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할매들을 위한 작은 퍼포먼스 “인권을 지키는 경찰을 원해요”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가 너른 벌판에서 작업한 이후 마음 한켠에 부채감이 남아있었다. SNS에서는 연일 밀양 어르신들의 힘겨움이 전해졌고 쇠사슬을 온 몸에 칭칭 감아 안고 경찰과 용역의 폭력에 저항하는 모습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기자회견을 하거나 작은 퍼포먼스 정도의 연대가 다였다.
80이 넘은 고령의 할매들은 어지러움과 굳어버린 뼈마디를 토닥이며 서울로, 밀양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셨다. 이들은 그저 내살던 곳에서 그냥 살게 해달라는, 우리 자식들이 안전한 자연에서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는 평범한 소원뿐이었다.
2013년 10월 23일 인권단체들과 대한문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인권을 지키는 경찰을 원해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이것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만을 위한 연대의 행동은 아니었다. 밀양에서의 폭력, 용산참사의 진실, 거리 곳곳에서 자행되는 경찰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인권단체들과 문화제를 준비하기 일주일전 파견미술팀은 대한문 농성장에 모였다. 커다란 현수막을 바닥에 펼쳤다.
대한문에는 경찰이 쓸어버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묘지 같은 꽃밭이 만들어졌다. 그 꽃밭을 빙 둘러선 경찰은 마치 꽃을 지키고 선 듯 우스운 풍경이었고 이 우스운 풍경은 몇 날 며칠 이어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도 할라치면 경찰의 방송소리가 웅웅거렸다. “여러분은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해산하십시오.” 기자회견이 언제부터 불법집회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수막을 펼치고 정부를 비판하는 피켓 한 장만 들고 있어도 집회가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은 어느 순간 기자회견장을 둘러싸고 연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어느 순간 막무가내 연행으로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 바로 대한문 이었다.
꽃밭과 그 꽃을 지키는 경찰들, 그 앞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작은 분향소와 서명을 받는 책상, 그리고 그 옆에 밀양할매들의 상황을 알리는 작은 서명대는 꽃을 중심으로 아이러니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보였다. 경찰이 굳건하게 24시간 지키고 있는 꽃들과 내팽겨진 서러운 사람들이다.
하얀 현수막 위에 파견미술팀 작가들이 하나둘 눕는다. 우리모두는 “사람은 꽃이다” 그리고 이윤엽은 연필을 들고 누워 있는 작가들의 외각선을 딴다. 그리고 모두 일어선다. 하얀현수막 위에 커다란 꽃모양이 그려졌다. 다시 이윤엽은 연필을 내려놓고 붓을 잡았다. 큰 붓을 들고 거침없이 선을 그려 내려갔다. 그냥 꽃잎이 펼쳐진 단순한 모양이다. 그리고 물감을 섞어 다양한 색을 만들고 PET병을 잘라 물감을 담았다. 주변에 있던 미술작가들이 먼저 꽃잎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꽃을 그리기도 하고 살고 싶은 집을 그리기도 했다. 어느새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구경을 하기도하고 같이 그려도 되냐며 이내 붓을 잡기도 했다. 꽃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빽빽하게 그림이 그려진 후 이윤엽은 큰 붓에 먹을 묻히고 하얀 꽃 위에 글을 썼다.
“인권을 지키는 경찰을 원해요”
파견미술 작가들은 완성된 그림 위 꽃잎으로 걸어가 그 위에 서있다. 작가들의 손에는 작은 꽃다발이 들려있다. 꽃은 우리가 지킨다. 경찰은 인권을 지키라는 의미다. 그리고 꽃을 든 작가들은 한 명씩 꽃그림 현수막 위에 누웠다. 하늘이 파랗게 반짝거린다.
10월 23일 인권을 지키는 경찰을 원해요 문화제 행사 날. 우린 다시 꽃 현수막을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밀양할매들과 용산참사 유가족이 함께 누웠다. 투쟁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찰이 둘러싼 대한문 인권문화제 현장에는 “불법, 불법, 불법...”을 시종일관 방송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웅웅 거렸다. 경찰과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이 뭔지는 아는 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