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넘어지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탄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균형을 잡기까지, 바퀴에 내 체중을 맡기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져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뒤에서 누군가 잡아준다고 해도 두려움에 믿지 못하고 페달에서 발을 떼어버리면 바퀴는 더 이상 굴러가지 못하고 자전거는 멈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의미가 다른 각도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가 모르겠다.
경단녀로 살아오다가 2021년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잘하는 부분보다는 못 하는 부분 때문에 괴로웠고, 반복해서 나오는 실수들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오랜 시간 쉬었기에 당연한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실수를 허용하지 못했고, 생각보다 나오지 않는 성과에 스스로를 탓했으며, 타인들의 인정에 휘둘리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들과 칭찬들이 약이 된 적도 있지만 독이 된 적도 많았다.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들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며 살았고, 남들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갭을 메우려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대하기도 했다.
메타인지
학습에 대한 학습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를 판단하는 사고 과정 아직 모르는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적절한 학습전략을 수립하는 선택의 과정
메타인지의 의미를 내가 어떤 부분은 알고 어떤 부분은 모르는 것으로밀 알고 있었는데 '임포스터'를 읽으며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부끄러워하는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 그리고 노력을 통해 잘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 또한 쿨하게 말하는 것 이 모든것을 메타인지라고한다.
나는 의도하지 않게 '잘난 척한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뭐든 해낼 것 같다'라는 평가를 받는데 이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특히 여자들만 있는 집단에서는 은근히 시기 질투를 많이 받아서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자처럼 일부러 겸손한 척을 한 적도 많았고,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나를 억누른 세월이 꽤나 길었다. 물론 모임의 성격에 따라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 다를 것이기에 지인들이 이 글을 보고 '네가 그랬다고?'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타인들이 나의 모든 것들을 아는 것은 아니기에...
부모님 앞에서는 '걱정을 끼치면 안 된다, 나라도 잘하자' 이런 가면을 늘 쓰고 살았고, 단체생활을 할 때는 '어떻게든 일을 해내고 마는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서 온갖 일을 혼자 다하고 무거운 책임감에 번아웃이 온 적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적절히 가면을 써야 할 필요도 있고, 늘 정직하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인데 문제는 타인을 의식하며 나를 억누른 채 가면을 쓴 것이 스스로에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영화를 엊그제 처음 봤다. 책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었다. 만약 다수의 사람들이 오만과 편견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모른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무슨 추임새를 넣어야 할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었을까? 나는 후자에 해당했을 것이다. 겸손을 가장한 임포스터의 모습이 상당 부분 많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은 사람도 없고, 내가 관심이 없으면 안 읽었을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고, 또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하지 못한 채(홍길동이야 뭐야) 겸손과 책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이다.
책을 지속적으로 읽지 않았다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독서를 하는 이유는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해지기 위해서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풍경도 바라보고, 바람과 햇살도 느끼며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다양한 나라, 다양한 길에서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온전히 흡수하고 싶다. 오르막을 오를 때 기어에 대해 모르면 물어서 배우면 되는 것이고, 어떤 옷을 입어야 바람에 저항을 적게 느끼는지 공부하면 그만이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연습한 결과 어떻게 자유롭게 타게 되었는지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유 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나친 겸손은 개나주자)
19기 새로운 팀원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분들도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시도를 해보셨으면 좋겠다. 책을 1도 읽지 않았던 나는 30일을 16텀째 지속하고 있다. 한달어스와 함께한 덕분에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은 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