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통합의 수사만 있고, 문화적 상상은 없었다 – 사회분야 토론회 리뷰
[21대 대선, 실종된 문화공약을 묻는다]는, 세 차례의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를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작성한 연속 리뷰입니다. 각 후보의 발언 속에 드러난 문화 인식과 공약을 짚으며, 문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경제·사회·정치와 연결해 제시합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두 번째 TV토론의 주제는 ‘사회갈등 극복과 통합’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이번 토론도 비방과 정쟁의 반복으로 귀결됐다. 후보들은 구체적인 공약도, 실질적인 통합 방안도 없이, 상대에 대한 공격과 논점 일탈성 논쟁만을 이어갔다. 사회갈등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겠다던 토론회는, 오히려 갈등의 언어만을 증폭시키며 그 자체로 하나의 갈등 공간이 되고 말았다. 또한 통합과 공존을 이야기하면서도 문화에 대한 언급은 역시나 없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은 단순히 정치적 분열이나 경제적 불평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의 양극화, 교육의 위기, 세대 간 인식 차이, 젠더 문제, 지역과 계층의 구조적 단절, 혐오와 차별의 확대와 일상화 등 다양한 요인이 중첩되어 있다. 이 모든 갈등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다시 말해 다양성을 사회의 기본 조건으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사회는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그 공존은 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기반 위에 형선된다. 타자에 대한 불안,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 구조화될 때, 사회는 스스로의 통합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타자성 또는 타문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감각하느냐에 따른 문화적 문제다.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와 낙인은 단지 개인의 편견을 넘어,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갈등을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합을 말하려면, 가장 먼저 문화적 기반을 점검해야 한다.
문화 간 차이와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협력의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 ‘내부’를 향하는 문화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다양한 문화를 동등한 주체로서의 권리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변화시키기 위한 만남과 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문화에 기반한 통합의 출발점이다. 통합이란, 특정한 사안에 문제의식을 공유한 개인과 집단이 함께 연대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때 문화는 단지 이벤트가 아니다. 상호성을 전제로 한 실천의 장이자 시민의 삶과 감정을 연결하고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담론은 문화를 여전히 장식적 수단이나 산업 자원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사회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언어로서의 문화, 시민적 공감대를 회복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문화가 배제된 상황에서, 문화가 이익 창출을 위한 성장률의 지표로만 이야기되는 한 갈등을 넘어선 통합과 공존은 구호일 뿐이다.
문화정책은 예술진흥이나 산업진흥을 넘어, 시민의 삶을 연결하는 공공정책의 일부로 자리잡아야 한다. 모든 시민이 사회적 위치나 정체성에 상관없이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통합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통합이 어떤 가치 위에 서야 하는지에 대한 상상력은 부재했다. 갈등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 구조를 바꿔낼 실질적인 언어는 제시되지 않았다. 문화는 비용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분열된 사회를 다시 연결하고, 이해와 공존의 언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정치의 언어에 포함될 때, 비로소 통합은 말이 아닌 현실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적 기술이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고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감각이다. 그렇기에 통합을 말하면서 문화를 배제하는 정치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사회갈등을 진정으로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공동체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문화의 힘을 정치와 정책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문화는 갈등을 조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공존을 학습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다. 문화정책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자, 통합의 실질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제 문화 없는 통합 담론은 설 자리가 없다.
문화연대는 사회갈등의 원인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사회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화정책 과제를 제안한다.(문화연대가 대선 후보자들에게 제안하는 10대 과제 중 4개 과제)
이 과제들은 사회 내 차별과 배제를 줄이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날 수 있는 문화적 조건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통합은 정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연결할 수 있는 문화의 기반이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사회통합은 가능해진다. 위에 제안한 문화정책 과제 세부 내용은 아래 제안서 전문에서 확인 바란다.
** 제21대 대통령 선거 문화연대 문화정책 제안서 전문
블랙리스트와 미투를 겪고 내란범들까지 만난 후에야 문화와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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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6.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