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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4. 2020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누나! 핫케이크 해줘”

대전 집에 갈 때마다 띠동갑 동생 태은이가 하는 말은 변함이 없다.


  작년 가을, 휴학하고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뒹굴던 시기가 있었다. 백수 딸내미를 어떻게 써먹을까 생각하시던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의 간식을 매일 챙겨주는 일을 맡기셨다. 그 후 나의 임무는 집에 동생이 먹을 과자와 동생 최애 음료인 포카리스웨트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생은 집구석 한가운데에서 언제 샀는지도 모를 핫케이크 키트를 발견했고, 포장지의 사진이 하도 맛있어 보였는지 계속 핫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졸랐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던 터라 심심풀이로 그 때 한 번 해줬던 것이 계속 입속에 맴돌았는지 한동안 둘이 있을 때마다 핫케이크 타령을 했다(핫케이크~핫케이크~소리를 다 모았으면 정말 타령 하나는 나왔을 듯싶다).


  휴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에 올라온 뒤로도 한 달에 한 번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나를 보면 핫케이크 얘기를 은근슬쩍 꺼낸다. 이번 추석에도 집에 내려가니 역시나 핫케이크를 해달라 한다. 핫케이크 가루가 집에 항상 있는 것도 참 신기하다. 띠동갑 남매가 붙어있는 모습이 좋아서 엄마가 사두시는 것인지, 동생이 마트에 갈 때마다 핫케이크 가루를 집어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각잡고 만들어보자는 다짐으로 우리는 유튜브로 핫케이크 만들기 영상까지 찾아봤다. 어떻게 만드는지 다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예쁜 핫케이크를 보니까 빨리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동생도 자극이 됐는지 그동안은 반죽부터 플레이팅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는데 이번에는 자기도 요리를 할 수 있다고 반죽을 만들겠다 자신 있게 얘기했다. 방과 후 수업으로 요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더니 자신감이 생겼나 싶었다. 불 쓰는 건 누나가 해야 한다고 수업 때 배운 안전수칙도 얘기하며 반죽만 만들겠다 고도 했다.


“그럼 만들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본다? 반죽 만드는데 뭐가 필요하지?”

“반죽 가루, 어… 우유 한 컵, 어… 계란 두 개. 맞지?”

“아니지, 아니지. 우유 3분의 1컵 더 넣어야지”

“아 맞다맞다”

“그래 그냥 너가 해봐”


  태은이는 신나게 냉장고로 널찍널찍 뛰어가며 “우유가 있나~” 노래를 불렀다. 그 틈에 나는 잽싸게 샤워 를 하고 나왔더니 진짜 핫케이크 반죽이 완성되어 있었고, 동생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반죽과 함께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약간은 귀엽고 안쓰럽기도 해서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얼른 뒤집개를 집었다.


  한 달이란 시간은 익혔던 것을 금방 날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핫케이크 굽기는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포장지에 들어 있는 가루로 반죽을 한 그릇 만들면 대략 5~6개 정도의 핫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적어도 하나는 예쁘게 만들고 싶으니까 연습할 수 있는 반죽은 4~5개인 셈이다.


  기름을 얇게 두르고 첫 번째 반죽 한 국자를 붓는다. 동생은 부어진 반죽을 설레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공기 거품이 여기저기 올라올 때쯤 뒤집어준다. 그러면 얼마나 태워 먹었는가 확인함과 동시에 실망한 동생에게 “원래 처음은 연습이야”라고 말한다. 다시 기름을 얇게 두르고 불을 줄이고 두 번째 국자를 붓는다. 동생은 다시 초롱초롱해진다. 첫 번째보다는 빠르게 뒤집어준다. 부분부분 안 익은 것 같지만 나쁘지는 않다. 반대 면이 익으면서 기포가 생겨 반죽이 살짝 부풀어 오른다. 생각보다 금방 구워지기 때문에 빠르게 뒤집개에 올려 동생이 들고 있는 접시에 안착시킨다. 3개쯤 구워서 쌓아 놓았을 때쯤 동생은 포장지의 핫케이크와 최대한 비슷해 보이도록 버터와 초콜릿을 네모나게 잘라 올려놓았다. 사실 나에겐 별것도 아닌 음식일 수 있지만, 자신의 선에서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굽는 데 최선을 다해버린다. 나에겐 작은 일이더라도 동생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태움 1, 설익음 1, 나쁘지 않게 익음 3의 그라데이션 핫케이크 탑을 완성했다. 동생도 자신의 데코가 마음에 들었는지 “와 맛있겠다” 뿌듯해했다. 그리고는 소파로 가서 도라에몽을 보며 한 입 한 입 “음~, 음~” 소리를 내며 맛있음을 표현한다. 태어날 때부터 나와 닮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나보다는 해맑게 잘 자라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그냥 핫케이크가 좋은 건지, 내가 해준 핫케이크가 좋은 건지, 포장지의 핫케이크처럼 먹음직스럽게 굽기 위해서는 얼마나 집에 더 내려와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소소한 순간이 계속 찾아왔으면 좋겠다. 12년의 세월 차 때문에(덕분에) 앞으로 우리 둘 사이에는 수많은 배움과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언젠가는 내가 더 의지해야 할 순간도 많아질 것이다. 당장이라도 다음 달에는 불 쓰는 법을 배웠다면서 이제 핫케이크쯤은 자기가 만들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동생의 삶에서 핫케이크를 만들어 주길 바라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길, 핫케이크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나이길 바란다. 혼자였다면 절대 만들어 먹지 않았을 핫케이크가 준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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