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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28. 2023

라면을 끓일 수 있는 기쁨

언제든 면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한밤 중에 떠오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한 그릇! 아마도 배달을 제외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야식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정이라면 아마도 라면 몇 봉지쯤은 늘 상비해 두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을 끓이는 시간까지 10-15분이면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편리함. 게다가 그 선택지는 얼마나 다양한지. 매운 라면, 안 매운 라면, 빨간 라면, 하얀 라면, 비빔 라면, 짜장 라면, 불닭 라면 시리즈...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라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한참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 먹은 라면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먹는 즐거움은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울증을 앓으면서 정말 '라면 한 그릇조차 끓이기 힘든' 시기가 몇 번 있었다. 그냥 그럴 기운도 의욕도 없었다. 얼핏 들으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라면을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냄비에 물을 받아서 끓인다. 라면과 수프를 넣는다. 정해진 시간만큼 끓인 후에 그릇에 옮겨 담아서 맛있게 후루룩 짭짭 먹어 치운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았다. 라면을 먹으려고 사놓아도 늘 유통기한을 몇 개월씩 넘긴 후에 버리기 일쑤였다. 정말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펄쩍 뛸 기운조차 없었지만.) 그런 시기에는 배달 음식으로 연명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서 뭔가를 요리할 기력이 없었다. 그냥 밥 먹을 때가 됐다 싶으면 습관적으로 배달 어플을 뒤적였다.




최근에도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간신히 주어진 일을 마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멍덩해졌다. 이번에는 항우울제를 복용 중이었는데도 그랬다. 책장 위에 쌓여 있는 라면 봉지들은 그 와중에도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은 할 수 있으면서 라면은 왜 못 끓이니?' 나 자신에게 물어도 이렇다 할 만족스러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움직이려 하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고작해야 1-2분 걸리는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는 일조차 노동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가서 하루에 1만 보씩 걷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문득 약 처방을 바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진료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약간 주저하는 듯한 태도로 아침에 먹는 약을 증량해 보자고 말했다. 나는 약을 한 봉지 가득 받아 들고 병원을 나왔고, 그다음 날부터 증량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처음 아침 약을 더했을 때는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는데, 한 알을 추가하고 나자 몸이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아침마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닌 '일어나고 싶어서' 침대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 밥을 챙기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아침 약과 영양제를 먹고. 샤워를 하기도 쉬워졌다.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샤워 등의 기본적인 위생 관리가 버겁게 느껴져서 그런 일에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샤워할 수 있다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할 그 사실이, 내게는 막강한 힘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끓인 라면을 사진으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작은 라면 그림 하나.


문득 라면을 끓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 위의 라면 봉지들을 확인했더니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짜장 라면이 한 묶음 있었다. 라면 두 개를 꺼내 놓고 냄비에 물을 받았다. 계량컵으로 물을 재서 넣었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실수를 해서 물을 너무 적게 넣고 말았다. 큰 컵 대신에 작은 컵으로 계량을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물을 끓인 후 라면을 넣고 휴대폰으로 타이머를 맞췄다. 뭔가 이상했다. 예전에는 면이 넉넉한 물에서 헤엄쳤던 것 같은데... 원래 이렇게 빡빡하게(?) 느껴졌던가? 5분이 지나 물을 버리는데 버릴 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계량을 잘못했구나. 생전 처음 끓이는 라면도 아니고 계량컵까지 썼으면서 이게 무슨 실수람.


다행히 물이 적은데도 면은 제대로 익어 있었다. 짜장 수프를 넣고 열심히 비빈 후 기름을 넣고 또 신나게 비볐다. 완성된 라면을 그릇에 덜어서 소파에 앉았다. 한 입, 그리고 또 한 입. 짭짤하면서 매콤한 맛. 적당히 잘 익은 면발의 쫄깃쫄깃함. 정말 얼마 만에 먹는 짜장 라면인지. 아니, 그보다 내 손으로 끓인 라면을 먹는 게 얼마 만인지. 나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용기가 솟아난 나는 당장 라면 여러 봉지를 주문했다. 내친김에 용기를 더 쥐어짜서 스파게티면과 파스타 소스까지 주문했다.


그다음 날, 라면들과 스파게티면, 파스타 소스가 한가득 든 종이봉투가 집 앞에 도착했다. 일단 다양한 라면을 베란다의 햇볕이 닿지 않는 곳에 수납한 후 잠시 망설이다가 스파게티면이 든 봉투를 뜯었다. 이제 봉투를 뜯었으니 물을 끓이는 수밖에 없었다. 큰 냄비에 물을 담아 보글보글 끓이고 스파게티면을 넣은 후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저었다. 면이 다 익은 후에 물을 대충 따라 버린 후 곧바로 냄비에 올리브 오일과 파스타 소스를 투척했다. 이리 섞고, 저리 섞고... 얼추 섞였다 싶었을 때 그릇에 담아 포크로 면을 감고 입속에 넣었다. 아, 꿀맛이다! 묘하게도 이 원초적인 요리-라고 부르기도 뭐 한 존재-는 그동안 배달 주문한 그 어떤 파스타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신나게 냄비에 든 스파게티를 모조리 먹어 치우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에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구나. 나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증상이 생각보다 많이 심했었구나. 그런 사실을 진작에 깨닫고 표현하지 못해서 몇 달 동안 그렇게 지냈구나. 그래도 이제야 깨닫고 조치를 취했으니 다행이야. 배고플 때 별생각 없이 라면을 꺼내서 끓일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능력(?)일 것이다. 그렇지만 '라면 끓일 힘조차 없던' 나는 그 당연한 능력을 되찾은 후에 마치 낙원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작은 승리였다. 이제 부디 내 삶의 라면 없는 시대는 영원히 끝났기를. 세상의 모든 우울증 환자가 배고플 때 라면 하나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는 기운과 의욕을 지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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