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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typist Aug 14. 2019

<Closer>

바이닐 컬렉션 005: Joy Division, 1980


음악계에서 후대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팀이 알고 보니 활동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아 종종 놀라게 되곤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도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바르샤바, 워소(Warsaw)로 불리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이 디비전으로 활동한 기간은 1977년부터 1980년까지의 3년 정도에 불과하고, 그 동안 남겨진 정규 앨범은 단 두 장뿐이다. 그중 한 장은 지난 포스팅에서 다룬 데뷔 앨범 <Unknown Pleasures>이고, 다른 하나가 이번에 소개할 <Closer>다.


프런트맨 이언 커티스가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지 두 달 뒤인 1980년 7월에 발표된 <Closer>는 호평받은 데뷔 앨범과 그 사이 발표된 싱글의 히트, 그리고 커티스의 자살 등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상태에서 발매된 덕분에 영국 앨범 차트 6위까지 올랐다. 앨범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포스트-펑크의 기념비 중 하나로 꼽히는 전작과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극찬 일색이다. 패기 있는 많은 밴드의 음악적 전개가 그렇듯 데뷔 앨범이 특유의 사운드와 에너지를 날 것으로 거칠게 담아냈다면, 이후 발표된 이 앨범은 밴드의 색을 이어가면서도 한층 성숙한 인상을 준다. (팩토리 레코즈의 사장 토니 윌슨은 이 앨범의 상업적 성공을 예상했다고. 물론 커티스의 비극은 예견하지 못했겠지만.) 전작에 이어 다시 프로듀스를 맡은 마틴 해넷에 대해 버나드 섬너와 피터 훅은 불만이 많았다고 하지만 멤버 각각의 파트가 아닌 종합적 결과물만을 접하게 되는 팬의 입장에서는 이 이상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Atrocity Exhibition", "Passover", "Colony", "A Means to an End", "Twenty Four Hours"처럼 기타가 이끌어 가는 곡들이고, 다른 하나는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Isolation", "Heart and Soul", "The Eternal", "Decades"다. 작업 순서도 전자가 먼저, 후자가 나중이었으므로 전자는 <Unknown Pleasures>의 연장선으로, 후자는 밴드가 이후 (뉴 오더라는 다른 이름으로) 취하게 될 방향의 첫 단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개인적으로 두 앨범을 거의 동시에 처음 접했을 때 전작보다는 <Closer> 쪽에 좀 더 쉽게 끌렸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당시로서는 새로운 소리 요소였겠지만 지금은 80년대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더 큰) 신시사이저였다. 사실 어둡게 펑크록스러운 전자의 곡들을 더 좋아함에도 불구하고어디를 가도 어두운 폐공장 같은 무거운 공간을 연상시키는 이 앨범에서 신시사이저의 가벼운 사운드가 잠시나마 인공적이지만 산뜻한 조명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이 앨범을 21세기의 회고적 관점이 아니라 1980년 당시의 팬으로서 경험했다면 이제 막 자리 잡은 조이 디비전 고유의 음산한 매력이 변질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동시에, 밴드가 향후 더 다채로운 사운드를 구사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큰 기대를 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물론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밴드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졌을 뿐일 수도 있지만.



앨범 커버는 전작의 디자인을 맡았던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마틴 앳킨스(Martyn Atkins)와 함께 작업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위해 오리지널 이미지를 직접 만들지 않고 기존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는 새빌의 포스트모던한 방식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다. 판화용 카드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드러내는 종이에 인쇄된 <Closer>의 디자인은 미묘한데, 정사각형 공간을 캔버스처럼 사용해 단일 이미지로 가득 채우는 일반적인 앨범 커버 디자인과 달리, 흰색으로 비워둔 바탕에, 사방 여백을 두고, 가는 선의 프레임을 두르고, 제목과 사진을 중앙 정렬로 배치한 구성이어서 단일 이미지가 아니라 레이아웃 작업이 된 지면으로 인식된다. 또한 고전적 서체로 세팅된 텍스트와 종교적 이미지를 담은 흑백 사진이 고딕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얼핏 중세 책의 지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지면의 핵심 요소로 자리한 사진은 오래된 이미지가 아니라 당시 새빌이 트렌디한 잡지에서 발견한 버나드 피에르 울프(Bernard Pierre Wolff)의 동시대적인 사진 작품(1978년 작)이다.


"그리스도의 애도"(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후 끌어내려진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여러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종교적 주제 중 하나다.)를 표현하고 있는 사진 속 이미지는 아피아니(Appiani)라는 귀족 가문의 묘에 조각된 것이다. (이 묘가 자리한 이탈리아 제노아의 스타질리에노 공동묘지는 이후 조이 디비전 팬들의 순례지가 되었다고.) 묘지를 촬영한 울프의 이 사진들에 새빌과 밴드 멤버들 모두가 매료되었고, 그중 멤버들에게 선택된 한 장이 앨범에 실린 이 사진이다. 팬들은 커티스의 죽음 이후 발매된 이 앨범의 커버가 묘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사실 커버 작업은 그의 죽음 이전에 이미 완료된 상태였고, 이후 새빌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하면서도 생전 커티스의 선택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바꾸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조이 디비전의 남은 멤버들이 이 앨범 다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은 뉴 오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놓은 <Movement>다. 이후 뉴 오더가 다수의 명반을 통해 80년대 전반에 걸쳐 펼쳐 보인 일렉트로-팝의 신세계는 분명 당시 팬들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을 굉장한 것이었지만, 폐소공포증으로 묘사되곤 하는 조이 디비전의 어둡고 황량한 아름다움의 음악이 유령 같은 커티스의 크루닝(crooning)과 함께 좀 더 이어질 수 있었다면 또 다른 차원의 고딕 록, 혹은 포스트-펑크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이닐 컬렉션 #005

뮤지션: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

타이틀: Closer

발매일: 1980.7.28

장르: 포스트 펑크 / 고딕 록

레이블: 팩토리 Factory - 라이노 Rhino

제조국가: 미국

버전 발매 연도: 2015

카탈로그 넘버: FACT 15, R1-56282

바코드: 825646183913

기타: 2007년 리마스터 / 180 Gram


트랙 리스트
A1. Atrocity Exhibition *

A2. Isolation *

A3. Passover *

A4. Colony

A5. A Means to an End *

B1. Heart and Soul

B2. Twenty Four Hours

B3. The Eternal

B4. Decades

*는 추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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