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비 May 16. 2020

이야기를 믿으시나요?

  첫인상 토크는 지인들과 술을 마실 때 즐겨 하는 대화 중 하나다. 서로에게 느낀 첫인상과 지금 느끼는 인상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술자리에 서는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서로의 좋지 않았던 첫인상도 ‘당연하지’게임처럼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쿨하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하나가 있다. ‘쉽게 판단해버리는 사람’이 나였다는 부끄러운 사실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느꼈던 첫인상과 친해진 후에 느끼는 인상의 차이가 큰 편이다. 솔직한 말로는 내가 사람에 대한 인상을 쉽게 단정해버리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한 예로 무쌍에 삐딱하게 선 무서운 동기 광복이는 절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이제 저녁 8시에 마시기 시작하면 새벽 4시까지는 주구(酒口)장창 함께 마실 수 있는 술친구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 인생의 숙제는 편견이라는 틀을 깨는 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내 세상에서 내 잣대로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럴 때 곁에서 처방을 내려준 이는 ‘이야기’였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 든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 이 사람이 이런 면도 있었네?’ 하며 그동안 쓰고 있던 색안경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광복이의 무서웠던 첫인상도 나중에야 숙취 때문에 눈이 풀리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원인을 알게 되었다. 보지 못하는 이면과 보이기만 하는 단면을 이야기가 연결해준다.



  그렇게 이야기교의 신실한 신도가 된 나는 이야기를 통해 편견이라는 악의 무리를 물리쳐왔다(맹신이 아니길 바란다). 신이 어디에나 있다고 믿듯이 이야기도 어디에나 있다.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다. 편견이 스멀스멀 눈을 가리려고 할 때면 이야기교를 찾는다. 물론 평생 이야기를 나누어도 상대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서로가 그저 옆에 있는 존재가 아닌 곁에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멈출 수 없고 멈추고 싶지 않다.



  일상의 관계를 떠나서 사회적 공동체에도 이야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학을 배우며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는 ‘사회가 통계를 분석할 때 인류학은 오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말이다. 사회는 일반성에 집중하는 경향 탓에 통계의 주요한 요인에만 관심을 둔다. 그것이 쉽고 확실하다. 하지만 인류학에서는 오차로 치부되는 예외들에 관심을 둔다. 이들이 왜 통계에서 벗어났는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지 직접 찾아가서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회적 해결은 관심에서 시작되고, 관심은 질문이 되고, 질문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는 공감을 일으키고, 공감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이야기가 깨는 편견과 이야기가 보여주는 세상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편견을 깬다는 말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처럼 얘기하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간단하다. 보지 못한 타인의 과거와 미래와 심연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된다. 요즘은 어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겪어보지 못한 과거를 겪어온 사람들, 앞으로 겪게 될 미래를 겪어온 사람들, 같은 순간을 살고 있어도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어떤 편견이 깨지고 어떤 세상을 볼 수 있게 될까. 다만 꼰대는 사절. (사실은 내가 꼰대인 경우가 많을지도...)



   그리고 이제는 나아가 편견 깨기 단계에서 공감하기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마음이 담긴 이야기에서 몇 숟가락의 마음을 덜어서 가져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공감하는 연습은 편견을 깨는 연습보다 어렵다. 너와 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이상 공감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공감은 연습이 끝나지않았으면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를 반복해서 익숙하게 만들고 들이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 연습이라 생각한다면,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매 순간 새로운 감정인 것처럼, 매 순간 처음 나누는 이야기처럼 느끼고 싶다. 나의 감정이 지우개처럼 다 닳아 똥만 남지 않는 한!



+) 이야기교의 대표적인 전도사로는 독립출판물, 잡지 인터뷰, 라디오가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며 보고 듣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전한다. 고해성사하기에도 아주 좋은 분들이다.



++) 나의 장례식이 열리거든 조문객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챙겨왔으면 좋겠다. 이야기로 왁자지껄 시끌벅적 떠들썩한 장례식이 되길!



+++) 예측과 판단과 편견의 차이는 뭘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