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정치적인 입장을 묻는다면, 이리저리 당황하고 고민하겠지만 선뜻 어떤 대답을 내지는 못할테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떠드는 것이, 혹은 속으로라도 신념을 갖는 것이 퍽 위험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알아가려는 노력 자체를 게을리 한 것 또한 사실이므로 다소의 부끄러움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저을 가능성이 높다.
90년대에 태어나 2023년의 지난 주를 살아갈 때까지만 해도 그간 입장이 없었던 만큼이나 적극적인 참정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니까 단체에 소속되어 위정자들에게 나의 이익이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주장을 펼쳐본 적이 없었다. 더 쉬운말로, 집회를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근자의 대한민국 현대사가 얼마전에 거쳐온 수많은 사건들이 머리를 스쳐지나실테다. 아니 어떻게 '그 때'도 거리로 나오지 않았었냐는 의문이 드셨겠지만, 내게도 나름의 구차한 핑계는 있었다. 군인신분이어서 중립을 지키기 위하였다던가 하는 등의.
지난 토요일, 그 모든 부끄럼 많은 생애를 뒤로하고 인생 처음 집회참가를 위해 광화문 어딘가로 향헀다. 검은 옷을 입고 땅에 앉았고, 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냈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느 젊은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애인이, 나의 고등학교 친구가, 서로의 글을 읽고 응원하던 작가님이 같은 비극을 겪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갑자기 발생한 비극인 만큼, 갑자기 준비된 집회도 완벽하진 않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사전에 계획된 보신각 사거리 네 귀퉁이가 모두 꽉 차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4구역이라 이름붙여진 곳 뒤편에 이미 줄지어 앉아계신 곳이 있어 그곳의 제일 뒤에가서 앉았다. 주최측이 준비한 커다란 전광판은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행사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발언이 시작되었고, 중간중간 박수소리가 들려오면 따라치다가, 제각기 휴대폰을 꺼내 라이브영상을 시청했다. 200미터 정도 떨어진 현장까지 왔지만 집에서 보는 것처럼 액정으로 상황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마저도 다수의 운집 때문에 뚝뚝 끊기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주최측의 선창에 답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희미하게 들리는 선창에 우렁차게 후창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탓에 쭈뼛대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던 와중, 어떤 선생님의 목소리가 있었고, 우리쪽에 앉은 사람들도 모두 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쳤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수많은 부당한 고개숙임이 떠오른다. 뺑소니 사고를 내서 경찰조사를 받느라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워 그만두게 된 직원이 고용노동부 운운하며 민원을 들먹였을때 쉴새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던 때라던가. 전화로 퇴직금에 대한 안내를 하는 내 목소리가 기분을 나빴다며 진정을 넣어 몇 주를 벌벌 떨게 했던 퇴사자라던가. 프랑스 수도 바게트 빵집 알바시절, 분명히 큰 소리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고객이 왜 차가운 걸로 줬냐며 언성을 높일 때 고개를 숙이던 매니저 형의 뒷통수라던가.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와중이었어도 고객의 기분이 상하면 일단 '죄송한 액션이라도 취해야 하는 분위기'는 어디서 온걸까? 마땅한 절차를 지켰음에도, 고객이 언성을 높이면 '예외적으로 처리를 해줘야 하는 분위기'는 또 어디에서 온걸까? 합당하게 지도했음에도 부모가 학대라 민원을 넣으면 교사는 일단 죄인이 되는 분위기는 또 어디서 온걸까. 이 모든 것에는 과연 종결이 있을까.
이번 우리가 겪은 상실 그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상실과 폭력같은 문제들에는 침묵하거나, 아예 외면하였으므로 나는 위선자다. 그것이 얼마나 사실인지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망설였다. 그간 침묵을 지키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목소리를 내는 저열한 작자여도, 그가 쓴 글이라 폄하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뿌리를 뽑는 것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집회가 끝나고는 떠난 이가 마지막 여름을 보낸 장소에 방문했다. 학교를 둘러싼 근조화환은 그 수를 셀 수 없었고, 포스트잇에 담긴 남겨진 이들의 사죄와 절규는 차마 다 읽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