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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아나 Jul 26. 2019

그 남자의 책상

취향에 대하여.

사무실 자리에 앉아 첫 글을 적으려 키보드를 만지작만지작.

당신을 말해주는 것들.


첫 번째 기록.


무엇을 남기기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본다.


그 사람의 물건을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생각, 습관, 취향도 알 수 있을 것.


시선이 오른쪽을 향한다.

최근에 읽고 있는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부터 김연수 작가의 '언젠가, 아마도'. 하현의 '달의 조각'이 꽂혀있다. 에세이를 좋아하는구나.. 싶다. 업무와 관련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우리말 큰 사전'도 보인다.


소설은 생각을 없애고 싶을 때 자주 봤다.

근래에는 정유정 신작 '진이, 지니' 히가시노 게이노의 '마력의 태동'을 재밌게 봤다.

소설은 한 번 펼치면 멈추지 않고 보통 주말에 몰아서 한 번에 다 읽는 것을 즐긴다.


책상 왼 편에 놓인 달력과 스케줄러, 포스트잇들.

학생 때부터 메모를 좋아했다. 기억력이 부족해서였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매일 진행하는 방송과 더불어 비정기적인 행사, 캠페인 녹음 등이 수시로 이뤄지다 보니 메모지가 여기저기 놓여있지 않으면 분리불안을 겪는 것 같기도 하다.


모니터 옆에 놓인 달력 역시  월 초에는 깨끗했던 면이 30일에 되면 고쳐 적고 다시 적고, 지웠다가 채우기를 반복해 지난 6월의 달력을 보고 있자면 달력 한 장에 고스란히 당시 고군분투했던 지난 나의 전투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펜 욕심도 많다. 책상 첫 칸에는 빼곡히 펜들이 놓여있다.

끄적끄적 틈 날 때마다 다이어리에 그 날의 생각을 옮겨 적는다.

적은 글들을 자주 다시 들여다보진 않지만 계절이 바뀔 때쯤 한 번씩 읽다 보면 아.. 올해 봄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가령,

2019년 3월 5일 적힌 글의 일부는 이렇다.

" 말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 화살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모르겠다는 순간이 있다. 내가 뱉은 말들은  분명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데 여기저기 의도치 않게 흩뿌려진 말은 오해가 더해져 크고 작게 다른 마음들을 찌르고 있다. 선배는 내게 말한다. 애초에 너 마음대로 되는 것들이라면 다시 꺼내 대화할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아프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말과 행동을 올바르게 하는 것"인데 나는 아직도 어설프다, 아주. 어설픈 내 모습을 보는 자신도 참. 그렇다. "


웃기게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도 안 나는데 매일 그렇게 사소한 갈등 상황이 빚어지는 날들을 지금도 보내고 있다.


다이어리를 덮고서 옆 자리 여자 선배의 책상을 힐끗 쳐다본다.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할 때와 그 사람의 물건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화장품 파우치와 가지런히 놓인 핸드로션, 빨간색 펜, 진행하는 프로그램 대본, 자주색 텀블러와 흰색 이어폰.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


" 아, 선배는 이런 것들을 좋아하구나. 중요시하는구나 "


이제니의 시집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표지만 보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 샀다. 아마 이렇게 책을 고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을까. 매일 보는 직장동료, 전화로 안부를 묻는 친구와 가족. 그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하며 살고 있나 스스로 생각해 본다. 


어쩌면 앞으로 무언가 써 내려갈 이 공간이

남을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나를 알아가게 하는 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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