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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25. 2023

다시, 음악

잘하기보다 즐겁게 하기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일한 유산은 음악 취향이다. 유독 클래식을 즐겨 들으셨던 아버지는 늘 운전할 때도 클래식 방송을 트셨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백 장에 달했던 씨디 중 한 장을 꺼내 들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음악 취향은 내게 고스란히 옮겨졌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바로 그 곡의 그 연주들을 나도 좋아한다. 동생은 그렇지 않은데 왜 나만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내가 아버지를 더 닮았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몇 해 전인가 음악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모차르트가 좋게 들리다니, 완전히 아버지랑 똑같아졌네.' (클래식 애호가들이 들으면 분노할 소리지만 나는 30대 중반까지 모차르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클라리넷을 부셨다. 원래 음대를 생각하셨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분이셨다. 나와 동생은 대한민국의 아동답게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나는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러고 싶다고 느꼈을 뿐. 음악 애호가인 아버지는 의외로 그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고, 일단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음악학원에서는 유치원생 동생들이 열심히 깽깽거리며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아버지의 말은 불공평함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나와 두세 아이를 불러놓고 '너희 때문에 다른 애들이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라고 꾸짖은 일만 기억난다. 사람의 기억이란 모든 일을 균일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 충격적인(?) 사건만 유독 기억에 남은 건지도 모른다. 그 후로 피아노를 배우던 학원으로 옮겨서 바이올린을 더 배우기 시작했고, 내가 연주할 수 있는 학원 안의 악보는 다 찾아서 연주할 만큼 재미를 붙였다.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두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너무 남탓하는 것 같지만-아버지의 철학 때문이었다. "악기를 아주 잘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 연주한다는 말도 하지 마라." 아버지는 그런 말씀까지 하셨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때 음대를 지망하던 사람답지 않게 내 음악 학습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연주를 들어 보자고 하거나 잘한다고 말씀하실 때도 없었다. 맥 빠지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서 나는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두었다. 그대로 십수 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내게는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나도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했다. 정말 어쩌다 보니 그런 친구들과 밴드에서 노래하고 어설픈 기타 연주도 하게 되었다. 가끔은 건반을 치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내가 피아노를 배울 것을 고집하던 아버지가 아셨다면 '그렇게 내가 뭐랬니?'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네,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아무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십 년이 넘게 묵혀 둔 바이올린을 다시 연주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밴드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어릴 때 배운 음악과는 그 맥락이 전혀 달랐다. 기타와 건반을 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악기의 음에 맞춰 듣기 좋은 음을 찾아 연주하는 능력이 필수였다. 미약하게나마 그런 능력을 키우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인내심이 뛰어난 친구들은 '잘한다' '듣기 좋다'는 말을 많이 해 주었다.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연주를 거의 그만두게 됐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함께 음악을 하던 많은 친구들이 한국을 떠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우울증에 걸리고 증세가 심해지면서 악기를 잡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아니, 아예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낼 마음 자체가 들지 않았다. 주변에 남아 있던 소수의 음악 하는 친구들이 내게 연락을 해도 기운이 없다며 거절해야 했다. 말 그대로 라면 하나 끓일 기운조차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런 상태에서 음악은 사치였다. 음악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소리의 집합체로만 들리기 시작했다. 좋은 곡을 들어도 머리로 감상할 뿐 가슴으로 느끼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그런 와중에도 공연을 보러 다녔다. 연주자들이 눈앞에서 음악을 만드는 걸 보고 그 공명을 체감하면 뭔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아주 어렴풋하게...




지난 3월이었다. 친구들이 야외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볼 기회가 있었다. '참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부럽다'는 생각보다 먼저 들었다. '저 친구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이 경험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다소 충동적으로 전자 바이올린을 할부로 구입했다. '밴드와 함께 연주하려면 역시 전자 바이올린이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중국산 전자 바이올린을 구입해서 쓴 적은 있었지만 브랜드 제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가 모처럼 의욕이 생겼을 때 플렉스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한단 말인가? (일단 그렇게 변명해 본다.)

 

전자 바이올린을 열심히 검사 중인 고양이 1번이.


그다음 날로 악기가 도착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아주 기본적인 연습부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울 때 흔히들 쓰는 교재인 '스즈키 1권'의 맨 처음부터 켜기 시작했다. 도도도도 도 도, 솔솔솔솔 솔 솔, 라라라라 라 라, 솔솔솔솔 솔 솔... (실제 음정과는 다르나 이해하기 쉽도록 다장조로 적는다.) 그렇게 혼자서 1권을 떼고, 2권, 3권, 4권. 그 정도 되자 일단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현실적으로 내 주변의 친구들과 음악을 하려면 미국의 대중음악 중 바이올린이 주로 등장하는 컨트리와 블루그래스 등 미국 전통음악 장르를 어느 정도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는 예전부터 유독 이 장르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았다. 당연히 우리말로 된 교재가 있을 리 없었고, 영어로 된 책을 사서 혼자 배우기 시작했다. 깽깽깽... 깽깽깽깽... 친절하고 상세하게 서술된 내용과 책에 따라오는 부록 음원을 들으면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리 관심 가는 분야는 아니지만 아일랜드 음악도 열댓 곡 익혔다. 일단 배워놔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까.




조금씩 그렇게 노력한 보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연주를 한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이 나를 초대하기도 했고, 내가 친구들에게 먼저 함께 연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냥 친구네 집에서 그냥 함께 연주만 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매주 미국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친구 눈에 띄어서 정기적으로 함께 연주를 하게 되었다. (거 봐. 역시 배워 놔서 나쁠 거 없다니까...) 우리는 공연이 아닌 '세션'의 개념으로 장소를 정해 만나서 음악을 연주한다. 대부분은 서양식 선술집인 '펍(pub)'에서 만나 다른 손님들과 같은 공간에서 편하게 대화하고 음악을 연주한다. (아일랜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션의 개념이 낯익을지도 모르겠다.) 지난여름에는 함께 제주도에 가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제주도까지 가서 해변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음악만 연주하다가 온 것이다.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항우울제를 복용해는데도 불구하고-다시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서 한동안 악기를 잡지 않았다. 다행히 함께 연주하는 다른 친구들은 국외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이 돌아온 후에 함께 연주를 해 보니 아무래도 그동안 연습을 쉰 티가 났다. 음악이란 정직한 법이다. 남들은 괜찮게 들린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는 어설픈 부분과 실수가 뻔히 다 들린다. 다행히 항우울제 처방을 바꾸고 나자 다시 악기를 잡을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잘해야지'라는 부담스러운 생각이 아닌 '재미있게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깽깽 대며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번이는 바이올린 소리를 정말 진심으로 싫어한다... 미안해... ㅠㅠ;;;;


예전에 음악을 전공하는 동생이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즐겁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나 자신은 그걸 잘 따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려면 잘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아직 내 머릿속에 못 박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수를 해도 가볍게 웃어넘기고 즐거움에 집중하려면 더 많은 정신적 수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앞으로 더 이상 장기간에 걸쳐 바이올린에서 손을 뗄 생각은 없다는 것. 기타를 치는 한 친구가 말했다. '난 기타를 포기한 적 있지만 그런 때라도 기타는 날 포기하지 않았어.' 그 말이 정답이다. 바이올린은 날 기다려 줄 것이다. 그렇기에 바이올린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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