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에서 자리를 잡고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 곳은 카지미에르 돌니(Kazimierz Dolny)라는 작은 도시였다. 바르샤바와 비교적 가깝고, 하루 만에 둘러보기에도 충분하다고 해서 결정한 곳이었다. 오후에 출발해서 도착 후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마을을 구경한 뒤 바르샤바에 돌아오기로 했다.
국내 여행도 혼자 가 본 적이 없는데, 해외에서 혼자 여행을 가다니! 블로그를 열심히 찾아보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가는 길부터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차를 타러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주차장에 승합차만 한 버스가 도착하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차에 타기 시작했다. 길을 건너며 그 모습을 본 나는 혹시라도 사람들을 태우고 버스가 바로 출발할까 마구 뛰었다. ‘나도 버스 타요!’라는 눈빛을 보내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버스 앞까지 다 왔을 때쯤, 나는 얼음을 밟고 미끄러졌다.
가방까지 놓치며 완전히 미끄러져버린 나를 보며 주차장 위에 있던 남자들이 큰 소리로 비웃었다. 넘어진 아픔보다 그 남자들이 웃으며 폴란드어로 말하는 소리 때문에 민망해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여성분께서 크게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분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었다.
“Madam, are you okay?”
그분은 내 바지와 가방에 묻은 눈도 털어주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날은 금방 어두워져 깜깜한 밤이 되었다. 마을 정류장에 내리면 다시 위치를 잡아 숙소까지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류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기사님이 대뜸 나에게 카지미에르 돌니에 가지 않냐며 어디서 내리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카지미에르 돌니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말했다. 차가 가는 방향과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건지 계속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어보길래 일단 숙소 예매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기사님은 주소를 보아도 정확히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듯했다. 무언가 잘못된 걸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기사님은 버스에 탄 승객들에게 말을 걸었다. 폴란드어라서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숙소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조용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가..? 차라리 이런 상황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면 무식하지만 용감하게라도 행동했을 텐데, 괜히 불안감이 더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 정도 되는 곳에 여행을 왔다고 생각했는데, 완주 정도 되는 곳이었나 보다.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한 남자가 무어라 대답을 했다. 기사님과 몇 번의 대화가 오갔다. 몇 분 뒤, 나는 그 남자와 둘이서 어떤 골목길에 내렸다.
처음 보는 동네에서 모르는 남자를 따라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 사람과는 한 마디도 섞지 않고 그저 두세 걸음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따라갔다. 몇 개의 집들이 있는 골목에서 그 남자는 한 집에 들어가려는 모션을 취하며 도어벨을 눌러주었다. 숙소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 사람은 다시 어두운 밤길을 따라 어딘가로 걸어갔다.
다음 날 마을을 여행하며 그 남자를 보면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결국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인 나에게 마음 써준 사람들이 있어 무사히 첫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앞으로 혼자 여행을 할 때에는 절대 늦은 밤에 이동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김포공항에서 겨우 버스를 탄 외국인들을 보며 그 날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아주머니, 버스 기사 아저씨, 숙소까지 데려다준 남자가 있었듯 그들에게도 나와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있었으니 무사히 한국 여행의 문을 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