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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Nov 01. 2024

추억과 인생을 담은 한 그릇
<프렌치 수프>

씨네아카이브 51. 인생을 담은 요리 part.2

흑백요리사가 몰고 온 미식 열풍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독서 열풍이 심상치 않지만 나는 사람들의 관심사 변화 속도를 쫓아가는 것이 녹녹치가 않다... 어차피 늦은 김에 미식의 세계에 조금 더 머물러 보기로 했다. 51번째 아카이빙은 요리에 자신의 인생을 녹여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51. "인생을 담은 요리" 전문 읽기



<프렌치 수프(The Taste of Things)>, 트란 안 홍, 2023년 개봉


(이미지 출처: 네이버)

<프렌치 수프>는 마르쉘 뤼프의 1924년 소설 『도댕 부팽의 삶과 열정』에서 모티브를 얻어 원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서사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요리에 자신의 열정, 삶, 그리고 사랑을 담아낸 도댕 부팽과 그의 동반자 외제니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인공 ‘도댕 부팽’은 미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인물로 원작가인 마르셀 뤼프는 캐릭터를 만들 때 프랑스의 저명한 미식저술가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을 참조했다고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라는 명언(?)을 남긴 인물로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도댕 역은 브누아 마지멜이 그의 동반자 외제니 역은 줄리엣 비노쉬가 맡았는데요. 두 사람은 실제로 극 중 주인공들처럼 20년 넘게 동거하다 헤어졌는데 이 작품으로 20년 만에 재회했다고. (프랑스 사람들의 관계란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


영화는 요리 장면이 모든 분량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요리 신들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하는데 등장하는 모든 요리는 요리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가 감수를 맡았다. 감독이 그의 식당을 방문했다 음식 맛에 반해 영화의 참여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미식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담겨있는 만큼 단순히 요리를 넘어 미식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이미지 출처: 네이버)

20년간 함께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온 외제니와 도댕. 두 사람의 요리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 존경, 사랑이 담겨 있다. 인생의 사계절 중 가장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에 접어든 때에 도댕은 진심을 담아 외제니에게 청혼하지만 한여름의 자유를 사랑하는 외제는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댕은 다시 한번 온 마음을 다해 외제니 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프렌치 수프>였지만 프랑스어 제목은 ‘도댕 부팽의 열정(La Passion de Dodin Bouffant)’으로 영화를 보고 나면 프랑스어 제목의 의미를 2만 프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요리의 본질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원작 소설의 작가가 캐릭터 구성에 참고한 브리야 사바랭이 한 말(“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처럼 도댕이 요리하고 먹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도댕 부팽이 누구인지 이보다 더 명확히 알려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밭에서 자란 신선한 채소부터 물 좋은 생선, 선홍빛 육류까지 각종 식재료들이 그와 외제니의 손길을 거쳐 어떻게 하나의 요리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단순히 위장에 음식물을 밀어 넣는 것에 불과한 먹방과 격이 다른 먹방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유려한 카메라 워킹, 눈과 귀를 사로잡는 쿠킹 사운드는 마치 관객들이 함께 요리를 하며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댕과 외제니는 “하나의 맛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문화와 기억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데 영화 <프렌치 수프>는 도댕과 외제니 두 사람의 삶과 관계를 통해 열정을 다해 요리하고 사람들과 나누어 추억을 만듦으로써 맛을 완성하는 것이 요리의 본질이라 말하는 것 같아 단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요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준 작품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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