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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Jun 02. 2024

달라도 괜찮아

오늘의 짧은 생각 ①

#1.

에픽하이 노래를 좋아한다. 화가 많던 시절 『born hater』라는 노래를 거칠게 따라 부르길 참 좋아했다. 오랜만에 활동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가사들이 예전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그러다 정점, "꼴에 정숙해 '요''죠'로 게이랩질 해"라는 가사가 나오는 순간.  술에 취해 방방 뛰고 있던 모든 활동가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입을 다물고 그 파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나쁜 페미니스트』에서였나. 힙합을 너무 좋아하는데 가사들이 여혐적이라서 괴롭다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싫어하는 척하는 것이 답일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노래방에서 그 순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안의 불편함과 좋아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고. 그렇게 느끼게 해 준 그 자리의 모두가 정말 안전하고 다정한 공동체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노랠 좋아하냐고 비난하지도 않고, 혹은 그런 가사 정도에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하지도 않고, 자기가 가진 선을 딱 지켜내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다들 고마워. 사랑하는 거 알지?


#2.

모 기관으로 강의를 나갔을 때였다. 강사소개와 함께 국민의례로 시작한다는 장학사님의 말씀이 있었다.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다니(요즘은 표현이 조금 순화되었다고는 해도) 폭력적인 방식이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례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내게 함께 강의를 나갔던 동료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진선, 저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 그냥 서있기만 할 예정이거든요. 진선도 편하신 대로 하시면 돼요." 그 순간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평생 해왔던 국민의례에 대한 거부였는데, 이렇게 든든하고 안전함을 느끼면서 한 적은 또 처음이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괜찮게 느껴진다니.


#3.

추울 때 참여하다가 계속 다른 일정 때문에 바빠 오랜만에「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한국 시민사회 16차 긴급행동 -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우리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에 참여했다. 퀴어문화축제 관련하여서 이래저래 다른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조심스레 단체의 의견을 밝힌 차였다.  leve palestina라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어떤 가사에는 슬픔이 울컥하고 올라와서 함께 불렀지만, 어떤 가사에는 조금 동의하기 어려워서 따라 부를 수 없었다. 마침 내가 따라 부르기 어려운 부분은 함께 간 내 옆자리 동료도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 같이 따라 부르고 있는 군중 속에서, 나는 또다시 안전함을 느꼈다.


'달라도 괜찮아'라는 말을 꺼내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과 행동을 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의견과의 공존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를 들어, 남성 청소년 분들과 젠더문제로 교육/상담을 해야 하시는 분들은 늘 백래쉬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나 역시도 이런 류의 인권 문제에서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자신의 의견이 각각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 만났을 때, 어떻게 공존을 하고, 어떻게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달라도 괜찮아'라는 말은 결국 '상대방에게 존중과 환대, 안전함의 경험'을 나눠주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이 느낀 존중과 환대, 안전함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인 셈이다. 


진짜 너무 어렵다. 그렇게 하기 전에 뚜껑이 열려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 하나 정도는 공유할 수 있다면, 내가 느꼈던 '달라도 괜찮아'의 순간들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평화'가 시작되는 시작점이라면, 조금은 노력해 볼 가치가 있는 걸 테니까. 오늘도 이를 악물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아니, 시발, 근데, 진짜'를 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평화활동가, 가끔은 퇴근할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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