탄 목화밭을 재건하는 것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집을 짓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렇게 나는  이십 대 중반이 되기 전에 꿈에 그리던 집을 지었고 우리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집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김장철이 다가오면 몰독 같은 고무통에  하얗게 절여진 배추를 씻어 양념을 묻히며 한동안 집에서 김장을 하였다.


새집을 지었다며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놀러 오고 가끔 먼 곳에 살던 친척들도 지나가다  들러 쉬어가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펜션이나 리조트에 모이는 것도 좋지만 세컨드 홈처럼 가끔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동생들과 어머니를 추억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손쓸 사이도 없이 집은  팔렸으며 불이 나듯 하루에 두세 통씩 매일 전화를 하던 동생에게서 더는 연락이 없다.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집에서 모이는 것과 아니면 가끔 나라도 들러 어머니를 추억하고 싶은데 사람이 오래 살지 않은 집은 낡고 허물어진다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치부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떠나고 집은 이제 새 주인을 맞아  가고 싶어도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접고  추억 속에서나마 어머니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서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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