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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Apr 24. 2024

세부 여행기 4일 차 - 물놀이

2024.4.12.


밖에서 무슨 발 치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알고 봤더니 팡 알람 소리였다. 알람 소리가 왜 이렇게 다양한가. 이렇게 오래 듣고 있을 거라면 왜 알람을 맞추는가. 긴 시간이 지나 마침내 팡이 스스로 알람을 끌 때까지, 다같이 그 소릴 감상하다 일어났다. 오전 6시.


오늘 일정은 물놀이. 스노클링을 오전 8시로 잡았는데, 식당 오픈이 8시여서 할 수 없이 스스로 당을 보충해야했다. 이럴 줄 알고 과일을 가져왔지. 포멜로, 망고스틴, 망고. 켠은 우아하게 포멜로만 먹고 딱 멈췄다. 살아남으려면 가리지 않고 다 먹어야 하거늘. 강남 3구 출신에게 헝그리 정신을 기대하긴 무리인가. 팡진은 악착같이 남은 과일을 해치웠다.

8시. 우릴 태워줄 요트가 왔다. 요트 타고 다른 바다로 이동하는 동안 핀과 마스크를 착용했다. 스팟 도착. 차례로 입수하는데, 팡이 주저했다.


아니 구명조끼가 없는데 어떻게 해?

뭔소리야 사람 몸은 원래 물 위에 뜨는 거야. 너 수영할 줄 알잖아 임마! 스포츠맨 답게 해!


하고 나 먼저 입수했다. 이어서 켠팡 순으로 입수.. 했는데 물 위에 열심히 뜨고자 하는 팡이 못내 불안하다. 그걸 보던 크루가 바로 플라스틱 튜브를 던지고 따라 입수했다. ‘아 저렇게 챙겨주는구나.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야말로 오랜만의 바다수영이라 스스로를 챙기기도 벅찼다.


나는 스쿠버다이빙 라이센스를 홍해에서 땄다. 처음부터 끝판왕을 봐버린 터라 이 곳의 산호엔 별 감흥이 없었다. 거북이를 발견했을 땐 좀 신기했지만 그것도 잠깐. 거북이는 혼자 다녔고, 우리와 놀아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를 본체만체 슬그머니 깊은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나는 바닷물에서 노는 자체가 좋았다. 오랜만의 스노클링에 물도 많이 먹었다.

그렇게 켠과 함께 바다를 헤매다 팡을 발견했다. 팡은 튜브에 매달려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잠시 쉬자는 켠의 제안에 같이 요트로 올라갔다.


야 ㅋㅋㅋㅋ 팡 괜찮아? 할만해?

아이씨 나 진짜 죽을뻔했어 이 ㅂㅅ들아!

…?! 팡이 이렇게 쌍욕을 한다구?!

아니 마스크 쓰는 법은 미리 알려줘야 할거 아니야?!

당연히 알 줄 알았지. 왜 안물어봤어?

모르는데 어떻게 물어봐!

그래서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다 알려줬다. 그사이 다음 스팟으로 이동. 두번째 스팟에선 셋 다 처음보다 여유가 있었다. 크루가 내 폰으로 영상을 찍어주었다.

다시 숙소로. 죽다 살아난 팡은 많이 지쳐보였다. 팡의 두 번째 삶을 축하하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커피, 까느보나라 스파게티, 치킨 슈니첼을 주문했다. 커피에 우유, 설탕이 함께 나왔다. 팡이 먼저 자기 컵에 커피와 우유와 설탕을 부었다. 한 모금 마시고는


야 우유랑 설탕이랑 다 넣어서 먹어봐.

응? 아니야 나는 설탕은 괜찮아.


그 때 옆에 있던 켠이 자기 컵에 우유와 설탕을 때려넣으며 내게 말했다.


야 빨리 넣어 임마 지금 팡 죽다 살아났는데.

어 알았어.


나도 잽싸게 넣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서양음식을 시켰는데 다 맛있었다. 대체 저 작은 주방에서 몇 안되는 필리핀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전세계의 요리를 고퀄리티로 내놓는 걸까. 돼지고기 볶음밥과 토마토 스파게티를 추가로 시켰다. 이 또한 맛있었다.

체크아웃. 짐은 한켠에 두고 캐니어닝. 오토바이에 좌석을 덧붙인 탈것에 탔다. 노면의 굴곡이 그대로 엉덩이에 느껴졌다. 천장이 좁아서 켠은 곱추가 되어야 했다. 뒤따라오는 오토바이와는 서로의 표정이 다 보였다. 이걸 타는 게 이미 레저이자 스포츠였다. 그대로 40분을 갔다.

샵에 도착하여 락커에 짐을 넣고 헬멧과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산에 올랐다. 오늘 여기 있는 탈것 다 타본다. 

산 정상에 도착하여 먼저 브리핑을 받았다. 코스의 시작은 짚라인. 짚라인은 타기 싫으면 안 타도 되는데, 그럴 경우 30분을 걸어가야 한다. 그걸 왜 안 타지? 혹시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들이 있나? 짚라인 탈 거냐는 질문에 Sure, why not?! 이라고 답했다.


여기 짚라인은 길었다. 장장 1키로. 체공시간 1분. 두 명씩 엎드려서 슈퍼맨 자세로 함께 탔다. 눈 아래 보이는 산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계곡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과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환호성이 우릴 들뜨게 했다. 우리팀은 1인 1가이드. 가이드가 세 명이니 서비스 대박이었다. 한 사람은 안내하고 한 사람은 보조하고 한 사람은 사진 찍고.


캐니어닝의 꽃은 점프. 안전하게 깊은 물 위에 스릴있게 높은 바위가 있었다. 풍덩. 물이 몹시 시원했다. 더위가 싹 가셨다.

코스는 다채로웠다. 다양한 점핑 스팟 외에도 미끄러지는 지점, 거꾸로 미끄러지는 지점, 뒤로 쓰러지는 지점, 발로 차서 쓰러뜨리는 지점, 동굴 아래를 헤엄치는 지점 등이 있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이드들은 한국 단어를 은근히 많이 알았다. 사진을 찍을 땐 사진! 사진! 하고는 우리가 포즈를 취하면 하나! 둘! 셋! 을 했다. 허리 정도 깊이의 물을 건널 땐 기차! 기차! 해서 우리를 눕혀 연결시키고는 앞에서 끌어주었다. 누워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신이 나서 뿌우~ 하고 기차 기적 소리를 냈다. 물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나이를 잊었다.

마지막 점핑 스팟은 10미터 러닝 점프. 마지막이어서인지 원모어! 원모어! 하길래 잽싸게 올라가서 한 번 더 탔다. 다리를 벌리고 떨어져서인지 중요한 부분이 많이 아팠다. 러닝 점프 시에는 중요한 부분을 잘 사수해야한다.

러닝 점프가 끝인줄 알았는데 로프 점프가 또 있었다. 타는데 덤블링! 덤블링! 하길래 시도해 보았으나 잘 안 되었다. 두 번을 더 시도해서 겨우 흉내를 냈다. 팡은 무난하게 탔다. 켠이 많이 웃겼다.

로프 점프가 끝인 줄 알았는데 폭포가 또 있었다. 팡이 말하길, 여기가 아바타 촬영지란다. 아마 가이드북에서 보았으리라. 과연 아바타에 나올 만큼 이세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냥 보고만 가는 줄 알았는데 앞에서 우리 사진을 찍어주더니, 우리를 데리고 폭포 뒤로 돌아가서는 폭포쪽을 향해 입수하여 나오게 안내해주었다. 와 진짜 개꿀잼.

캐니어닝을 마치고 다시 샵으로. 너무 즐겁게 잘 이끌어주셔서 팁을 200페소씩 드렸다. 거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밥이 나왔다. 치킨라이스에 잡채에 콜라. 아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숙소에 돌아오니 분실물에 내 바지와 여권이 있었다. 팡켠이 그걸 보고는 정신머리 없다며 놀렸다. 이런거 여행기에 올려야 한다기에 올린다. 여행중에 바지는 잃어버려도 되지만 여권은 꼭 챙겨야 한다. 여권에 대해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캐니어닝 비용을 지불하는데, 1인당 3,000페소가 아니라 4,000페소였다. 짚라인 비용이 별도로 1,000페소였던 것. 아 그랬구나. 그래서 선택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탈 거냐고 물어봤구나.


가지고 있는 페소가 부족해서 숙소 결제가 좀 어려웠다. 크레딧 카드는 안 받아주고, 페이팔은 수수료가 세고, 수수료 저렴한 다른 결제 수단으로 해보는데 잘 안 되고. 그 잘 안되는 결제 수단을 좀 되게 해보려고 나와 팡이 머리를 맞대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켠이 자신의 페이팔로 결제를 해버렸다.


야. 내가 했으니까 빨리 가자. 우리에게 귀중한 건 돈보다 시간이야.


맞는 말이다. 공감능력은 때로 떨어질지 몰라도 결단력은 탁월한 켠이었다.


돌아가는 차는 올때보다도 쌌다. 3,500페소. 차값이 싸서 크기가 작을까 걱정했는데 크기도 컸다. 개꿀. 다만 기사님이 유머러스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아. 우리는 각자 묵묵히 볼일을 보았다.


마지막 숙소는 누스타 리조트의 필리 호텔. 중국 자본이 지어서인지 번쩍번쩍 빛나고 화려했다. 냉방이 너무 강해서 우리는 넣어뒀던 쟈켓을 꺼내 입어야했다. 유쾌한 불편함.

짐 풀고 식사하러 내려왔다. 카지노 안에 중식당이 있었다. 씬티엔디. 사천식해물탕, 삶은닭고기밥, 소고기볶음면, 딤섬, 볶음밥을 시켰다. 거의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2차로 옆에 있는 바에 갔다.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래에선 연세 있어보이는 분들이 살사를 추고 있었다. 한 잔씩 마시며 보고 들었다.

12시. 피곤할 시간이다. 켠이 먼저 방전돼 올라갔다. 팡진은 지하 마트에서 맥주와 과자를 샀다. 방에 올라오니 또한 급 피곤해져서, 사온 맥주의 반도 못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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