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주 전 친구 집에서 오래간만에 여럿이 모여 술을 먹었다. 술에 진심인 친구는 집에 술이 너무 많아서 재고떨이를 좀 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재고떨이인 줄 알고 갔더니 재고떨이가 아니라 창고 대방출이었다. 친구가 직접 만든 약주와 맥주까지 열심히 술을 마셨다. 친구 한 명이 얼마 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아주 감명 깊게 봐서 구글리 아이 장난감을 가져왔다고 했다. 우리는 술을 한 병 비울 때마다 눈알을 술병에 붙였다. 처음엔 한 병에 눈알을 두 개 붙여줬는데 빈 병이 너무 많아져서 결국 눈알을 하나씩 붙였다. 지각한 사람들의 이마에도 하나씩 눈알을 붙이고 술을 마셨다.
그날의 모임이 너무 즐거워서, 빈 병에 붙인 눈알이 너무 귀여워서, 이마에 눈알을 붙이고 셀카를 찍은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다음 날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예매하고 보러 갔다. 영화는 즐겁고, 귀엽고, 따뜻했다. 러닝타임이 길다 보니 분명히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군더더기들마저 좋았다. 어차피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삶의 메인 스토리가 아니라 군더더기니까.
에블린의 삶은 너무 힘들지도, 너무 엉망이지도 않지만 그는 괴롭고 퍽퍽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에블린은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지만 그 정도는 흔쾌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 것보다 에블린을 정말 괴롭게 하는 건 가족들이었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버림받았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고, 딸과의 사이도 안 좋고, 이혼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가족들이 겪고 있는 흔하지만 지독한 고통들이다. 이 영화는 빌런 조부 투파키의 비주얼부터 모든 것이 아주 정신없고 혼란스러운데, 사실 모든 가족 간의 갈등은 일상에서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늘 정신없고 혼란스럽다.
모든 관계에는 개인의 성격이 반영된다. 남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 남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성격, 남에게서 사랑을 너무나 받고 싶어 하는 성격,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성격, 착하게 보이고 싶은 강박을 느끼는 성격, 남을 헐뜯는 성격, 남에게 집착하는 성격, 성취하지 못하면 버림받을 것 같다고 느끼는 성격. 우리가 고치고 싶어 하는 많은 우리의 결점들은 사실 우리 가족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대개 사람은 평생 동안 '우리 가족'이라는 하나의 가족만 보고 자란다. 성격의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엔 가족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성격의 어느 한 면을 결핍시킨다.
이혼 소송을 하러 찾아온 많은 의뢰인들이 종종 하는 말 중 하나가 "사실 저희 부모님도 이혼을 하셨어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이혼을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을 어렵사리 털어놓는다. 아마 자기 부모님에게서 보았던 어떤 실망스러운 모습을 스스로에게서도 보고 있어서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잘못도, 당신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라고 위로를 건넨다. 이혼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다만 분명 이혼 과정에서 느낀 스스로의 어떤 결핍은 앞으로 다른 관계를 맺더라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에블린은 결혼을 반대하던 아버지와 갈등이 생겨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면서 결핍이 생겼다. '아버지가 반대한 결혼을 했지만 잘 살고 있으니 제발 나를 인정해주세요.'라고 그의 온 삶에서 외치고 있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그의 삶을 억누르고 있고, 매사에 태평한 남편과 틱틱대는 딸 사이에서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그는 늘 싸우듯 살아가는 성격이 되었다. 남편을 믿지 못하고, 레즈비언인 딸을 인정하지 못한다. 에블린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딸을 대하고 있다.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는 늘 싸우듯 살아가는 에블린을 보면서 다 자기 잘못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정말 태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좀 실없는 구석이 있다. 그가 하는 모든 시답잖은 일에 에블린은 대놓고 핀잔을 준다. 구글리 아이를 다 떼어버리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실없음은 그의 일부다. 그래서 그는 숨이 막혔다. 에블린을 사랑하지만 자신을 부정당하면서 혼인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부부싸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분명 객관적으로 보면 어느 한쪽의 말이 다 옳은데(장난감 눈을 떼라는 에블린의 말처럼), 관계에서는 꼭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에블린의 딸 조이는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면서 에블린으로부터 부정당한다. 조이는 온전한 자신으로서 인정받고 싶지만 완벽한 가정을 만들어 아버지한테 인정받아야 하는 에블린은 동성애자인 딸을 용납할 수 없다. 진정한 자신을 부정당하는 조이는 모든 멀티버스를 파괴할 빌런 조부 투파키가 된다(에블린은 그 이름마저 계속 잘못 부른다.). 진정한 나 자신을 버려야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인데, 그 대상이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인 상황이 조이에겐 너무 큰 고통이다. 그는 차라리 무無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에블린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결국 모든 멀티버스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가족들 간의 갈등이 그럴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또 그 부모님으로부터, 또 그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된 어떤 결핍들이 스스로도 모르게 스스로를 옭아맨다. 결국 관계의 파괴로 향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재생산하는 셈이다. 아무 상처도 없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을 대하기에는 자신이 그간 느낀 고통마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부될까 봐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받은 상처랑 비슷한 상처를 주변 사람들에게 주면서, 결국 스스로의 상처를 더 후벼 파며 스스로를 상처 줄 뿐이다.
에블린의 남편인 웨이먼드는 그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늘 친절하고 다정하게 살아가 달라며(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그것이 자신의 싸우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에블린은 그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자잘한 갈등들을 기꺼이 해결해낸다. 지독하게 싸워야 하는 순간 '친절하라'는 웨이먼드의 실없는 말을 에블린이 받아들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웨이먼드와의 갈등도 해결해준다. 싸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웨이먼드의 말이 유독 와닿았다.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다면,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한다면 세상의 많은 갈등이 없어질 텐데.
그보다 더 나아가 에블린은 아주 찰나의 행복이라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면 엉망인 삶이라도 함께하겠다며(Then I will cherish these few specks of time.) 조이와 화해한다. 아무리 엉망이어도 믿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멀티버스의 수많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궁극적인 해결책이었다. 에블린은 있는 그대로의 가족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곁에 있었다. 찰나의 행복을 위해 괴로운 많은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누구에게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세탁소버스의 에블린은 누구보다 특별한 에블린이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엉망일 것이다. 너무 힘들지도, 너무 견딜 수 없을 정도도 아니지만 딱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힘듦이 계속되는 나날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그런 힘든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순 없다. 에블린도 세무조사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했다. 즐거운 날보단 힘든 날이 많다. 하지만 그런 힘든 나날 중 정말 찰나의 행복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다. 조금씩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이 결국 지독한 갈등들을 해결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