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비 May 14. 2020

요즘 버스는 마스크를 싣고 다닌다

  2020년 3월. 낙성대역에서 관악02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사님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라며 한탄을 하며 운전을 하고 계셨다. 얼마 안가 한 정류장에서 문이 열렸고, 한 젊은 여성분이 쾌활하지만 약간은 민망한 목소리로 버스 기사님께,



“마스크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깜빡하고 집에서 마스크를 안 가지고 와서요”



  버스에서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약국도 아니고 버스에서, 게다가 버스를 타는 것도 아닌데 마스크를 달라고 하는 이 장면이 신기했다. 약간은 뻔뻔하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국가적으로 마스크 5부제까지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버스 기사님은 흔쾌히 “아이고 그럼 드려야지”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천장 쪽에 숨겨져 있던 장을 열어 여러 종류의 마스크가 들어있는 박스를 꺼내셨다. 마스크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어떤 거로 드릴까? 검은색? 흰색?”

“흰색이요 ㅎㅎ”

“그럼그럼 마스크는 흰색이지.”



  상대의 마스크 취향까지 고려하시다니! 기사님은 결국 작은 박스에 들어있는 마스크 중에서 가장 튼튼하고 하얀 마스크를 건네셨다.



“이거 튼튼한 건데! 다음에 갚을게요. 감사해요”

“그래요. 다음에 두 개로 갚아요!”

“네! 꼭 두 개로 갚을게요.”



  실제로 갚게 될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 다 그냥 한 말일 가능성이 크고, 마스크 두 개 따위 잊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나에게는 오래 기억될 장면이었다. 기사님 덕분에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빼앗아간 일상의 풍경도 있지만, 코로나가 회복한 일상의 관계도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잃어버린 일상에 대해 그리움과 소중함을 느끼지만, 찾아낸 일상에 대해서도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이러한 일상의 감사함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