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연 보는 휘 Feb 14. 2022

미국 뉴욕에서의 연극학 박사과정 첫 2년에 대한 단상

미국에서 응급실에 다녀왔다. 다행히 크게 아팠던 건 아니고 (병원비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리지만) 돌이켜보니 세컨 익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느라 받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던 듯하다. 오늘은 공부를 쉬기로 하고 집에 와서 누워있다가, 문득 멈춰있던 브런치 글을 돌아보았다. 첫 1학기에 대한 단상을 쓴 지 2년이 지나있더라. 다시 읽어보니 그동안 정말 많은 게 변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다시 한번 단편적인 생각이나마 일기처럼, 흔적을 남겨보기로 했다.


그동안 해낸 일


1. 코스웍을 다 들었다!

1학기에는 연극연구1, 연극입문, 독일연극과 이론
2학기에는 연극이론, 낭만주의 연극사, 아프리칸 아메리칸 연극사, 1970년대 뉴욕 연극사
3학기에는 비평이론, 미국 뮤지컬사, 현대 퍼포먼스와 공공 공간, 일본 현대연극사
4학기에는 미국 퀴어 연극에서의 도심/교외의 구분, 연극연구2, 연극무대사
5학기에는 연극, 퍼포먼스와 시간

   한국에서 영문과 석사 코스웍을 들었던 것에서 연극 부분만 15학점을 간추려 합해서 총 60학점. 코스웍을 드디어 끝냈다. 그리고 시원섭섭하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는 해방됐지만 매주 세 번씩 서로 생각을 주고받던 시간이 줄어들었단 건 아쉽다. 대신 3학년 2학기인 이번 학기부터는 청강을 하기 시작했다. 또, 영문과 출신이라 연극과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단 생각에 우리 과 위주로 수업을 들었다는 게 아쉽다. (후회는 없지만) 다른 친구들을 보니 미술사, 영문학, 타대학원 수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제 간 교류를 하며 자신의 연구 방향을 잡아간 게 즐거워 보인다. 예로, 얼리 모던 연극사 속 오브제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연구를 하는 친구는 저번 학기에 복식사를 들었다고. 이제 옷 쇼핑할 때 쓰여있는 걸 모조리 이해하게 되었다는 여담이 재밌다. 


2. 퍼스트 익잼을 끝냈다!

   우리 학교는 일반적 퀄 시험과 다르게 퍼스트 익잼과 세컨드 익잼으로 나눠서 후보생을 평가한다. 개인적 인상으로 첫 번째 시험은 "네가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학회에서 일반적 주제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를 묻는 시험이고, 두 번째 시험은 "네가 네가 연구하려는 분야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인지하고, 그에 기반하여 너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가?"의 영역인 것 같다. 그래서 첫 번째 수업은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연극을 커버해오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내준다. (...라고 해도 교수님들이 시험을 내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연극과 퍼포먼스의 선을 크게 넘진 않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문제적이라 평하는 과제긴 하다.) "World Theatre" History의 실라버스를 혼자의 힘을 짤 수 있느냐의 문제. 두 번째 시험은 세 개의 필드를 짜서 80권의 책을 읽고, 학자 간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파악한 뒤 나의 생각을 확립하는 시험. 지금은 이 두 번째 시험을 준비 중이다. 코스웍을 끝내고 언어 시험 2개와 세컨드 익잼을 끝내면 드디어(!) candidate이 된다.


3. 대학에서 다양한 과목의 연극 수업을 가르쳤다!

   코비드 시대에 처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대학 강의는 정말 정말 적응할 게 많았다. 비록 학원 강의 경력이 얼마나마 있어 티칭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지만, 미국에서 하는 강의는 처음에, 대학에서 하는 강의도 처음인 데다 온라인 강의기까지 하다니. 처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꺼져가는 집중력을 붙드는 게 어려웠다. 소규모 오프라인 강의일 경우엔 학생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몇몇 교수법적 테크닉이 있는데, 25명 정도의 온라인 강의는 학생들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카메라를 끄고 있어 얼굴이 안 보이는 데다, 학생들이 딴짓을 하기에도 최적화된 포맷, 게다가 나는 초짜 중에서도 초짜 강사였다. 카메라를 켜달라 부탁하기에는 윤리적으로 걸리는 점도 많았고,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트리거 워닝과 관련되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성적 관련해서 행복하지 않은 이메일이 오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 수업이라는 점이 가장 장벽이었다. 비언어적, 집단적 과제를 하기 어렵다는 점은 정말 뼈아팠다. 그렇다고 이 코비드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창의적으로 평가하는 과제를 고안한다는 건, 초짜 저임금 학생 겸업 노동자에게는 넘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넘어야하는 걸까 의문이 가는 산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걸 가르치는 경험은 행복하고 뿌듯한 경험이다. 첫 두 학기는 연극 개론을 가르쳤다. 연극에 친숙하지 않은 비전공생들과 1학년 전공생들을 가르치는 개론 수업인데, 미국 현대 연극을 베이스로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함께 탐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연출, 드라마투르기, 배우, 디자이너, 프로덕션 매니저, 캐스팅 매니저의 역할을 파악하고 연극 장르에 대해 배우며 10편의 연극을 같이 읽는다. 강사 성향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나는 프랙티스 기반의 연구자가 아니라 연극 리뷰를 쓰는 법 위주로 가르쳤다. 그다음에는 연극사1. 전공생 필수 과목 중 하나로 고대부터 1640년까지의 연극을 가르친다. 비전공생/저학년 전공생 위주로 가르치다가 전공생들을 처음 가르쳐서 정말 힘들었던 수업. 내용이 힘들었다기보다는 노련한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내 경험이 적어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연극개론(Honors반)를 드디어 대면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면 수업은 정말 좋다. 드디어 대본을 제대로 함께 읽어보며 장면을 꾸려나갈 수 있어 기대가 앞서서, 앞으로의 한 학기가 기대된다. "다음 연출 수업에는 마시날 에피소드 1 첫 두 페이지를 여러분이랑 함께 만들어볼 거예요"라는 말에 조명을 맡은 학생이 "저 그럼 다음에 고보 디자인을 만들어 와 볼까요?"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경험은 즐겁다.


4. 연구 분야를 다듬었다!

   첫 단상 포스트에서 연구 분야 다듬기의 고충을 토로한 적 있다. 그때도 분야가 넓어 좁힌다고 좁혔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턱 없이 넓다 (ㅎㅎ). 지금은 총 세 개의 필드를 연구 중이다. 1) 현대 한국과 일본 연극/퍼포먼스의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 2) 기억 아카이브로서의 연극, 3) 미국 뮤지컬의 트랜스내셔널 영향과 한국 창작 뮤지컬의 vernacularism. 앞의 두 필드는 리서치 필드, 뒤의 하나는 티칭 필드.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드디어 다음 학기에는 뮤지컬 사를 가르치게 될 것 같다!) 이제 여기서 더 좁혀서 (나한테) 재밌는 주제를 연구 중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속으로 품고 있지만, 2022년 Association of Asian Studies 학회에서 챕터로 발전시키고 싶은 페이퍼를 발표할 예정이다 :) 신나! 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재밌어서 하고 돌아다닌 것들이 신기하게 서로 엮여 들어갔다. 영문과와 일본문화를 복수 전공하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쪽으로 밀어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오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전에 학회에 참여할 때는 내가 뭐하는 사람일지 설명할 언어가 정돈이 안되어 있어 쭈볏쭈볏했는데, 이제야 내가 누군지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저번과 같은 마무리. 심적으로는 그때보다 더 여유 있다. 내가 무얼 하는지 이해하니 이제 하기만 하면 되는 느낌이다. 다만, 교수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이제 운전대는 오롯이 내 거다. 이제 고기는 네가 잡아 보라고 내던져진 셈인데, 내가 던져진 곳은 망망대해고 내 운전은 아직 미숙하며 고기는 안 보이거나 버겁게 크다. 같이 훈련받던 다른 친구들도 다 떠돌이 망망대해에서 각개전투를 하는 중이라 조금은 서로 외로워한다. 가끔씩 서로 등불을 깜빡이며 우리 다 같은 고민을 한다고 마음을 털어놓는 그런 나날. "조난당한 기분이야"라는 말에 그 말을 찾고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날. 



매거진의 이전글 방구석 극장 1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