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비 May 14. 2020

허세와 생계 사이

  허세스러운 자아도취를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의식하고,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내고, 척하는 거. 흔하지만 웃긴 예로는 이어폰 끼고 손잡이에서 양손 떼고 무표정으로 자전거 타는 그런 거. 포인트는 본인이 멋있다고 착각하는 그런 거.


  한동안은 손 놓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안 보였다가, 갑자기 ‘외발형 전동휠’이 생겨나면서 거부감이 다시 튀어나오고 있다. 전동휠은 세그웨이같이 오로지 다리도 균형을 맞춰서 움직이는 1인용 탈 것이다. 그중 외발형 전동휠은 종아리 사이에 원판 같은 커다란 바퀴를 세워서 끼고, 바퀴 양면에 붙어있는 받침대에 발을 올려두고 타면 된다. 자전거는 손잡이가 있어서 언제든 다시 손잡이를 잡고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건 애초에 손잡이도 없어 손이 자동으로 어색해 보인다.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그냥 두거나. 어렸을 때 사람 전신을 그리면 손을 어떻게 그려야 될지 몰라서 무조건 뒷짐 진 모양으로 그렸던 것처럼 어떻게 해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부자연스러움이 왜 나는 부끄럽고 가끔은 허세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미래의 사람들은 다 이렇게 다닐 거란 상상만 해도 부끄럽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나는 이 부끄러운 물건을 타고 다니는 40-50대 아저씨들을 자주 목격한다. 이 최첨단 모빌리티를 타고 다니는 20대는 오히려 잘 마주친 적이 없다. 그리고 또 특이한 점은 아저씨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듯이 전동휠을 즐기시는 게 아니라 항상 신호등을 3초 남기고 달리듯이 쌩쌩 사람들 사이를 달린다. 시선도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로운 시선이 아니라 목표가 있다는 듯이 한 곳만을 향해있다. 가끔은 충돌할까 무서워서 피할 만큼 위협적인 속도다. 어떻게 그렇게 균형을 잘 잡고 아슬아슬하게 안 넘어지고 타시는지도 신기하고, 뭐가 그렇게 급하신지도 생각하게 되고, 자전거를 양손 놓고 타던 허세가 진화한 건가 상상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얘기를 풀어놓으면 동감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어느 날에도 고향 친구와 산책하며 이 얘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놨다. 그런데 친구는 얘기를 다 듣고는 그동안 받아본 적 없는 응답을 했다.

 

“그분들 대리 일 하시는 거야”

 

  그 순간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산책을 하던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친구의 말을 더 들어보니, 아저씨들이 그 바퀴를 타고 대리 일을 하러 가서 차 트렁크에 뒀다가 한 건이 끝나면 또 그 바퀴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다. 가볍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서 그런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 부끄럽기만 했다. 항상 겉만 보고 판단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표정이고, 괜히 서두르고, 부자연스럽고 허세스러운 아저씨들이라고 생각한 모습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버린 생활의 모습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세가 아니라 꾸며낼 틈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생계였다.


  이 뒤로는 겉만 보고 판단을 하지 말자는 다짐의 항목을 더 늘려 매 순간 떠올리려고 노력 중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항목, 아직도 내가 모르는 사정은 너무도 많다는 항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