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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연 보는 휘 Mar 16. 2021

비-대면 시대에 공연 보기

비개별적 상황에서의 개별적 독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안들

고전적인 의미의 아우라 개념은 코로나 19와 함께 다시금 위기를 맞은 듯하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이후 지금-여기에의 현존이라는 유일하고 복제 불가능한 아우라는 상당 부분 그 위용을 잃었으나, 공연은 어느 정도 고전적인 아우라를 보존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보려면 공연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존재해야 하고, 공연 전 암전을 통하여 공연 이전의 세계와 단절되어야 한다. 더불어, 공연에서는 흔히 ‘디테일’이라고 불리는 매 회차 달라지는 배우의 연기 방식,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애드리브, ‘참사’라고 지칭되는 예상치 못한 사고(소품이 망가지거나 조명이나 음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배우가 특정 장면의 대사를 잊어버리는 경우 등)가 늘 발생하기 때문에, 매 회차의 공연은 매번 새로운 공연이며,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같은 공연을 같은 관객이 열 번 보면 볼 때마다 ‘바뀐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공연의 묘미라고 느끼며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관객들도 많다. 이는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행위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를 반복해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을 지각할 수 있다면, 공연은 반복해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연의 현장성, 라이브니스liveness, 경험성 등은 팬데믹 시대를 맞아 불가피하게 훼손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효되면서 많은 공연이 취소되었다. 2021년 1월에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극장이 몰려 있는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이 단 네 개뿐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리두기 단계 조정에 따라 두 칸 띄어 앉기, 좌석 재배치 등을 시행하면서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는 관객의 수는 이전의 1/3 이하로 급감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가 텅 비었고, 졸지에 월드투어 중이었던 <오페라의 유령> 공연팀은 한국에서만 6개월간 공연을 지속하기도 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공연계는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 송출이다. British National Theatre에서 NT Live를 유튜브를 통해 기간 한정으로 무료 공개한 데서 시작되어, 현재는 유튜브를 비롯해 네이버 VLive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연 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작사의 아카이빙용 녹화본을 송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관중 공연 생중계, DVD 판매, 유료 온라인 공연 관람권 판매 등 다양한 형태로 공연 영상을 송출 및 유포하고 있다. 이는 좁게 보아서는 공연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현실에서 준비한 공연을 어떻게든 대중 앞에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또는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고 싶은 마음에서 준비한 일이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새로운 공연 형식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 송출은 공연계가 팬데믹을 견디기 위한 단기간의 대책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직접 공연과 함께 지속될 공연의 새로운 형식인가? 뉴 노멀 시대의 핵심은 코로나 19가 초래한 팬데믹이 종식되어도 다시는 이전과 같은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 영상 송출은 팬데믹 종식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현재 온라인 공연 송출은 직접 공연의 대체재로 여겨지고 있지만, 직접 공연과 공연 영상 송출이 함께 이루어지게 되면 공연 영상 송출은 직접 공연에서 분화된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예술 형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래의 일은 차치하고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의 공연 영상 송출을 읽는 방식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직접 공연과 공연 영상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논의는 2020년 내내 여러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배우와 극단 관계자, 제작사 관계자, 연출가, 작가 등이 여러 목소리를 냈다. 공연 영상 송출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공통된 견해는 공연 영상의 제작과 관람은 공연 제작 및 관람과 전혀 다른 형태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논의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공동 현존 개념에 관한 것이다. 공연이 다른 형태의 예술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공연장에 배우와 관객이 함께 있어야만 성립하는 예술 형식이라는 것이다. 공연장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서로가 동공간에 실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 대면하는 경험은 연극인과 관객이 모두 원하는,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공연 경험일 것이다. 연극인의 입장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에 대한 의견은 부정적인 쪽과 긍정적인 쪽으로 갈리지만, 양측 모두 동의하는 지점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는 연극의 현장성과 서로 대면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거나 제작자가 전달받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연극계는 그로 인한 배우의 외로움에 관해 토로하기도 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맞는 연극의 특성에 관하여 논하기도 하며, 동공간성을 확장하거나 파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을 논의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관객의 입장에서 온라인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어떻게 독해할 것인지 말하고 싶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현재 제공되는 온라인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기존 공연 관객에게 어떤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는지, 온라인 공연 송출을 통해서 여전히 공동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한지, 공동 현존을 일부라도 체험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들이 선행되거나 후행될 수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팬데믹 종식 이후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이 어떤 방식으로 재정의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며, 현재 진행 중인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최대한 연극의 형태로 관람하고 그 관람의 경험을 제작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관객의 역할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사실 녹화된 형태의 공연 유포는 역사가 짧지 않다. 다양한 오페라 공연은 녹화된 비디오의 형태로 도서관에 비치된 지 오래되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고전 뮤지컬은 여러 번의 실황 중계를 거쳐 녹화 영상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소비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뮤지컬 공연이 영상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가 언제든지 중지하거나 끌 수 있고, 관객이 원하는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관람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작자의 입장에서와 같이, 관객의 입장에서도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과 실제 공연을 같은 것으로 보기는 불가능하다.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에서는 공연의 경험성이 훼손되며, 공연 측과 관객 측이 모두 공연의 개별성을 일부 훼손한다. 디지털 연극 스트리밍은 관객이 연극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히면서 극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좁힌다. 즉, 관객은 연극을 쉽게 볼watch 수 있게 되었지만, 관객이 온라인 스트리밍 연극을 볼 때에 실제로 공연이 상연되는 장소에 도달하기란 훨씬 어려워졌다. 여기서 극장은 물리적인 극장보다도, 공연이 상연되는 곳으로서의 극장의 개념을 말한다. 만약 VR 등을 통해 실제로 공연장에 앉아 공연을 보는 것과 같은 환경이 조성된다면, 디지털 스트리밍을 통해서도 관객이 극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겠다.


개별성이란, 각 회차의 공연 관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말한다. 첫째로는 각 회차 공연 자체가 개별성을 가지고, 둘째로는 개별 관객이 개별 공연을 관람하였을 때 그 관객이 갖게 되는 개별적인 느낌과 감상을 개별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대본, 무대, 배우, 연출이 동일한 상황에서도 각 회차의 공연은 개별적인데, 조명, 무대, 오케스트라 연주의 고저나 강세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공연의 개별성을 좌우하는 요소는 앞서 말했듯 배우들의 연기이다. 같은 장면에서 어제는 웃었던 배우가 오늘은 눈물을 흘린다면, 어제의 공연과 오늘의 공연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한편, 배우들의 연기가 완전히 동일하여 공연 자체의 개별성이 최소화된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동일한 관객이 어제 관람한 공연에 대해 느끼는 감상과 오늘 관람한 공연에 대해 느끼는 감상은 개별적이다. 공연은 경험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각되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관객이 지각하는 것은 매번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또한 여기서 공연의 경험성이란, 지각과 대비되는 관객/배우/제작자의 (매 회차 고유한) 경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개념화한 것이다. 공연은 매번 경험하는 것이다.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며, 매번 새로운 인물들과 대면해야 한다. 또한, 공연 내에서의 시간은 현실 시간과 다르지만, 관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동일하다. 공연 내부에서 한순간에 몇 십 년이 흐르더라도, 공연을 보는 관객이 사용하는 시간은 공연의 러닝타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연은 러닝타임 동안 어떠한 경험을 하는 일이며, 이러한 공연의 경험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극장에서는 암전이나 오버츄어Overture 연주 등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공연장 안을 공연장 밖과 분리한다. 이는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여, 공연에 최대한 몰입하고 다른 경험이 공연 바깥에서 공연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이다. 이러한 장치가 사라지고, 관객이 다양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공연은 러닝타임 내에 이루어지는 단 하나의 경험이 아니라, 관객이 지각하고 경험하는 여러 상황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린다.


디지털 스트리밍 연극은 공연의 개별성과 관객 개인의 경험성을 최소화한다. 디지털 스트리밍 연극은 관객에게 공평해졌다. 그러나 공평하다는 것은 관객과 감상의 포인트를 좁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은 관객들에게 비개별적 상황을 동일하게 제공함으로써 관객의 공연 독해를 제약한다.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에서는 우선 자리 선택이 불가능하다. 물론 티켓팅을 통한 자리 선택이란 대부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루어지며, 운용할 수 있는 자금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극장과 티켓 가격을 불문하고 개별 관객이 선호하는 자리가 있고, 관객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선호를 실현할 수 있다. 최대한 무대와 가까운 좌석을 선택하는 관객이 있고, 무대와 조금 멀어지더라도 시야 방해가 없는 중앙 좌석을 원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무대 전체를 보기 위해 객석 2층이나, 무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무대에서 먼 자리를 선호하는 관객도 있다. 특정한 캐릭터의 동선을 더 잘 볼 수 있는 쪽을 기준으로 자리를 선택하기도 하고, 특정 장면에서 특정 캐릭터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쪽을 고르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의 관객은 스스로 보기로 선택한 것 대신 카메라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은 영화와 비슷해진다. 카메라는 특정 장면에서 특정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특정 조명 효과를 보게 하며, 특정한 무대 장치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연출가와 작가, 배우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는 할 것이다. 


2020년 여름에 연극 <조치원 해문이>를 무관중 생중계 공연으로 온라인 송출한 이철희 연출은 “카메라는 총 5대가 사용되었”고 “중요한 장면의 포인트는 (카메라) 감독님과 미리 얘기를 하여 중계될 수 있도록 사전에 협의를 하였”다고 말한다(공연과 이론 2020년 여름호). 즉, 온라인 송출되는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카메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지해진다. 즉, 관객은 시야의 에이전시를 잃고,  연극에 대한 단수 관객의 개별적 독해 가능성은 제약된다. 주연 배우에게 핀포인트 조명이 떨어질 때 조연 배우가 카메라 바깥에서 하는 행동이나 그가 짓는 표정이 객석에 앉은 한 관객이 그 공연을 해석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에서는 동일한 장면에서 주연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조연 배우는 카메라 바깥으로 밀려나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진다.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은 이런 방식으로 개별 관객이 어떤 배우나 소품, 조명, 무대 장치 등을 보고서 상상하거나 해석할 수 있는 많은 여지를 없애 버린다. 


한편,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보는 관객은 극장에 직접 가지 않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의 특성으로 인하여 공연의 경험성을 훼손당한다. 자연히 공연 경험에 몰입하기 어려워지며, 이런 상황에서는 공연에 대한 해석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혹은 휴대폰 화면을 통해 어디서든 송출되는 공연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공연에 대한 관객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공연의 일부 장면만 취사선택하여 보거나, 보다가 중간에 관람을 중단할 수도 있다. 객석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무대 위의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코로나 시대 이전에 타국의 지하철에서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을 보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고,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탄 뒤에도 다시 내릴 역을 지나쳐 한 시간 정도를 헤맨 적이 있다. 그러나 지하철 역을 놓칠 정도로 스트리밍 영상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중도는 실제 공연에 갔을 때보다 훨씬 낮았다. 몇몇 장면은 거의 보지 못했고, 이어폰 안에서 들리는 소리와 이어폰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동시에 지각되었다. 그 날 콘서트 현장에 직접 방문한 관객들의 후기를 보았을 때는, 분명 그 공연을 생중계한 영상을 보았음에도 내가 보지 못한 지점들이 얼마나 많은지 통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은 카메라라는 중계 장치로 인하여, 또한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위치하는 공간이 다면화됨으로써 공연의 개별성과 경험성을 크게 제약하게 된다. 그렇다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인해 훼손된 공연의 개별적 독해를 다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연의 대면성을 이루는 가장 큰 두 가지 원칙인 동시간성과 동공간성을 온라인에서 확보해야 할 것이다. 카메라로 인하여 유실되는 많은 독해의 가능성들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관객을 동시간에 동공간에 모이게 하여 실제로 동일한 공연 개념을 공유하게 한다면 어느 정도 대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송출을 하는 많은 공연 관계자들은 일회성 송출을 원칙으로 하며, 특정한 시간대에 공연을 송출한다. 관객들은 미리 해당 공연의 온라인 송출 시간과 송출 플랫폼을 확인하고 특정 시간에 특정 플랫폼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이는 공연의 동시간성과 동공간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효과를 갖는다. 즉, 공연을 보는 환경은 각자 다를지라도 공연을 보는 관객은 같은 시간에 같은 플랫폼에 모이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온라인으로 동시간성과 동공간성을 확보하는 것으로는 관객이 극장에 모이는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쉽게 나가고 들어올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관객의 집중도가 흐트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가장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실시간 채팅 및 댓글 기능이다. 온라인 공연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대부분 실시간 채팅 혹은 댓글 기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기능으로 관객들은 공연 도중 관객들끼리 소통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소통이 관객이 느끼는 동시간성과 동공간성을 강화시키며, 서로 감상을 나눔으로써 같은 공연을 대면하고 있는 관객으로서의 동질감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온라인 공연을 켜므로, 관객 각자가 위치하는 오프라인 공간은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채팅창을 통해 같은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온라인으로는 동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생중계 공연의 경우, 실시간 채팅 및 댓글 기능을 이용함으로써 공연의 라이브니스liveness를 어느 정도 체험하는 효과도 있다. 이는 관객뿐 아니라 공연의 제작자나 배우에게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무대에 오르지 않는 제작자는 실시간으로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함으로써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편 콘서트 등의 경우, 무대에 오르는 당사자가 직접 채팅창을 보고 관객과 실시간 소통함으로써 관객과 아티스트 양측의 라이브니스를 증폭시킬 수 있다. 많은 언택트 콘서트 아티스트들이 공연 중간중간 채팅창의 댓글을 읽으며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관객의 요구를 공연에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온라인 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의 실시간 채팅 및 댓글 기능은 오프라인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했던 관객들 간의 실시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관객들이 서로의 시야를 공유하고 서로가 느끼는 공통적이거나 개별적인 감정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게 한다. 채팅창은 관객 개인이 자신의 감상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며, 다른 이의 감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독해를 풍요롭게 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공연의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오는 다양한 메시지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짧은 감상형: 주로 “너무 좋다”, “조명이 예쁘다”, “이 부분의 배우 표정이나 목소리가 좋다”, “이 부분이 아쉽다” 등으로, 구체적이지 않은 짧은 감상을 실시간으로 나누는 경우

② 동조형: 주로 짧은 감상형의 채팅에 동조하는 경우

③ 스포일러형: 이미 대면 공연을 본 관객이 다음 장면이나 노래의 일부 등을 미리 노출하는 경우

④ 알고 있는 것의 재확인 및 감상 공유형: 이미 대면 공연을 본 관객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 주는 유형으로,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조연 배우의 동선 및 표정 등이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등 온라인 공연에 노출되지 않은 정보를 알려 주거나, 자신의 이전 감상을 말하거나, 자신의 이전 감상과 비교하여 온라인 공연에 대한 감상을 표출하는 경우

⑤ 감정표출형: 주로 짧은 감상을 동반하여 “좋다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웃기닼ㅋㅋㅋ” 등 자음이나 모음을 다수 사용하여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

등이다.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의 특성상 이미 공연을 본 사람들이 온라인 공연을 다시 관람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알고 있는 것의 재확인 및 감상 공유형 채팅으로 이전에 대면 공연을 보았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온라인 공연만을 감상하는 관객의 개별 감상에 도움을 준다. 한편, 감정표출형이나 동조형 채팅의 경우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나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다”는 메시지를 부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관객이 온라인 공연장의 다른 관객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과 현장감을 갖게 한다. 이는 공연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웃음이 터지거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등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마치 노트 필기와 같은 기능을 하여,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이 끝난 후 개별 관객이 공연 관람 경험을 되새기며 개별적 공연 감상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스트리밍이 종료되면 공연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일부 스트리밍 플랫폼의 경우 공연 종료 후에도 해당 공연의 채팅창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공연을 복기하기에 좋다. 이러한 채팅 기능을 통해 관객들은 ‘시체관극’에서 벗어나 연극을 보면서 동시에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받아줄’ 상대까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분명 공연의 풍부한 독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온라인 채팅 및 댓글은 치명적인 역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타자를 치거나 채팅을 보는 것은 공연 관람 시간에 부가적으로 하는 “다른 경험”이므로,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려 경험성을 훼손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연을 보는 관객들을 동시간/동공간에 모아줄 마땅한 대체제가 없는 현재로서는 채팅 및 댓글 기능을 공연을 보는 사람들을 온라인상의 동공간에 모음(혹은 모였다는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영상이 아닌 공연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영상물과 공연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기능으로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언택트-공연이 하나의 형식으로서 유지된다면, 채팅 및 댓글 기능은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을 공연과 영상물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디지털 스트리밍 공연의 특유한 위치를 점유하게 하는 기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공연의 더욱 원활한 독해를 위해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 시행 후에 관객이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 필요도 있다. 댓글 기능을 통해 실시간 채팅이 끝난 후에도 이야기를 이어 가는 관객들이 있으나 이는 소수이며, 대부분은 스트리밍 공연이 종료되면 플랫폼을 떠난다. 이를 보완하여 공연 후에 감상을 나누는 온라인 공론장을 만든다면 이는 극장 로비나 아고라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며, 여기에 연출이나 배우 등 공연 관계자가 참여한다면 작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관객뿐 아니라, 무관중 공연이나 스트리밍 공연에서 현장성을 확보하여 자신이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하는 배우나, 공연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를 원하는 공연 제작자에게도 좋은 대안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이는 공적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개인 SNS나 익명 게시판에서 나누는 것보다 좀 더 정제된 언어로 공연의 감상을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적이다. 이 역시 실시간 채팅 기능과 비슷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필자는 역시 이 공간이 공적 대안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장점 쪽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이 공간은 공연 후에 조성될 공간이므로, 실시간 채팅 기능과 달리 원하지 않는 관객은 공연 후 즉각 퇴장을 통해 자신만의 해석이나 느낌을 보존할 수 있다.


관객의 개별적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언택트 공연의 경우, 관객의 공연 감상이 단순한 피상적 서사 혹은 연기 감상에 그치지 않고 개별적인 독해에까지 이르는 데에는 다른 관객과의 연결감이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비개별적 화면에서도 제한된 개별적 독해가 가능하며, 이 제한된 개별적 독해를 서로 나누는 형식을 통해 제한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은 단순히 오프라인 공연 맛보기, 혹은 ‘2% 부족한 공연 경험’에서 벗어나 제한적이나마 언택트-대면성을 확보하고 오프라인 공연의 대체제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여산호

창작자이자 비평가, 연구자로서 서사와 인간의 내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들에 왜?라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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