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다짐.
최근 서점에 갔다 제목만 고른 또 한 권의 책. 아직 읽지 못했지만 제목은 계속해서 맴돌았다. 휘청휘청. 지난주부터의 내 일상은 주변으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큰 반동을 가지고. 주된 원인은 틀어진 인간관계와 나의 능력을 벗어난 행동에 대한 자책과 부담감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아침 뉴스 앵커는 늘 긴장 속에 산다. 보통 그래서 6시 출근 3시 퇴근을 기본으로 한다. 그게 통상 'am9-pm6'근무의 세 시간 앞당겨진 스케줄이다. 방송국 특성상 두 번의 출근을 하거나 유연근로제를 하는데 해당되는 경우가 방송직들이다. 아나운서, 기자, PD와 같은 직군들. 나 역시 이에 속하고 아침 뉴스부터 17시 라디오 뉴스를 마치고 퇴근을 한다. 예외적으로 행사가 있거나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은 똑같이 새벽에 출근해 밤 10시에 업무가 끝난다. 또 그럼 한밤중에 집에 들어가 정신없이 씻고 바로 누워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이 주기가 반복되고 최근에는 새로 투입된 일에 연이틀 이런 근무를 하고 나면 온 신경이 곤두섰다. 묻는 말에도 날 선 대답이 나오기 일쑤였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잠이 부족하니 좋아했던 일들도 피곤하게 여겨지고 의욕은 떨어졌다.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침 뉴스 앵커를 하다 보면 지각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이 있다. 특히 생방송 스탠바이 시간은 늘 정해져 있는데, 약속한 시간보다 5분을 늦으면 생방송 뉴스는 시작이 되고 모든 게 끝나버리는 상황. 그래서 침실에는 자명종 시계 4개가 놓여있고 휴대전화 알람도 여러 개 맞춰져 있다. 첫 알람에 대부분 일어나지만 전날 많이 피곤하거나 평일 회식이 있으면 몸은 더 바짝 긴장을 한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 어느새 3년째, 아침에 알람을 깨고 세수를 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알람 소리가 귀에서 울려댔다. 분명 껐는데...? 따르르-릉----따르르-릉---- 분명 알람시계를 다 껐는데 소리가 나네? 귀에서 자꾸 알람 소리가 맴돌았다. 그럼 세수를 하다 말고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알람시계에 가서 제대로 꺼졌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런 날이 많아졌다. 아..... 이것은 내 귀가 이상한 거구나.
이명(耳鳴)이 들린다는 것은 어떤 징조 같은 것이었다. 노이로제. 정확한 우리말 명칭은 '신경증'. 신경증의 정의는 이렇다. "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 그렇다. 나는 신경증을 앓고 있었다. 적힌 정의 그대로 인격 변화를 겪고 있고,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업무가 늘고 직업병은 그래도 다행히 나로 인해 비롯되는 문제이니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회사에 어떠한 부정도 달고 싶지 않았다. 일이 힘든 건 참으면 됐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현재 겪고 있는 많은 인간관계의 불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마음 놓고 사무실에 있는 시간은 적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무섭고 두려웠다. 자꾸만 피하고 싶어 진다. 혼자 하는 일이 없는데, 나는 같이 할 때 불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겁났다.
어쩔 수 없지. 나를 우선하기로 한다. 나도 당신이 그렇듯이 내 인생이 먼저니까. 타인은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하는 일에 대한 애정까지도 더 떨어지기 전에 이기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회식자리며, 나를 찾는 자리에는 군말 없이 나가서 자리를 지켰는데 이제는 거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이미 거절은 시작되었다. 내 마음의 병이 치유될 때까지 협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