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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Apr 17. 2022

일을 시작하는 방법1. 저지르고 수습한다

공부방 창업일기6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까 보고 가신 OO 부동산이에요."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공부방 원장님이 연락하셨는데 만약에 계약하시면 지금 다니고 있는 아이들 어머님들께 소개해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연락드려요."

"아 네... 알겠습니다. 부모님이랑 상의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연결해 주신다니!

이제 막 시작하는 햇병아리 선생님에게 무척이나 솔깃한 제안이 아닌가!


모든 아이들이 등록하는 건 어렵겠지만, 운이 좋으면 0부터 시작하는 고생을 면하고 두세 명의 씨앗들을 키워가며 첫 달부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걱정 되고 막막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 봐야 한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 때문에 아이들이 한 명도 등록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을까? 그래도 시작해 보는 게 맞을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젊고 밑바닥부터 경험해서 차근차근 올라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난의 서막이 울린다...)

시간이 지나면 내 일을 하겠다는 이 의지도 약해지고 걱정만 키울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는 것만이 내가 고민하고 회피하는 시간을 줄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공부방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무조건 해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부모님께는 내가 오늘 공부방을 알아보러 나온 걸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공부방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린 적이 없는데?!

어쩔 수 없다. 기회를 잡으려면 지금 바로 상의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상의를 하기 위해 엄마한테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입술이 말랐다.

엄마가 곧 전화를 받으셨고 여차저차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며 공부방을 계약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예상치 못한 일에 적잖이 당황하신 눈치였다.


"아니 갑자기 공부방이라니? 집을 알아봤다고?"

"네 엄마. 그런데 여기 조건이 너무 좋아서 계약할까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뭐라고? 계약을 한다고?!"

"네. 놓치기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같이 오신 원장님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하시고 이래서 저래서~."

"........... 이미 혼자서 결정은 다 내렸네? 엄마한테는 결정 다 하고 통보하는 거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 뭐 네가 한다고 결정했으면 해야지. 말려도 할 마음이 있는데 뭘."


전혀 달갑지 않은 말투로 어렵사리 허락(?)이 떨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부방을 계약할 수 있게 되었구나!


"사장님~ 저예요. 그 집, 계약하겠습니다."


이사 예정일이 한 달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to be continued...




엄마는 당시에 딸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이 엄마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때문에 공부방을 계약한다고 전화드렸을 때, 지금은 공부방이 아니라 결혼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니냐며 쓴소리를 하셨고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그때 일을 이야기했을 땐, 딸이 결혼할 나이는 됐고 어느 날 좋은 사람이 덜컥 생겨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돈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난 뼈아픈 경험을 한 뒤로 결혼이 아니라 내 미래가 최우선이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고 생계를 독립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어야 누굴 만나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다른 사람의 능력에 기대 내 인생을 풀어나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일이 가장 중요했고 무엇보다 시급했다.


공부방 오픈 전에는 부모님과 한 집에 같이 살다 보니 그런 충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눈앞에 걱정거리가 돌아다니는 걸 보여드리는 것도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던 때였다.

엄마는 결혼을 걱정하며 잔소리하는 횟수가 빈번해졌고, 나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그 환경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공부방을 하며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던 건지도 모른다.


공부방 오픈과 함께 생애 첫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부모님의 걱정은 나의 결혼에서 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나 역시도 살아남아야겠다 발버둥 치느라 일에 파묻혀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나도 부모님도 함께 울고 웃고 성장했고, 지금은 편안하고 안정되고 훨씬 더 끈끈해졌다. 떨어져지내다 보니 서로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욱 커진 느낌이다.

가족이어도 서로를 위한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지금은 부모님이 성장한 내 모습을 많이 대견해하시고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해 주시는 든든한 서포터가 되셨다.

올해부터 슬금슬금 '이제는 결혼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걸 보니 내 일이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다음 에피소드부터 이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고난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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