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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8. 2020

내 머릿속의 생각박스


  청소는 어지럽힌 것을 깨끗이 하는 행위다. 내가 자주 어지럽히고 또 자주 청소해주는 곳은 머릿속이다. 학창 시절 때부터 멀티태스킹이 습관화되어 있고 평소에 이것저것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많은 탓에 머릿속을 자주 청소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택배 중독에 걸린 방처럼 머리에 생각 박스들이 가득 차버려 발을 디딜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청소를 제때 안 해줬더니 생각들이 충돌해버려서 몸이 갑자기 멈춰버린 적도 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생각이 조금씩 찰 때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생각을 꺼내기 위해 분류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머릿속을 청소하는 나의 세 가지 루틴을 써보려고 한다.



  첫 번째 루틴은 샤워하기. 주로 여러 생각 박스 중에 하나의 박스를 제대로 정리하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물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만 샤워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샤워를 할 때 가장 집중이 잘 되고 생산적인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물건들이 흩어져있는 일상적인 공간과 분리된 밀폐 공간이기도 하고, 따뜻한 물 덕분에 몸이 풀어지기도 하고,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는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할 때면 생각 박스를 하나 가지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최근에는 주로 에세이 드라이브 글감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샤워를 하면서 생각들을 마구 뻗어낸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샤워하러 들어가는 순간 하나의 주제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언젠가는 샤워실에 젖지 않는 종이와 연필을 둘까 생각 중이다. 지금은 샤워하면서 기록해둘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다 싶으면 바로 샤워실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으며 휴대폰의 받아쓰기 기능을 켠다. 내가 말을 하면 메모장에 발음대로 기록이 되는 기능인데 정확하게 기록되지는 않더라도 혼자 말하면서 기억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수건을 말아둔 채 노트북을 켜고 생각을 적어두면 생각 박스 하나 정리 완성이다!



  두 번째 루틴은 무드 트래킹하기. 무드 트래킹은 출판사 ‘기록의 형태’에서 발행한 책 <기록의 공유에 대한 기록> 북토크에서 배운 방법이다. 주로 생각이 너무 많거나 생각이 너무 없어서 정리가 안 될 때 펼치는 방법이다.


1) 두 줄에 8칸을 만들고 각 칸에 지금 당장 떠오르는 단어들을 쓴다.

2) 가로줄에 있는 두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단어를 줄 옆에 쓴다.

3) 예시처럼 계속 두 단어씩 떠오르는 단어를 하나로 추려질 때까지 쓴다.

4) 완성된 표를 보며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지, 어떤 류의 단어를 적었는지 자유롭게 해석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해가 되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현재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쓰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거꾸로 추적해 나가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예시는 8칸이지만 16칸으로 늘려서 하면 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나 반대되는 단어들도 나타나면서 해석이 디테일해진다. 이 방법은 정말 자주 유용하게 쓰고 있는 방식이라 친구들에게도 항상 추천하는 생각 정리법이다. 나는 나중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보기 위해 하나의 노트에 정리해 둔다.



  세 번째 루틴은 책 읽기. 책 읽기는 정리해야 할 생각 박스 자체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할 때 쓰는 방법이다. 이럴 때 읽을 책은 완전히 몰입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면 안 된다. 적당히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우면서도 잘 읽히는 책이면 좋다. 나는 주로 짧은 에세이들을 읽는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다 보면 책의 문장들이 영감이 되어 생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행위 자체가 내 머리도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이다. 타인의 글을 통해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분출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쓰고 싶은 문장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두고 어느 정도 생각이 차올랐다 싶을 때 책 읽기를 멈춘다. 그리고 나의 글을 쓴다.



  생각을 정리하는 루틴이라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각자만의 생각 정리법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지어보았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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