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티키타카 #8
스포츠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스포츠는 태생적으로 비정치적인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스포츠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놔둬도 쉽사리 훼손되지 않았다면, 굳이 우리는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애써 말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스포츠는 쉽게 정치적일 수 있다.
해방 후 거의 80년간 한국의 체육은 정치적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후 남북이 갈리고 국제사회가 이념으로 갈등하는 동안 더욱 그랬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제정한 국민체육진흥법이 그러했고, 운동만 잘하면 진학이 보장되는 체육 특기자 제도와 메달을 따면 보상으로 주어진 병역특례가 그러했다. 한때는 직업까지 보장했었고 국민 영웅까지 만들어줬다. 체육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은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경쟁하기 위한 도구로 필요했다. 국가는 최근까지 대한체육회를 손아귀에 쥐고 활용했다. 우리 사회는 엘리트 선수와 국제대회 메달을 위해 마취된 상태에서 교육제도와 사회적 체계를 희생해야 했다.
세상이 바뀌고 메달과 운동선수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효용성이 변했다. 동시에 지난 60여 년간 운용된 국가 주도의 체육 진흥 제도의 비정상성이 하나씩 드러났고 감당하기 괴로운 폐단만이 남았다. 문제는 심각한 폐단의 드러남에도 우리 사회는 어떠한 변화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 안타깝고 슬픈 것은, 국가 주도의 체육정책과 체육계의 폐쇄성을 정상적인 형태의 사회적 구조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때 그랬을지언정 이미 지난 과거의 시대상에 불과하다.
한국체육의 현 상황은 정치계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진보는 전통적으로 체육을 논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박정희를 필두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정권은 예외 없이 체육에 적극적이었다. 국민체육진흥법에 기반한 국가의 체육 정책 기조가 국가주의였으니 이는 매우 당연했다. 체육계와 체육인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수정권을 응원하는 이유다. 그사이 진보는 체육의 정책적 지형을 찾거나 만들지 못했고 자연스레 체육은 그들이 손댈 수 있는 영역에서 점차 멀어졌다. 체육 정책의 틀은 정치적으로 보수의 차지임이 확실했다.
사회가 변했다. 사람들은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 스포츠로 진즉에 관심을 돌렸다. 사람들은 국가의 지원 없이 자신의 선택과 부담으로 스포츠를 즐긴다. 스포츠의 다양성은 놀라우리만치 확장하고 있으며 기획하기도 어려울 생태계가 형성되고 진화한다. 기술의 발달과 문화의 변화로 스포츠의 가치와 개념도 변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포츠 영역이 나타나 자라고 있다.
체육정책과 체육계는 오늘도 여전히 국가주의에 남아 있다. 그들은 보편적인 생활 스포츠를 담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지 못하며, 그렇게 할 의향도 없고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엘리트 체육과 그들의 복리를 우선 주장한다. 와중에 남은 것은 체육계보다 훨씬 더 크고 확장성 있는 보편적 스포츠다. 국가와 정책은 지금 아무도 이 영역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영역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정책을 마련하고 주장해야 한다. 스포츠에 새로운 지형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새로운 정치와 정책과 지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진보가 나설 수 있는 시간이다.
2024.3.5.
스포츠 티키타카
우리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번번이 굳이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사이 우리 사회는 그 대가를 치르고 말죠. 스포츠 말입니다. 스포츠는 지금 건강 할까요? 우리는 충분히 스포츠를 잘 살피고 있을까요? 한번 얘기 나눠보죠. 생각이 확 깰 수 있을 겁니다.
이대택 | 문화연대 대안체육회
기본적으로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몸과 스포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여기에 대해선 특별히 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