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에 맞서는 사람 이동현 '미실란'대표에게 삶의 철학을 배우다
지난 16일 저녁 7시, 군산 한길문고에서 김탁환 작가와 농부 과학자 이동현과의 북토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서니 김탁환 작가님의 신간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가 나란히 나란히 누워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북토크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책을 빨리 사서 대충 훑어보았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책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은 책이었다. 이 둘의 만남의 과정들이 너무 궁금했다. 김탁환 작가도 만나고 싶었지만 책 속의 모델인 농부 과학자 '이동현'이라는 사람이 너무 궁금했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김탁환 작가&농부 과학자 이동현 <북콘서트> 한길문고에서 떼샷 인증
전남 곡성군에서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한다. 바로 유기농·친환경 농법으로 발아 현미를 직접 재배하고 연구하는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의 대표가 운영하는 밥 카페 '飯(반)하다'.
김탁환 작가는 그곳에서 우연히 '미실란'의 대표인 이동현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동현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길래 김탁환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아 책까지 쓰게 만들었을까?
이동현 대표는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규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 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3년에 일본에서 귀국한 뒤 이듬해 9월에 순천대 연구실에서 농업회사 법인 '미실란'을 창업했다.
김탁환 작가님은 이동현 대표를 만난 후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그분의 글을 유심히 지켜보았다고 한다. 페이스북에 매일매일 올리는 글을 한 달간 지켜보다가 25년 차 소설가로서 뭔가 촉이 왔다고 한다.
작가님은 촉이 오는 사람을 보면 3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첫 번째 단계로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 두 번째 단계로 알아보고 난 다음에는 이 사람에 대해 뭔가 써봐야겠다. 그 마지막 단계로 그냥 이 사람에 대한 책을 한 권 써봐야겠다. 이동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알아가다 보니 제일 높은 단계인 책으로 쓰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상식대로 안 사는 사람인 농부 과학자 이동현이라는 사람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책으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바로 김탁환 작가였다. 작가님은 이동현이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소멸과 맞서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지방 소멸, 농촌 소멸, 벼농사 소멸, 공동체의 소멸과 맞서고 있는 사람. 그에 맞는 활동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사람. 그래서 돕고 싶고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인물이 바로 이동현 대표라고 말했다.
이동현 대표가 말하는 친환경, 유기농법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익숙한 사람인 나. 지난 몇 년 간 아이쿱 생협에서 생산자 간담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기에 이미 그분들의 고충을 익히 들어왔다. 그 고충을 알기에 장마로 과일이 맛이 없어도 이해하며 먹었고 농산물이 안 팔릴 때면 책임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냥 눈물을 흘리고 있을 농부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나는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을 텐데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며 친환경 농업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지구를 살리는 가치 있는 일에 함께 동참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동현 대표가 '미친놈'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가면서 혼자 고독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감히 짐작해 보았다. 아버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 했던 것을 자식들이 성장해서 알아주었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고백하는 이동현 대표가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서 박수를 보냈다. 아빠에게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해 준 그의 자제분을 만난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내가 더 고맙고 기특한 마음이 들어 울컥했다.
작가님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보듯이 자신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다는 말은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동현 대표는 '사람들은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한다'라고 말했다. 가치 있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함께 하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이 나인데, 눈치를 보고 살았던 게 생각나서 그의 말을 들을 때 내 눈가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갈수록 학교가 없어지고 인구가 줄어들어 15년 안에 곡성이라는 곳이 사라진다고 한다. 청년들이 서울로만 올라가고 있는 현실에서 '미실란'을 지키려고 했던 이 대표의 꿈이 무너질까 싶었는데 위기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한다. '코로나19'가 터지자 청년들이 '미실란'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정말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청년들이 돌아오는 농촌은 상상만 해도 풍요롭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농업도 과학이기에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올해 곡성을 찾은 청년들은 머리도 좋고 너무나 큰 인재들이라 '세상에 이런 일이'를 외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동현 대표.
발아 현미에 대한 연구를 하며 그는 머리로만 일하지 않고 몸을 아끼지 않고 썼다고 한다. '모든 품종을 다 심어보자'는 의지로 8000평 정도의 논을 빌려 278종의 발아 현미를 심어봤다는 말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손모내기로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이다. 결국 가장 좋은 품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동현 대표의 한 길만 꾸준히 가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땅을 만들겠다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땅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는 것은 진리이다.
김탁환 작가님도 함께 심어봤는데 보통 인간이 하는 짓이 아니라며 웃었다. 힘들지만 이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작가는 그냥 지켜보며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현장 속에 뛰어들어 함께 체험을 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분에게서 삶의 철학을 배웠다.
이동현 대표는 벼를 바라보는 철학이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통했다고 말했다. 너무 간섭하지 않고 넘치지 않게, 믿고 묵묵히 지켜봐 주어야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잘 성장하는 것은 벼나 아이들이나 똑같다고 했다. 불필요한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안달하는 요즘 부모들에게 오히려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업만 강요하지 말고 멀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끓여 준 된장국 같은 음식이 생각나게 하라
'부모의 사랑을 더 느끼며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것에 더 집중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정말 큰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이동현 대표는 발아 현미가 우리 몸의 세포에 좋다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자체도 철학이 있어야 하고 농민도 철학이 있어야 하고 소비자도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농민들에게만 요구하면 농민들은 지쳐버리거든요. 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며 정직하게 친환경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소비자가 지켜줘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검색하는 일을 하며 농민들을 죽이고 결국 친환경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 고가의 아파트는 사면서 내 몸의 세포들을 살리는 데 돈을 지불하는 일을 억울해하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이러한 현실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소비자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에 새겨두고 함께 노력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동현 대표는 이런 위기 속에서 김탁환 작가님이 자신을 다시 발아 시켜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을 만나 책을 통해서 '너 아주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꿈이 생긴 것은 작가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기회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보듬어 주며 '너 아주 잘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 해 주는 건 어떨까? 선순환 구조로 누군가를 발아 시켜 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동현 대표의 마지막 말이 매우 인상 깊었던 멋진 강연이었다.
김탁환 작가님의 신간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존경하는 두분의 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