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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개군날돌들막 May 26. 2024

성취한 경험에 대한 중요성

- 반복된 경험에 익숙해지는 감정

요즘 들어 자주 생각나는 말이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당시, 행정학을 강의하시던 강사님께서


"여러분, 공무원 시험에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이번은 첫 시험이었어, 다음 시험의 기회가 있잖아' 이렇게 절대 스스로를 위안해서는 안됩니다. 최대한 빨리 붙어서 나가야 해요. 실패도 결국 익숙해집니다."


대충 이런 뉘앙스로 강의 중간에 해주시던 말이다.


그 당시, 한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어서 저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그 이후의 삶에서 저 말이 문득문득 머리를 맴돈다.


어제 남자친구가 영화 '혜옥이'의 유튜브 편집본을 내게 공유해 주었다.

20분간의 짧은 영화 편집본 속 혜옥이를 보니 과거 수험생활을 하며 불합격에 익숙해졌던 내가 생각나서 우울해지고 숨이 막혔다.

 첫 해에는 빨리 합격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주변의 격려, 그리고 점차 '불합격'에 익숙해져 가는 나, 같은 강의의 무의미한 반복, 다 아는 것 같지만 다 모르겠는 자욱한 안개가 낀 끝없는 길을 걷는 느낌.

그리고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은 내가 수험생활을 할 동안, 내 시간은 멈춰있지만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


내가 공부할 때, 한 수험 카페에서 주변에 10년을 공부하고 결국은 공무원이 된 지인이 있다는 사람의 글을 봤다. 그때는 계속하면 언젠가는 붙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어 희망이 되었던 글이다.

하지만, 한창 청춘인 20대 후반의 인생을 즐기지 못한 게 지금 와서는 내 인생의 후회로 남았는데,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험생활을 했다면, 나 역시 제2의 혜옥이 되지 않았을까?


성취도, 실패도 경험으로 학습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의 난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처음 회사생활 당시 어떤 일련의 안 좋은 일에 휘말리게 되면서 나는 내 능력을 부단히 입증해 내야 했다.

그 결과, 나는 회사 설립 이후 최초로 정부에서의 큰 상도 받고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에서 최고의 성과를 냈다. 입사한 지 고작 몇 년 되지 않았던 직원이었지만, 한참 선임들의 질투와 견제를 받을 만큼 내가 맡았던 모든 업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창출해 냈다.

이제 회사 직원들이 나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떤 업무를 맡아도 완벽하게 다 해내는 직원'이다.


이런 내가, 최근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또 하나의 큰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는 일잘러로 통하는 내가, 호기롭게 도전한 시험에서는 또 실패했다.


일머리와 공부머리는 정말 다른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경험에 대한 중요성'이었다.


업무적인 부분에서 크든 작든 반복적인 성취의 경험을 느꼈던 나는, 그 이후로 어떤 업무를 맡아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생겼고, 실제로 어떤 상황이어도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될 때까지 노력했다.


반면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공부 또는 시험에 반복적인 실패를 경험한 나는, 그 이후로도 어떠한 시험이라도 불합격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그게 아주 간단한 어학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또는 승진 시험이라도, 과거의 경험이 나를 지배하여 이미 나 스스로 이번 시험은 열심히 준비해도 잘 안될 거야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게 결국은 열심히 하지 않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불합격이라는 결과는 필연적인 것.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반복된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갖게 되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더라도 나의 경우에는 '이번 시험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으니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와 같은 떨어질 시험에 대한 스스로의 핑계나 위안이 필요했다.

(즉, '내가 열심히 하면 붙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안 해서 떨어진 거야' 같은 말도 안 되는 스스로의 위안)

그리고 어차피 떨어질 시험이니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깝게 느껴지고 이러한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은 다시 불합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것들은 데드라인을 앞두고 아주 크게 차이가 났다.

업무적으로는 데드라인을 앞두고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려고 최대한 집중을 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챙기는 반면에, 가장 집중해야 할 시험 전 날에는 항상 '아,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혹은 아, 내일 그냥 시험 보러 가지 말까?'와 같은 생각들이 정신을 지배한다.


만일 내가 공무원 시험에서 바로 합격을 했다면 지금쯤 다른 시험에서도 자기 효능감을 갖게 되고,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노력하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그 강사님이 실패를 반복해서 경험하면 안 된다고 말했던 것들의 의미를 알겠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말해 줄 수만 있다면, 그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말고 바로 공기업이나 사기업 이직을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건 내가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해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내가 몇 년을 더 준비해서 공무원이라는 성취를 거머쥐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수험 생활 기간이 가장 값진 시간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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