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뒀던 글을 몽땅 서랍에 넣었다. 시작은 단순했는데, 윤서에게 선물받은 (아마 내가 먼저 선물했을) 박준 시인의 시집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지하철에서 읽으며 발견한 한 문장 때문이다. 어느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이 문장을 만나고 특히 윗 줄을 만나고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나에게 글쓰기란 생활적으로 매일 수반되는 것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그리고 나서, 난 요즘 글을 잘 쓰지 않았구나 깨닫는다. 이전에 썼던 글들은 모조리 서랍에 넣었다. 쓰고 싶은 글들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을 때 쓰련다. 지하철에서 종종 이 시집을 읽는다. 기분이 왠지 좋아지는 언어들. 시인들은 어쩜 이렇게 어휘력도 뛰어난지. 언어의 마술사들 같다. 닮고 싶다.
요즘 매일 책을 읽는다.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스페인 책방>이란 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독립출판물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오수영)』을 그때부터 주욱 읽는다. 그곳에서 책을 구매하고 이후 시간이 남았을 때,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했을 때, 친절히 빌려준 윗 층의 또다른 책방의 공간에서 그들은 내게 쿠키와 커피도 내어주셨다. 그것의 기분이 좋아서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곤 창밖에 선명히 비추는 채광을 맞으며 '이곳 참 좋다' 생각했다. 그렇게 알게된 스페인 책방의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잠이 안 오는 어느 밤에 들었고, 꽤나 느낌이 좋아서 다음에 또 들어야지 했는데 안 듣게 되었다. 나는 팟캐스트 취향은 아닌가보다. 아무튼 서두에 뗀 책을 자주 읽는 말을 연결지으려 여기까지 돌아왔다. 나는 음악을 감상하고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쉴 때 명륜당이라고 우리 학교에 있는 어느 공간에 갔다. 쉴 때마다 그곳에 간다. 가는 이유는 그곳의 에너지가 좋아서. 사진 찍는 사람들과 소풍 온 사람들로 가득해 밝은 기운이 한 가득이다. 요즘 자주 어두워지는 나로서는 그곳에서 기를 받는 느낌일까. 무엇보다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엄청나게 커서 밖에서도 한 눈에 보이는데다가 가지가 퍼진 범위가 아주 넓다. 나는 종종 은행나무에게 속으로 말을 건다. 빌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득인데, 저 나무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을까, 지치진 않았을까 싶어서 먼저 은행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속으로 전한다. 그리고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말한다. 소원 빌기보다는 포부 다지기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그렇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을 때 따끈따끈 오늘 알게된 뮤지션 '김사월'의 '누군가에게'를 들으며 돌아왔다.
여기서도 마음 속에 들어온 가사들이 있다.
너는 누군가에게 너무 특별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네가 사랑받기에 결국
이해 못한대도 넌 아름답지
그렇게 수업을 듣고, 더 내게 관대해지기로 (이미 수백번째 먹고 있는) 마음을 내고, 동생과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역시나 김사월의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는데 글을 쓰고 싶어서. 음악과 문장은 힘이 있다. 그걸 써내려가는 사람들 중 유달리 내게 와닿은 사람들을 그들의 작업과 작품으로 곁에 둘 때 든든하고 행복하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는 오랜 기간 멀리할 생각이야. 요즘 내가 취약한 상태라는 걸, 무엇보다 비교의 영역에서 특히 취약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삶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해야겠다고 또 생각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역시 비교를 쉽게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았다. 당분간은 그들 없이 살아야지.
좋은 점도 있다. 내가 좋아하고 보고픈 이들에게 마구 연락할 수 있다는 거다. 전에는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착각을 많이 했다. 그것도 물론 연결이지만, 나는 소식은 개인적으로 내밀하게 직접 주고받는 게 좋더라구. 어쨌거나 여름은 지났고 가을도 지나가고 있고 곧 겨울이 온다. 두 달이 조금 안 남았어 올해가. 더 나다운 생활의 방식들에 대해 고민해보고 더 내게 관대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