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여행 마지막, 꼬마상인들을 만나다.
사파를 떠나오며,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허했고,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생기나 호기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깜빡임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어쩌면 이미 죽어있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체념과 무념으로 가득했던 텅 빈 눈빛. 네 살배기 어린아이의 눈빛이, 그랬다.
사파에 처음 도착했던 날 우릴 가장 먼저 반겼던 건 잡상인이었다. 조금 많이 어린 잡상인.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꼬질꼬질한 베트남 길거리의 꼬마상인들. 이 꼬마상인들은 사파 여행 내내 곳곳에서 출몰했는데, 매번 다른 아이들이었지만 행색과 생김새 그리고 작은 손에 꼭 쥔 채 사달라며 들이미는 자질구레한 액세서리들까지도 전부 비슷했다. 사파에 막 도착했으니, 기념품 산다 생각하고 하나 사줄까 싶어 아이들에게 호응하려던 내 손을 애인이 잡아끌었다. "그래도 이런 거 사 주면 안 돼."
여행 둘째 날이었던가, 사파 시내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에 갔을 때였다.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아주 작은 발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 아이가 역시나 꼬질꼬질한 행색으로 양손에 움켜쥐고 있던 다양한 액세서리들을 내민다. 유난히 귀엽고 작아 보이는 그 꼬마아이를 차마 냉정하게 무시할 수가 없어서, 아이 손에 들려있던 것들 중 파란색 열쇠고리를 골랐다. 손에 들고 슬쩍 살펴보니 엉성한 바느질에 조금씩 튀어나온 실밥들, 삼각형 모양의 작은 쿠션에 달린 콩알만 한 방울들이 나름 방울이랍시고 짤랑거렸다. 어차피 다른 물건들도 상태는 비슷했고 갖고 싶어서 사려는 것도 아니었으니, 물건의 하자를 확인했지만 기꺼이 눈을 흐렸다.
손가락 세 개를 펴고는 "뜨이, 뜨이"라는 아이. 3천 동으로 이해한 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내 손을 가로막았다. 어른은 아닌 듯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꼬마아이의 큰 언니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3천 동이 아니라 3만 동이라며 손바닥을 나를 향해 보인다.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꼬마아이의 시선을 느끼며, 얼결에 3만 동을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언가 잘못했음을.
게다가 나의 거래가 진짜 성사되자, 그 주변 모든 꼬마아이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 뒤쪽으로는 아이들의 큰 언니 또는 부모로 추정되는 어른들의 시선 또한 나에게 꽂혀있었다. 그 순간의 꼬마아이들은 마치 모이에 몰리는 비둘기 떼 같았고, 어른들의 시선은 영화 <겟아웃(2017)> 속 2층으로 올라가는 흑인 주인공을 바라보던 백인들의 눈빛 같았다. 나와 애인은 당황하며,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곳을 벗어나고, 한국에 돌아온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한다. 체계적인 조직이었을지 모른다. 뭐, 조직까진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룰로 앵벌이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던 걸 수도 있겠지. 아이들이 하나같이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던 것도, 더 많은 수입을 위한 일종의 전략에서 시작되었던 걸 테고. 그 꼬질꼬질한 행색조차 연출된 모습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혔을 그들은, 더 어리고 작은 아이일수록,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이일수록 효용성이 높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베트남 어느 산골 도시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이용되고' 있었고, 이미 그 아이들에겐 그런 행위가 일상의 전부가 되어,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죄의식보다는 오늘의 관광객 물량을 파악하고 있을 그 세상의 어른들과, 멋대로 가져버린 안쓰러운 마음을 핑계로 돈을 건네어, 결국 그들의 머릿속에 박힌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더 견고하게 해준 바로 나 같은 관광객들 때문이겠지.
택시를 타고 사파 시내를 나오던 중, 창문 밖으로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많아봐야 세네 살쯤밖에 안 되었을듯한, 아이보다는 아기에 가까운. 그 작은 아이의 눈빛엔 공허함이 가득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는 눈빛을, 삶이 무엇인지도 모를 아이의 눈에서 봐버렸다. 아이는 길바닥에 앉아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며 휘청거렸다. 살면서 본 적 없었던, 네 살배기 아이의 죽어 있던 눈.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눈이 반짝반짝 해지고, 경찰차라도 지나가면 방방 뛰며 꺄르륵 댈 한참 호기심 가득할 때에, 그렇게도 지독하게 텅 비어 있는 눈빛이라니.
그 작은 아이가 왜 그런 눈을 한 채로 길바닥에 나앉게 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사파를 떠나오며 찰나의 장면으로 봤을 뿐이니. 정말 집도 부모도 없는 떠돌이 고아일 수도, 아니면 꼬마 상인들처럼 물건을 팔다가 잠시 쉬는 중이었을 수도, 이 외에 내가 생각지도 못할 상황에 처해있었던 걸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었건, 마지막까지 그곳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사파를 힐링과 휴양의 도시라 한다. 나 또한 4박 5일간의 여행 중 사파의 초록빛 자연과 새로운 문화를 마음껏 접하며 충분히 힐링했다. 해가 질 무렵 호수 주변을 산책하던 순간, 숙소의 테라스에서 산멍을 때리던 순간, 골목 구석구석 현지인의 일상을 엿보던 순간.
다만,
그런 힐링의 순간들 틈틈이 스스로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봐버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