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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림 이원종 Sep 15. 2019

육보차를 찾으러 온 마을에서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중국차 흑차 육보차의 마을 육보향, 차향보다 깊은 인연

사람을 모르고, 차를 알 수 있을까요? 차를 아는데, 사람을 모를 수 있을까요? 육보차의 산실 오주에서 한 잔 차를 나누며, 차인 한 분이 ‘차는 몹시 오래 되었고茶久遠, 정은 깊고 길구나情深長’ 하는 절구를 적어 줍니다. 서화가이며 시인인 초로의 신사입니다. 그가 다시 묵은 차 한 잔을 건넸습니다. 만리타국의 오지에서 자정을 넘어서까지 뜨거운 차를 나누어주는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한국의 한 서생이 문향 가득한 광서에 와서 호사를 누립니다. 문득 ‘차향은 만리를 가는데茶香萬里, 차로 인한 인연은 억겁을 가는구나茶緣億劫’ 하는 소회가 일었습니다. 그 밤을, 그 집에서 묵었습니다. 아침 식사도 대접 받았습니다. ‘굳이 호텔서 돈쓰지 마라’고 지청구도 들었습니다. ‘그 돈을 아껴, 먹을 만 한 차나, 하나 더 구해가라’는 것입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것은 남녀 간만의 일일까요?




조선의 선비 홍대용과 청나라의 선비 엄성, 반정균의 우정이 떠오릅니다. 연경(지금의 북경)으로 사신 행렬에 따라간 홍대용, 절강의 항주에서 과거를 보러 연경에 간 엄성. 연경의 유리창에서의 우연한 해후. 그리고 일곱 번의 만남, 날마다의 서신 교류.


혹시 여러분이 북경에 가신다면 유리창을 꼭 들려 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의 인사동 같은 곳입니다. 당시에 유리창은 찻집과 서점이 한집 걸러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이곳에서 신간서적을 사고 희귀본 도서들을 구하느라 이잡듯이 거리를 흩고 다녔던 곳입니다. 우정을 나눈 기간은 한 달 여. 홍대용은 귀국길에 오르고, 벼슬에 떨어진 엄성도 귀향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 못 미처 그만 학질에 걸려 죽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품속에 홍대용에게 선물 받은향과 먹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엄성의 형 엄과가 이 내용을 적어 조선의 홍대용에게 전합니다. 소식을 접한 홍대용은 슬픔을 겨누지 못하고 애사를 써서 항주의 그 가족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편지가 도착한 날이 바로 엄성의 대상大祥날이었다 합니다.




사실 이곳 오주에 들려 육보향까지 돌아보게 된 것은 하나의 작은 인연 때문입니다. 연전 광저우 방촌에서 차 시장을 들려 보던 중, 우연히 광서 도기 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격도 알맞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단품이 아니어서, 세트 모두를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절충을 거쳐 그 도기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이 어린 여직원의 성실한 자세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업력이며, 고객에 대한 배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깊은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그 여직원은 본사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평소 육보차에 관심이 많던 차, 자연스레본사 방문을 요청하였습니다. 


본사 방문을 위해 도착한 오주에서의 일정은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이미 정갈한 호텔이 예약되어졌고, 육보차의 달콤함이 가득한 차성거리를 현지 전문가의 도움으로 순례하였고, 대표적인 차창의 사장님을 소개 받아 만찬을 함께 하였고, 공장장의 안내로 육보차의 전 공정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물어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광서도기를 파는 주요 점포도, 육보차 바구니를 제작하는 공장도 방문하였습니다. 또 채워지지 않는 나의 호기심과 끝없는 질문공세에, 본인의 스승까지도 동원한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계림을 향하여 떠나올 때는, 가방을 반듯이 앞으로 매라는 조언까지 건네줍니다. 계림은 천하산수의 으뜸인 곳이라, 관광객이 많고 따라서 소지품을 주의하라는 충고지요. 


오주에서 계림까지 가는 동안 비가 오다 개고, 개다 오는데 버스 안에서 자다 깨고, 깨다 자며 바라보는 광경은 선경 중의 선경입니다. 계림 산수야 아시다시피 돌아보는 대로 눈길 닿는 대로 산수화 아닌 것이 없는데 안개비에 비구름이 산허리에, 산마루에, 계곡이며 등성이로 휘리릭 스르륵 천변만화하는 모습이 내가 잠이 깨었는지, 꿈속의 꿈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세상만사 모두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이 모든 행운이 어떻게 왔겠습니까? 그저장마당에서 스치다 만난 작은 인연이, 이처럼 깊고도 넓게 펼쳐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신비로 가득한 인다라망因陀羅網indrjala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예의 그 여직원은 이제 오주에서 볼 수 없습니다. 헌걸찬 신랑을 만나, 난닝 인근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아름다운 이 세계는 또 새롭게 기회의 문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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