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연 보는 휘 Mar 09. 2021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대안적 공적 공간으로서 인스타그램 피드

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유행은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공적 공간마저 앗아갔다. 코로나 19의 확진자 수가 늘자 정부는 사람들에게 허용되었던 공적 공간을 점차 제한해갔다. 그동안 공적 공간을 적극적으로 점유해왔던 시위와 집회 역시 공공보건 앞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방역이라는 의제 하에 제도적 구조는 공적 공간의 통제, 개인 정보 및 이동 경로 수집, 신체의 자유 구속 등에 대한 보다 확실한 합의에 더 손쉽게 도달하게 되었다. 즉, 코로나 19라는 신 유행이 제도의 공적 공간의 통제 및 제한을 새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공리주의적 접근에서 해당 조치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필수 불가결 하였겠지만,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특수한 상황이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사적 공간에 내몰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예가 교육환경이다. 사회적 제도 장치로서 청소년의 교육과 공동체의 최소 보육 장치로 기능하던 학교는 코로나 발발 이후 안전한 장소이기 어려워졌다. 공공보건 대책 상 학생들은 가정의 품에서 원격 시스템으로 학교와 소통해야 했고, 사적 공간인 가정이 공적 공간 학교의 결핍을 부담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공적 공간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상상력을 넓혀 다양한 조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정도가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 뉴욕은 그야말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재택근무가 뉴 노멀이 된 사회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엄한 말로도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뉴욕 시장 빌 드 블라시오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비롯한 대형 행사를 공식적으로 취소했고, 공동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대안적 화상 이벤트가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도 2020년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9월 18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비대면 방식으로 개최하였다. 퍼레이드 수준의 집회는 제도적 제한을 받을 뿐 아니라, 이미 방역과 관련하여 견고히 형성된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게 된다는 점에서 주최진 및 참가자에게 안전한 환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대안적 노력 중 단연 눈에 띈 행사는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이하 닷페이스 퀴퍼)다. 닷페이스 퀴퍼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프라이드 퍼레이드처럼 화상 시스템을 전력으로 이용하는 대신 기존 “퍼레이드”의 구조를 지키며 온라인 공간으로 행사를 이식하였다. 이는 형성된 규칙을 깨지 않고 전유하여 전복적 메시지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보가드(L.M. Bogad)의 전략적 퍼포먼스 (tactical performance)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다만, 공적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닷페이스 퀴퍼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대안적 공적 공간으로서 가상공간의 가능성이다. 마르셀라 후엔테스(Marcela A. Fuentes)의 표현을 빌려, 닷페이스의  뉴미디어적 가상공간을 “자기표현, 생동, 그리고 정동의 전달과 조율의 장소” (각주1) 로 읽어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온라인 공간 역시 대안적 공적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용자들은 온라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을까? 


영상1.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결산 영상


우선, 닷페이스 퀴퍼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약간의 부연설명을 곁들이겠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관한 논의를 확산하는 미디어 플랫폼, 닷페이스는 2020년 온라인 퀴퍼 웹사이트를 열었다. 사이트 이용자는 누구든 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조합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디자인할 수 있고, 아바타는 보라색 도로 위에서 행진하는 모습으로 생성된다.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에 “#우리는_없던_길도_만들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업로드하여, 인스타그램 해시 피드의 특성상 사진들이 격자 모양으로 모여 보다 더 넓은 도로에 아바타들이 행진하는 모습으로 피드를 꾸렸다. 즉 가상의 도로가 온라인 공간에 펼쳐진 것이다. 닷페이스의 퀴퍼는 물리적으로 서울시청 앞 도로에 집결할 접근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가상 도로를 일궈내어 퀴퍼의 목적(국내 LGBTQ 가시화)을 일부 이뤄내었다.


물론 가상공간이라는 점에서 집회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지 모르나, 이에 관해서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영향력에 대해선 이미 여러 학자가 논의하였기에 (예: Mark Tremayne, Sara Liao, Sarah J. Jackson, and Brooke Foucault Welles 등), 이 글에서는 후엔테스의 퍼포먼스 별자리 (Performance Constellation) 이론을 위주로 닷페이스의 퀴퍼와 대안적 공적 공간(가상 도로)의 정치적 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동명 저서(<Performance Constellation>)에서 후엔테스는 실제의 신체 및 공간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디지털 운동을 오프라인 운동과 구별하는 기존의 담론에 반하여 디지털 운동이 “변화의 신념을 길러낼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도록 움직인다”(각주2) 라고 주장한다. 후엔테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주와 별자리 비유를 제시한다. 마치 거대한 우주에 흩어져있는 별들을 잇는 별자리처럼, 광대한 온라인에서 파편화된 개개인의 힘을 잇는다면 오프라인의 “실질적”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이다. 마치 별자리가 모양과 이름으로 인식되듯, 퍼포먼스 별자리는 신자유주의적 사유화 전략에 맞서는 개개인의 연결선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닷페이스의 산발적이되 유기적인 업로드 행위 역시 집단적인 행동이자 디지털 운동의 일환, 즉 퍼포먼스 별자리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학의 관점에서 더 상세히 보자면, (각주3) 후엔테스의 관점에서 해시태그는 단순한 색인이거나 코멘트가 아니라 (동의, 거부, 참여 무엇이든) 차후 행동을 요구하는 “정동적이고 호명적인 양식”(각주4)이다. 더 나아가 후엔테스는 해시태그가 퍼포먼스의 유한성(내재한 반복성에 기인한 시스템)과 디지털 미디어의 “지속적 유한성”(기억 보존의 시스템, 알고리즘적 색인과 필터링 등의 삭제와 복구 작업)의 결합이라 설명한다. 이는 닷페이스 퀴퍼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특징이다. 해시태그를 달고 열흘 동안 반복적으로 업로드되는 사진들은 누적되어 가상 도로를 재현하고, 퍼레이드 기간 이후에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자들이 해시태그를 전유하여 길은 끊기게 된다. 그러나 해시태그를 “정주행”하면 퍼레이드의 데이터는 아카이브로 남아 존재한다. 비록 개인의 힘과 참여를 네트워킹하는 도로(혹은 별자리)가 해산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속적 유한성”의 퍼포먼스로서 해시태그 아카이브는 살아남는 것이다. 


다만 후엔테스의 이론은 디지털 공간의 공간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깊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온라인 운동이 확실한 시간과 공간의 틀이 없어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 후엔테스는 실질적 장소와 디지털 장소를 횡단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각주5)에 집중하여 논지를 풀어낸다. 요는 온라인 운동이 “현실”의 변화를 모색하는 변화의 퍼포먼스로서 기능한다는 이야기로, 다시 온라인 운동을 현실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후엔테스는 온라인 운동에 “공간적 시간적 공백”이 있다고 시인하며, 따라서 가상공간에서만 이뤄지는 운동에 대해서는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다.(각주6)


다만 크리스천 벡(Christian Beck)의 온라인 공간에 대한 들뢰즈적 이해는 후엔테스의 퍼포먼스 별자리 이론과 온라인 공적 공간 사이에 다리를 놓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벡은 인터넷 네트워크를 리좀(각주7)의 탈중심적 공간으로 읽는다. 후엔테스 이론의 사적 공간으로 밀려나 파편화된 존재들 역시 들뢰즈적 관점에서는 풀뿌리의 리좀적 가능성을 품는다. 그들은 가상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콘텐츠를 인용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단순히 컴퓨터 간의 교류가 아닌 행동과 디지털 네트워크 간의 관계들을 생성한다. 벡의 이론이 후엔테스의 이론을 확장할 수 있는 지점은 벡이 “경쟁적 공간(contested space)”의 개념을 도입한다는 점이다. 벡은 유목민적(nomadic) 이용자들이 네트워킹하고 온라인 공간을 재영토화를 하여 시스템에 불복종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재영토화되는 온라인 공간은 단순히 “부재”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다만 온라인 운동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후엔테스의 퍼포먼스 별자리 드라마투르기의 유용성에 기반하여, “온라인 공적 공간”에 대한 논의를 확장해볼 순 없을까? 과연 온라인 공간은 사용자들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일까? 물질적 신체가 공적 공간을 점유할 수 없는 범유행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온라인 공적 공간을 활용 및 점유할 수 있을까? 


큰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가능성을 온라인 공간에 가상 도로를 실제로 깔아낸 닷페이스 퀴퍼에서 찾아보려 한다. 닷페이스 퀴퍼도 여느 해시태그 운동처럼 해시태그 하이재킹(각주8)과 대항의 진영 싸움으로 번졌다. 다만, 닷페이스 퀴퍼에서 눈여겨볼 점은 해시태그 하이재킹이 수량의 싸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간 점거의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공간 점거는 진영의 정치적 의제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인 수단이며, 기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도 혐오 진영의 주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마치 오프라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혐오 진영이 으레 도로를 쌍방 점거하는 것처럼, 이번 닷페이스 온라인 퀴퍼에서도 혐오 진영은 혐오의 이미지를 닷페이스 퀴퍼의 해시태그를 달아 다량 업로드하여 가상 도로를 점거하고자 하였다. 이는 아무나 언제든 이미지를 업로드하여 도로의 일부를 이룰 수 있는 닷페이스 퀴퍼의 가상 도로의 공공성을 전유하는 전략이었다. 닷페이스는 인스타그램에 공식적으로 혐오 사진들을 삭제해달라 요청했으나, 퍼포먼스로서 온라인 퀴어의 실시간적 특성 탓에 조치는 발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다. 따라서, 닷페이스의 주도로 참가자들은 반-서사(counter narrative)적 방안으로 혐오 진영에 맞섰다. 더 많은 퀴퍼 이미지를 해시태그를 달아 업로드하고 혐오 이미지들을 밀어내며 공간의 재점유 및 재영토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 전략은 “우리의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슬로건으로 가상 도로 위에 가시화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 사례는 “물리적”으로 “실제적” 공간을 점유하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자유로이 접근 가능한 해시태그로 재현되는 온라인 공적 공간을 점유하는 경쟁의 서사로 읽어, 온라인 공적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해보는 해석의 갈래를 제안하고 싶다. 닷페이스 퀴퍼에서 퍼포먼스로서 (as performance) 기능하는 해시태그 업로드는 혐오 진영에 맞서는 온라인 퀴퍼의 반-서사적 행위를 가시화한다. 이는 인터넷 공간에 널리 퍼진 개개인의 행동을 잇는 온라인 네트워크(혹은 퍼포먼스 별자리) 일뿐만 아니라, 해시태그 격자 피드로 재현되는 온라인 공적 공간의 점유 싸움이기도 하다. 물론, 후엔테스의 주장처럼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온라인의 영향력이었다. 다만, “없던 길도 만들어낸” 닷페이스의 온라인 퀴퍼는 온라인 공적 공간을 “점유”하는 퍼포먼스 별자리, 혹은 흩어져있는 참여자들을 결집해 정치적 가능성을 생산해내는 온라인의 “긍정적 공간(affirmative space)”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혐오 세력에 대항하고 온라인의 공적 공간을 지켜내는 집단의 힘이자 LGBTQ와 앨라이 커뮤니티의 안전 공간(safe zone)을 제공하기 위한 닷페이스의 노력의 산물로, 범유행 시대의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적 공공공간의 사례로 남으리라 믿는다.




연극과 퍼포먼스를 연구하는 사람.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수면 위로 다시금 떠오르는 잊혀진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각주 (이탤릭체는 브런치 시스템상 밑줄로 표기)

각주1. Marcela A. Fuentes, Performance Constellations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9), 6.

각주2. Ibid, 2.

각주3. 단순한 업로드 행위가 왜 퍼포먼스인지에 대해서는 리처드 쉐크너(Richard Schechner)의 performance/as performance 구분을 참조. 후엔테스는 디지털 운동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어떠한 반응인 “행위”기 때문에 “as performance”로 읽는다.

각주4. Ibid, 90.

각주5. 들뢰즈와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참조

각주6. 참조: 트레이시 헤이즈Tracey J. Hayes 의 #MyNYPD 해시태그 하이재킹과 시위자를 모으는 긍정적 공간affirmative space으로서의 트위터에 대한 연구, 아메드 알라위Ahmed Al-Rawi의 반이슬람 정서에 대항하는 안전공간safe space으로서의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 대한 연구.

각주7. 들뢰즈와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참조

각주8. 다른 진영에서 해시태그를 전유하여 빼앗는 행위. (예: 뉴욕 경찰의 과잉진압을 고발하는 #MyNYPD 하이재킹, 미국 극우 진영의 유명 해시태그#ProudBoys를 게이 진영에서 전유한 사건 등)

매거진의 이전글 공연리뷰지 <피어> 소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