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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운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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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Dec 18. 2020

남편 떨고 있니?

"고속도로는 처음이라서 ."

아침에 남편의 눈치를 보던 그녀는 그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점퍼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그것은 바로 자동차 키. 그녀는 운전한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도 고속도로를 타 본 경험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기회는 있었다. 딸이 사는 천안에 갈 때, 친정 엄마 모시고 서울 병원에 갈 때 한 번쯤 교대로 하자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잔소리를 할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또 다른 이유는 그냥 편히 가고 싶어서 다. 조수석에 앉으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핸드폰으로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인스타 등을 할 수도 있는데 운전을 하면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해야 하지 않은가?      



운전을 미루고 미루다 딸아이가 고3 때 겨우 면허를 따고 아파트 내에서만 연습을 일주일을 한 겁쟁이가 바로 그녀다. 도로주행을 할 때 강사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그때 그녀는 너무 서러워 집에 와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이를 갈았다. 1년 동안 자동차 뒤에 ‘초보운전’을 붙이고 다니며 큰 사고는 없었지만 주차하며 몇 번 차를 긁어놓은 이력이 있어서 남편은 아직도 그녀의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한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어디까지만 내가 몰아볼게.’ 이 말을 하기가 두려웠다.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이다.      


‘시내만 다녀도 충분해. 고속도로 연습 같은 거 안 하고 편히 대중교통 이용하련다! 환경을 위해서도 운전은 최소로!’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잘한 거라고 셀프 칭찬을 한다. 가끔은 겁쟁이 같기도 하고 게으른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없던 자신감이 불끈 솟아 마음이 갑자기 비장해졌다. 우물쭈물거리다 남편을 향해 자신 있는 척 한마디 던졌다. 

    

자기야, 주유소도 들러야 하니까 일단 내가 운전할게.    


주유소에 들어가자 그녀의 마음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주유가 끝나자 타이어 공기압 체크를 했다. 체크가 끝나자 긴 선들을 감다가 잘 못하겠다며 정리 좀 해달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바로 운전석에 앉아 버렸다. 남편이 다 감은 걸 보자 창문을 내려 외쳤다.     


“여보! 빨리 타! 출발한다고.”

“뭐? 운전하려고? 어디까지?”

“음... 중간 어디메쯤?”

“뭐? 중간? 이제 겁을 상실했구나.”     


그녀는 솔직히 좀 떨렸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결심했다. 주유소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비장하게 출발을 했다. 고속도로를 향해 가고 있는데 곧 진입한다는 네비 양의 멘트가 흘러나왔고 곁눈질로 남편을 보니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다 보고 있어. 진입할 때 속도 줄이고 바짝 잘 붙여야 통행권에 손이 닿아.
일단 맘먹었으니 잘해봐.


그녀는 남편이 말한 대로 천천히 진입하며 통행권 뽑는 곳을 찾느라 눈을 크게 떴다. 남편이 더 붙이라고 말하는 소리도 무시한 채 간격이 많이 벌어진 것도 모르고 통행권이 나오는 기계만 찾았다. 그때 그녀의 눈에 번쩍하고 빛나는 기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찾던 것이었다. 기계 앞에 도착하자 통행권이 삐죽 나와 있었다.     

팔이 그렇게 길었어? 더 붙이라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

   

그녀는 팔을 쭉 뻗어 보았다. 어림도 없다. 가제트처럼 늘어나길 바라며 창밖으로 머리까지 내밀며 쭉 뻗어보았지만 잡히지 않았다.  

   

애쓰지 말고 그냥 내려서 뽑아.

   

그녀는 차에서 내려 뒤에서 차가 올까 봐 급하게 통행권을 뽑아 서둘러 차에 타는데 그만 통행권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통행권이 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내 눈에 뭐가 씌었나? 왜 안 보이냐고. 너 안 나올래?
빨리 모습을 보여라! 나타나라! 뿅!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는 멋쩍어서 계속 푼수같이 떠들었다. 운전석 바닥과 틈 사이에 끼어 있는 통행권을 발견하자 너무 반갑고 창피해서 주워서 얼른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출발했다. 

하하. 고속도로는 처음이라.  


음악을 들으며 평온하게 고속도로를 타는데 남편의 잔소리가 또 들렸다.     


“속도감을 느끼며 시속 110에서 120 정도 유지하며 가봐. 왜 속도가 왔다 갔다 해? 그리고 운전대 힘 빼고. 너무 힘주니까 중앙으로 똑바로 가야 하는데 왔다 갔다 하잖아.”     


그녀는 중앙으로 잘 가는데 왜 그러냐고 툴툴댔다. 그래도 남편이 말한 게 신경이 쓰여 손에 힘을 빼고 시내에서 운전하듯이 가볍게 잡았다. 차가 안 흔들리고 훨씬 부드럽게 곧게 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괜찮냐고 물으니 남편은 갑자기 이렇게 외쳤다.     


이제 도로와 내 차가 한 몸이 되었다 생각하고
속도감을 느끼며 쭈욱 빠져 봅시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말에 박장대소를 했다. 남편의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보려고 애쓰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그녀는 휴게소에 들러 남편과 운전대를 바꾸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녀는 아직도 운전이 피곤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자유롭고 기동력은 있지만 기차를 타며 느끼는 김성과 여유 그리고 소소한 낭만들을 포기할 수 없기에 자가용을 끌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될지 의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도전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은 날이다. 그녀가 두 번째 고속도로는 언제 탈지, 누구와 어디를 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또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지 기대가 되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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