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소재가 되어 주신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출처: <샘터> 1월호 특집 기사로 실린 글 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해온 친정 엄마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수줍음이 많아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기다려주는 좋은 선생님이셨다. 그 시절에 공공연히 주고받던 ‘촌지’도 엄마는 일절 받지 않았다. 어느 해 운동회 날, 반 학생의 엄마가 정성 들여 싸온 김밥 찬합 밑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한 나는 엄마가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하다 한참 뒤에야 엄마가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 그 돈을 저축해서 졸업할 때 선물로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10년 전 난소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병 때문에 정년 퇴임식도 못한 채 급하게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일은 엄마에게 지금껏 큰 좌절과 상처로 남게 되었다. 부부 교사였던 아빠 역시 2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교단을 떠나셨기에 엄마의 아쉬움은 더했다.
딱 1년만 지나면 오래 전 초임교사 시절에 다짐했던 것처럼
정년으로 퇴임할 수 있었는데….
정년퇴임 후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며 쉴 계획이었던 엄마는 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는 5년의 세월 동안 퇴임 전의 바람과는 너무도 다른 일상을 살아야 했다.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만큼이나 엄마의 자존감도 바닥까지 추락했다. 서울 큰 병원의 임상실험 대상자로 선정돼 4년간 신약을 복용하며 증상이 조금씩 호전될 때만 해도 가족 모두가 실낱같은 희망을 본 듯 마음이 들떴지만 절망적이게도 엄마의 시련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검진 중에 다른 암이 또 발견되었다. 그것도 하필 ‘설암’이라 수술 후 음식도 잘 드시지 못했다. 3개월 뒤 검사에서 암이 다시 재발되어 더 어려운 수술을 받았던 엄마는 그 뒤에도 재발을 막기 위해 그 힘든 방사선 치료를 서른 번 넘게 견뎌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 전, 엄마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거실에서 쓰러지며 고관절을 다쳐 지금껏 줄곧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신다. 밖에 나가기 힘들어 그 좋은 꽃구경도 마다하시고, 기껏해야 병원이나 노인주간보호센터에 일이 있을 때만 겨우 부축을 받아 다니는 엄마를 지켜보는 게 가슴 미어지게 힘이 든다. 최근에는 아빠까지 초기 치매진단을 받은 터라 이제는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점점 더 힘에 부치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일도 많이 줄어들어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최악의 상황에서 나라도 힘을 내지 않으면 후회만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지만 언젠가 엄마에게 약속했던 ‘작가 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해보고 싶었다. 중환자실에 실려간 엄마 때문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나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책 내는 일을 서둘렀다. 이왕이면 엄마의 이야기를 쓴 책을 선물해드리고 싶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필 작업에 더 힘을 쏟았다. 드디어 지난 10월 나는 엄마 품에 드디어 화사한 표지의 《엄마의 봄날》이라는 책을 안겨 드렸다.
정말이니? 이 멋진 책이 정말 우리 딸이 쓴 거라고?
어리둥절해하던 엄마는 딸이 오랫동안 꿈꿔온 일을 해냈다는 걸 아시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셨다. 책을 내고 나니 나도 요즘은 책임감 때문에라도 더 자주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또한 내 곁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없던 용기가 샘솟고 배짱도 두둑해지는 것 같다. 길었던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듯 나는 요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서점에 꽂혀 있을 내 책을 보러 갈 상상을 하며 오늘도 희망의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